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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유통의 왕 일본 백화점은 어떻게 추락했는가

Paul Ahn 2010. 8. 11. 11:17

⊙소매유통의 왕 일본 백화점은 어떻게 추락했는가

(retailing.co.kr)

 

한때 소매유통의 왕으로 불렸던 일본 백화점은 매출 및 점포 수 기준에서 1970년대 수준으로 퇴보했다. 일본 백화점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살펴보며 국내 유통업체들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소매업 종말론이 시작됐다(America’s ‘Retail Apocalypse’ is really just beginning)’ 2017년 블룸버그 기사는 당시 유통 산업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제기해온체인스토어 모델의 종말을 고하는 기사였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대해 찬반 양론이 대립했다. 그러나 메이시스(Macy’s), JC페니(JC Penny), 시어즈(Sears)를 포함한 미국을 대표하는 9개 대형 유통업체가 파산하고, 100개 이상 점포가 문을 닫게 된 엄중한 현실 앞에서 많은 전문가들 역시 암울한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미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블룸버그는 2008년대 불황기(The Great Recession)보다 심각하다고 언급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지구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오프라인 유통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와 영업 환경 및 고객니즈가 다른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한국의 백화점에 시사하는 바는 제한적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백화점 역시 현 상황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한때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한국 백화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던 일본 백화점의 실상을 살펴보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유통 왕좌 내준 일본 백화점의 끝없는 추락

 

1904년 미츠코시백화점의 등장으로 입지, 상품력, 접객력을 강점으로 한 근대화된 유통이 시작된 이래, 일본 백화점 업계는 전후 수출주도형 고도 성장에 따른 ‘1억 총중류 시대를 거쳐 강력한 수요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소매유통의 왕이라고 불렸던 일본의 백화점은 1991년 판매총액 기준 약 12조 엔을 정점으로 찍은 후, 2019년에는 약 6조 엔으로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점포 수 역시 1999 300여 개에서 2020 200여 개로 줄어들었다. 판매총액 및 점포 수 기준으로 볼 때, 1970년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물론, 그동안 백화점 업계 역시 경영통합 등을 통해 효율화와 대형화를 위한 노력을 게을지하지 않았다. 2006년 한큐홀딩스가 한신전기철도를 인수하는 방법으로 한신백화점을 자회사화하여 H2O가 탄생했고, 2007년에는 다이마루와 마츠자카야가 합병해 J프론트리테일링(JFR; J Front Retailing)을 설립했다.

 

다음 해에는 미츠코시와 이세탄이 경영합병을 하는 등 잃어버린 소매유통의 왕좌를 되찾기 위해 분투했다. 2030세대 고객 이탈에 따른 주 고객 고령화, 패션 상품 객단가 하락 및 가전·생활용품 등 전문점 성장에 따라 새로운 전략적 선택을 한 셈이다.

 

이에 각 백화점 그룹별로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한 것은 물론이다. 백화점의 전통적인 핵심 고객인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때는 유통 모델의 혁신으로 불리던 특정매입에 기반한 사업 모델에서 탈피하려는 모습도 있었다.

 

이세탄은 부유층을 대상으로 직사입 역량을 확대했고, H2O는 사업 모델은 그대로 둔 채 고객 범위를 중장년층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펼쳤다. J프론트리테일링은 부유층에서 중장년층과 2030 고객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임대 부동산 모델에 가까운 형태로 분화했다(도표 1 참고).

 

 

 

◇통폐합으로부터 전략적 선택의 결과

 

<도표 2>를 보면 경영통합이 한창 이루어지던 시기(2008~2009년 결산 기준)와 최근 4년간 매출액 추이를 비교할 수 있다. 먼저 H2O 경우 2019~2020년에 걸쳐 매출액이 상승했고, J프론트리테일링 역시 소폭이나마 상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5개 백화점 그룹 모두 전반적으로 매출 하락이라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통합에 따라 양적 성장을 이뤘다고 보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특히 2020 3월 코로나19로 인한 외국인 입국금지 조치가 실시된 이후, 그나마 일본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체의 매출을 지탱해주던 인바운드 수요가 사라지면서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됐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매출 감소라고 볼 수 있으나, 지난 10여 년간 추이를 볼 때 코로나19만을 부진의 이유로 보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미 2017년을 기점으로 인구가 적은 지방에 위치한 백화점들의 폐점이 시작됐다. 급기야 2020년에 이르러서는 1급지라 불리는 도쿄 시부야의 토큐백화점, 요코하마의 타카시마야백화점, 도쿄 에비스의 미츠코시백화점 등이 문을 닫았다. 폐점 러시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2022년에도 도쿄 신주쿠의 오다큐백화점, 시부야의 도큐백화점 폐점이 예정돼 있는 상황이다. 이는 10여 년에 걸친 지속적인 매출 감소에 의해 부실한 지방 점포부터 구조조정이 시작됐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 백화점 추락의 근본 원인

 

첫 번째 이유로 다양한 포맷이 등장함에 따라 고객 선택지가 확대된 점.

 

고객 관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목적을 일상적 구매, 쇼핑, 경험으로 분류하고, 채널을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나누면 <도표 3>과 같다. 이미 고객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물건을, 어떤 채널을 통해 구매할 것인지 순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온·오프라인 구분, 유통 포맷 및 브랜드에 대한 것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특히 온라인 사업자를 보면 라쿠텐, 야후쇼핑, 아마존재팬과 같은 종합몰 이외에도, 패션 전문몰 조조타운, 가구 전문몰 니토리가 편의성과 가격으로 기존 오프라인 고객들을 흡수하고 있다. 또한 중고 거래 플랫폼인 메루카리도 온라인 취급액 기준 4위를 차지하며 고객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고 있다. 강력하고 다양한 경쟁자들 틈에서 백화점이라는 포맷이 제안하는 가치는 이미 퇴색된 지 오래다.

 

두 번째 요인은 주 고객층인 중산층의 구매력 약화.

 

한때 일본은 세계에서 유례 없는 ‘1억 총중류 사회 구현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고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던 적이 있다. 1973년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본인 스스로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 인구의 61%에 달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후 중류층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2010년 조사에서는 중류층이 45% 정도로 감소했으며 자신을 하층이라고 인식하는 인구도 40%로 늘어났다. 또한 후생성이 발표한 국민 생활기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대당 실질소득 경우(1991년 환산) 1994 641만 엔에서 2018 514만 엔으로 무려 20%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데이터들을 통해 일본 전문가들은 일본이 이미 소득 양극화로 인한 격차사회, 성장이 없는 하류사회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한다. ‘(월세 200만 엔짜리 최고급 맨션에 사는) 롯뽄기힐스족 ‘(최저 임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이 동시에 증가하는 현상은 양극화된 격차사회인 일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게 소비 양극화를 낳고, 중류층에 기반했던 백화점 쇠락에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세 번째 이유는 백화점의 고비용 구조 및 그에 따른 투자 여력 축소.

 

오랜 시간에 걸쳐 고객의 경제적 환경 및 구매행태에 변화가 일어났고, 달라진 고객니즈에 맞는 새로운 포맷의 유통 혁신이 일어났다. 그러나 백화점은 그에 대응해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없었다. 그 이유의 실마리는 <도표 4>에서 찾을 수 있다. 경영통합기인 2008~2009년과 최근 4년을 비교해볼 때, 일본 백화점의 영업이익 즉 수익 창출력은 오히려 약화됐음을 알 수 있다. 2008~2009년 결산 기준 1.4~5.0%를 기록했으나, 2019~2020년 결과는 세이부 소고를 제외하면 1.2~2.8%로 낮아졌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2021 3, 2022 3월 결산 실적을 제외해도 영업이익률 기준으로 3%를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외부로부터 자금차입이나 투자유치가 없다는 가정 하에 각 백화점 그룹의 투자여력은 영업이익액을 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급성장하고 있는 주요 온라인 기업들의 투자액과 비교해보면, 경쟁력 차이는 명확하다. 아마존재팬 경우,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물류 기반 강화에 2.7조 엔을 투자했고, 2019년 한해에만 6천억 엔 이상 투자해 온라인 고객들의 편의성을 제고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 메루카리는 2018 IPO 당일 시가총액이 74억 달러에 육박했으며, 이를 통해 현금 12억 달러를 확보했다. 이러한 자금은 시스템 개발 및 물류 등에 투자된다.

 

종합적으로 볼 때, 백화점 그룹들이 디지털 전환에 수반되는 앱 개발, 결제 시스템, 물류 네트워크 구축과 같은 기본적인 시스템 정비는 물론, 고객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는 디지털 신기술에 대한 투자 여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나 부진 점포를 폐점하며 축소지향 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래의 수익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백화점이 꼭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서

 

일본 백화점 역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백화점이 가지고 있는 핵심 경쟁력인 대면 판매 역량을 디지털로 이식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도쿄의 미츠코시백화점 경우, 고가의 미술품을 고객에게 일대일컨시어지형 온라인 접객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다. 고가 제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제공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마루이는 상품을 판매하지 않는 전시형 매장을 선보였다. 점포를 발견이나 체험의 장소로 활용한다는 포석이다. 이런 노력들이 일부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백화점 이탈 고객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어느 산업이나 그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업자 관점에서 변화의 모습과 방향을 인식하고 인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그 변화가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다른 유통 포맷으로 눈을 돌리는 고객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 대답해야 할 핵심 질문은 매우 간단하다.

 

고객들에게 백화점에 와야만 하는 이유를 납득시킬 수 있는가.

 

, 타 유통 포맷이 아닌 백화점만이 제공할 수 있으며 그와 동시에 어느 포맷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백화점이 생존하는 길이다. 한때 혁신적인 유통 모델로 소매 시장을 선도했던 백화점이 변화해야 할 때다. 어쩌면 백화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백화점을 버려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