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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쓰코시(三越)백화점 경성점 1930년, & 일본계 백화점

Paul Ahn 2016. 7. 6. 15:02

■ 미쓰코시(三越)백화점 경성점 1930년, & 일본계 백화점

미쓰코시백화점(三越百貨店) 경성지점과 일본계 백화점.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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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백화점 위치 및 개점년도

 

*미쓰코시(三越) : 현 신세계 본점, 1930년

*조지야백화점(丁子屋百貨店) : 현 롯데영플라자, 구 미도파 본점,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 : 1933년

*히라타(平田) : 현 대연각빌딩, 1926년

 

미쓰코시(三越)백화점 경성점 1930

 

위치 : 서울 충무로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자리)

운영 : 1930년 10월 24일 ~ 1945년 8월 15일

 

일본 미쓰이(三井)재벌의 미쓰코시백화점은 1906년 이 자리에 경성출장소 격인 '미쓰코시 오복점(吳服店·옷감과 의류를 파는 상점)'을 개점했고, 1929년 이 오복점을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지점으로 승격시켰다. 이듬해인 1930년 신관을 지어 근대적 백화점의 모습을 갖춘 뒤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으로 독립했다.

 

개점 당시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은 대지 2410㎡(730평), 연건평 7600㎡(2300평)에 종업원 360명을 거느린, 일본 본토를 제외한 한국과 만주지역 최대 백화점이었다.

 

지하에는 주방용품, 식료품, 일반 잡화 코너와 간이식당이 있었고,

1층에는 약국과 여행안내소, 선물·화장품·신발·고급 식료품 매장이 있었다.

2·3층은 남녀 맞춤복·기성복 매장,

4층은 귀금속·가구매장, 대형홀, 커피숍, 대형식당, 옥상공원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주요 고객은 당시 남촌(지금의 충무로)에 사는 일본인들이었지만, 북촌(지금의 종로)의 조선인 부호 손님들도 늘어났다.

 

이곳에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몰려들어 식당·커피숍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이상(李箱)의 ‘날개’, 채만식의 ‘탁류’ 등 문학작품의 배경으로도 미쓰코시백화점이 자주 등장했다. 철저한 정찰제·반품(返品) 보장·상품권 발매 등 근대적인 판매·관리 기법도 도입해 당시의 유통체제와 소비문화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당시 경제평론가 서춘(徐椿)은 1931년 ‘혜성’이라는 잡지에 “상업을 하더라도 가령 미쓰코시 같은 데를 가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상품을 여러가지로, 또 많이 사다 놓고 팝니다. 그러니 상품 한두 가지나 조금씩 내놓고 파는 상점보다 손님이 많이 옵니다. 또 파는 물건뿐 아니라 설비에도 많은 돈을 들였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1920년대 경성(京城)에 진출해 있던 히라타(平田·지금의 충무로 1가 대연각빌딩 자리)상점이 1926년 백화점으로 전환한 것을 우리나라 백화점의 효시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백화점은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해방 후〉

해방후 미쓰코시 백화점은 귀속재산으로 미군정에 귀속되었고 동화백화점으로 상호를 변경, 관재청 직할 PX로 운영되다가,

 

1949년 귀속 재산인 동화백화점의 관리인으로 강일매(姜一邁)가 선임되었으며,

http://busan.grandculture.net

 

1955년 강일매는 자신이 관리인으로 있던 동화 백화점과 조선방직을 불하 받아 일약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자본가 중 한 명으로 성장하였다.

 

1962년 동방생명(지금의 삼성생명)으로 소유권이 넘어갔으며, 1963년 동방생명을 삼성그룹이 인수한 후, 그해 11월 12일 고객응모행사를 통해 신세계로 이름을 고쳤다.

 

 

조지야백화점(丁子屋百貨店)

 

위치 : 현재 롯데 영플라자(구 미도파 자리)

운영 : ~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조지야백화점(丁子屋百貨店)은 1946년 중앙백화점으로 상호를 변경하였으며 주한미군 24군단 PX로 미군 상대 영업을 했고,

 

1949년부터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무역관'이 되어 한국무역협회 등이 입주하고 한국무역진흥을 위한 국산품 장려관으로 이용되다가

 

1954년 대한부동산이 인수해 '미도파백화점'으로 바꿨으나, 이후 무협으로 넘어간 뒤 1964년 (주)무역협회로 독립했다가 1969년 대농그룹으로 넘어갔다.

 

1971년 대농그룹이 인수해 미도파백화점이 됐다. 그러나 대농그룹이 해체되고

 

2002년 9월 롯데그룹에 인수돼, 롯데백화점 서울 소공동 본점의 ‘보조’ 백화점 격인 ‘영플라자’로 운영되고 있다.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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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본점위치 : 1933년

 

부산점 위치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7가 20(롯데백화점 광복점), 1937년

 

미나카이 백화점의 취급 종목은 오복(吳服, 기모노)·양복과 식료품, 서양 가구 등 여러 잡화와 주방 및 철물 용구, 완구, 문방구, 운동구, 서적, 귀금속, 악기, 시계, 미술품 등이었고, 약의 조제와 판매, 관청 및 회사에의 납품 등을 행하였다. 또 맨 위층인 5층에는 유원 시설인 목마, 요지경 등 각종 놀이 시설이 있었다.

 

미나카이 상점과 백화점 창업

미나카이 백화점의 대표이자 중역들인 나카에 가쓰지로(中江勝次郞), 규지로(久治郞), 도미주로(富十郞), 준고로(準五郞) 형제는 일본 시가 현 출신으로 러일 전쟁 당시 일확천금을 꿈꾸며 조선에 들어왔다.

 

처음 조선에 진출할 당시에는 이미 많은 일본인들이 선점하고 있던 부산이 아닌 경부선이 지나는 대구의 시장성을 보고 1905년 생활용품 잡화점인 미나카이 상점을 창업하였다.

 

미나카이 상점은 대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지에 포목점을 개설하였는데, 부산지점은 1917년 문을 열었다. 그 후 미쓰코시 백화점, 조지야 백화점이 경성에 개설되자, 미나카이도 1919년 경성에 미나카이 포목점 경성본점을 개점하여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아직 백화점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1933년 경성본점을 지상 6층 지하 1층의 흰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증축하면서 미나카이도 본격적인 백화점 반열에 올랐다. 이어 각 지역에 지점을 개설하였는데, 부산을 비롯한 대구, 대전 등에 12개 점포를 두고 만주의 신경, 하얼빈, 중국의 북경과 남경에도 진출하는 등 거대 백화점으로 성장하였다.

 

〈미나카이 부산점〉

미나카이 백화점은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 최초이자 최대의 백화점이었다. 당시 부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를 타기 위해 백화점에 가기도 하였다. 해방 후까지도 부산 사람들은 백화점에 간다는 말을 ‘미나카이 간다’로 표현할 만큼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30년대 미나카이 경성본점이 면모를 일신하면서 각지에 지점을 설치하는 등 백화점 사업을 본격화하였는데, 부산지점 역시 그 일환으로 개설되었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의 소비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로, 백화점 사업은 일본인 기업가들에게 이윤을 확대해 주는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 업종 가운데 하나였다.

 

미나카이 백화점 부산지점은 1937년 9월 부지 2,310㎡(700평)에 5층 건물로 신축되었으며, 부지는 부산부청 인근의 일등지였다.

 

6·25 전쟁 시기 부산의 미나카이 백화점 건물은 야전 군병원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1967년 10월 25일 부산상공회의소가 이 건물을 인수하여 상공회의소 회관 등으로 사용하였다. 1976년 5층 건물에 2층을 더 올려 7층 건물로 증축하였다. 1987년 부산상공회의소가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범천동 신청사로 이전한 이후 부산시청 별관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98년 1월 부산광역시청이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으로 옮길 때까지 엘리베이터가 사용되었다.

 

이후 건물은 롯데 백화점 광복동점 신축으로 1998년 10월 철거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2009년 12월 그 자리에 역시 백화점이 들어서서 옛 미나카이와 같이 성업 중이다.

 

 

히라타(平田) 1926년

1920년대 경성(京城)에 진출해 있던 히라타(平田·지금의 충무로 1가 대연각빌딩 자리)상점이 1926년 백화점으로 전환한 것을 우리나라 백화점의 효시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백화점은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