〔選出〕 유엔사무총장의 조건
국제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룰이 있다.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총재는 유럽이 맡고, 유엔 사무총장은 이른바 ‘P5(five permanent)’로 불리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맡지 않는 게 관행이다.
유엔사무총장은 191개 회원국대표가 참석하는 총회에서 선출하지만 그렇다고 완전 자유경선제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총회에 후보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
P5는 사무총장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거부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P5의 어느 한나라라도 반대하면 사무총장이 이 될 수 없다. P5 어느 한나라로부터 밉보여도 안되고, 어느 한 나라와 지나치게 가깝다는 인상을 줘도 곤란하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P5를 적절히 만족시키며 총의를 끌어낼 수 있는 외교력과 인맥을 갖춰야 한다. 요즘처럼 미국과 나머지 상임이사국간의 이해관계가 사사건건 맞부딪치는 상황에서는 수십년간 국제외교가에서 활동한 직업외교관이나 국제정치학자들도 이 같은 일을 잘 해내기가 쉽지 않다.
유엔의 보이지 않는 룰 가운데 가장 골치 아픈 것이 프랑스가 내걸고 있는 ‘불어 능통’ 조건이다. 물론 프랑스는 이것을 명시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불어 능통자가 아닌 사람이 유엔사무총장 후보에 명함을 내밀 때, 프랑스는 ‘자격미달’로 간주,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해왔다. 프랑스의 이같은 언어적 오만함에 대해 각국의 외교관들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프랑스 뒤에는 아프리카 등지의 불어사용국들이 똘똘 뭉쳐 ‘글로벌 외교수장이 갖춰야할 기본소양’임을 내세워 양보하지 않고 있다.
유엔주재 싱가포르 대표부 전대사인 키시오리 마후바니는 싱가포르의 경제력과 외교력을 바탕으로 열심히 유엔사무총장 꿈을 ‘팔고’ 다녔지만 불어실력에서 ‘합격점’을 받지못해 자진포기하고 귀국했다는 얘기가 뉴욕외교가에 나돌 정도다.
이같은 유형무형의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그간 유엔사무총장은 중립외교를 펼쳐온 북유럽이나 아프리카, 아시아의 비동맹국 출신이 대부분이다.
역대사무총장 중 다그 하마슐드는 스웨덴, 우 탄트는 미얀마, 하비에르 페레즈 드 쿠에라는 페루,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이집트출신이고 코피 아난 현총장은 가나출신이다. 내년 12월 실시될 유엔사무총장 선거를 앞두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차기총장이 아시아 차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P5는 아직 아난카드의 유효성에 대해 미련을 갖고 있다.
문화일보
2005-02-18 14:43
이미숙 / 워싱턴 특파원 musel@ 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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