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군, 초밥 한 점에 밥알이 몇 개고?
1979년 무렵의 일이다. 대단한 미식가로 알려진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일본 최고의 맛집을 훤히 꿰고 있었다. 일본에서 식사를 하는 와중에 ‘이거다’ 싶은 맛을 찾아내면 자신이 운영하던 신라호텔 임원과 조리부장을 일본 현지로 파견해 맛의 비결을 전수받아 오도록 했다.
그 덕에 당시 30대 신라호텔 조리부장으로 주가를 날리던 젊은 요리사 이병환은 도쿄 오쿠라호텔의 일식당을 비롯해 일본 최고의 우동집, 메밀국수집, 복집에서 당대 최고의 요리사로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비법을 전수받았다. 그 무렵 이병환은 네 차례나 일본 연수를 가서 일본 요리사들로부터 초밥용 밥을 짓는 방법에서부터 생선 써는 방법 등을 상세히 배워 온 터라 “초밥에 관한 한 내가 한국 최고”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호암이 여느 때처럼 삼성의 주요 경영자들과 함께 신라호텔 일식당에 나타났다. 이병환은 ‘오늘 이야말로 일본에서 배워 온 실력을 토대로 제대로 된 초밥을 선보여야지’ 하고 벼르며 초밥을 요리했다.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놓인 초밥을 음미하던 호암이 입을 열었다.
“이 군, 그래 일본 가서 좋은 공부 마이(많이) 했나?”
“예, 회장님 덕분에 이것저것 다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호암이 물었다. “그런데 이 군, 초밥 한 점에 밥알이 몇 개고?”
순간 이병환의 등골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당황한 이병환은 “일본 최고의 요리사들로부터 초밥 한 점에 들어가는 생선의 무게 15g, 밥의 무게는 15g, 합쳐서 30g이라고는 배웠지만 밥알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하고는 그 자리에서 초밥 한 점을 풀어 밥알을 헤아렸다. “초밥 한 점에 밥알이 320개”라고 답하자 호암이 말했다.
“내 이 군에게 한 수 알려 주지. 점심에는 식사용으로 초밥을 먹으니까 한 점에 320알이 맞고, 저녁에는 술을 곁들여 안주로 많이 먹으니까 280알이 적당하다.”
이 말에 이병환은 “회장님, 더 배우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꺾었다. 식사를 마친 호암이 이렇게 말했다.
“배움의 길에는 끝이 없다. 이 군, 이 말을 명심하거라.”
그날 이병환은 일본에서의 공부를 믿고 자만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호암이 세상을 떠난 1년 후인 1989년 그는 신라호텔의 한식, 양식, 일식, 중식, 제과 분야를 총괄하는 조리부장직을 사임하고 서울 역삼동에 일식당 ‘에도긴’의 문을 열었다.
2005년 11월호
글 : 김용삼 TOPCLASS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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