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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전성기를 누리다 한순간 몰락한 백화점들.

Paul Ahn 2009. 6. 19. 14:54

⊙한때 전성기를 누리다 한순간 몰락한 백화점들.

(chosun.com)

 

‘미도파·뉴코아·쁘렝땅·한신코아·태화·아크리스·유나·시대·가고파·블루힐·나산·대동·올림푸스·모드니·미화당·그랜드·세화·동양...’

 

유통업은 매출액이 경기 사이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경기가 침체되면 사람들이 허리띠를 조르고 소비를 꺼리게 되고 이는 백화점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어서다.

 

혁신 없이 제살깎기 경쟁만 하던 백화점은 1997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쓰러지는 곳이 속출했다.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만명의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① 미도파백화점

 

미도파백화점은 우리나라 백화점의 효시다. 1922년 전신인 조지야백화점(정자옥)에서 출발한 미도파는 80년만에 문을 닫았다.

 

미도파는 해방 직후인 1946년 조지야에서 중앙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소유권이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1954 4월 대한부동산주식회사가 건물을 인수한 뒤 당시로는 엄청난 돈인 13000만환을 투자해 다시 백화점 매장으로 재단장했다.

 

1970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놓은 미도파백화점.

4년 뒤 바로 옆에 있는 시대백화점을 인수합병했다.

 

1970년 미도파백화점 전경.

 

국산품만을 취급한다는 조건으로 백화점 영업을 시작한 미도파는 1969년 박용학 회장이 운영하는 대농으로 넘어가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서울의 백화점은 화신백화점과 일본 미쓰코시백화점에서 출발한 신세계 정도만 영업을 하던 때였다.

 

미도파는 명동 메트로점 매장 확대를 위해 1974년 시대백화점을 인수합병했고, 4년 후에는 가고파백화점을 인수했다. 업계에서 최초로 다점포 영업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1975년에는 국내 백화점 처음으로 주식시장에 상장하면서 우리나라 백화점 역사를 써 나갔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롯데와 현대 등 신흥 백화점들이 잇따라 생기고, 신세계가 공격적 경영을 펼치면서 미도파는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이후 모기업인 대농그룹 계열사에 서준 빚 보증(9000억원)과 차입금(6000억원)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이후 1997년 신동방과 홍콩 페레그린증권이 공동으로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선게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 미도파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우호지분을 비싼 값에 사들이는 등 단기간에 1280억원이 넘는 현금을 동원하다가 금융위기가 닥쳐 부도를 냈다. 이후 2002년 롯데쇼핑(84,500 ▼ 100 -0.12%)에 약 5200억원에 인수됐다.

 

 

② 뉴코아·한신코아백화점

 

뉴코아는 1970년대 초 한신공영(16,000 ▲ 100 0.63%)김현종 창업주의 사위였던 김의철씨가 반포지역 일대의 땅을 사들여 지은 아파트 사업이 잘 되자 1978년 유통업 진출을 결정하면서 뉴코아 슈퍼마켓을 운영하게 된다.

 

부도난 뉴코아백화점에서 떨이 세일을 하는 모습

 

1981년 뉴코아는 별도법인으로 분리된 후 1984년 뉴코아 주식회사로 변경했고 서초구 일대에 고객유치를 위해 수십 대의 대형버스를 운영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1990년대 들어 점포를 크게 늘릴 정도로 백화점 사업이 거듭 성장하고 1994년 할인점 사업에 진출하면서 뉴코아는 재계 30대 그룹에 들어갈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자율 높았던 시절에 무리하게 매장 수 확장을 하면서 부채가 급증했고, 외환위기란 악재를 맞게 되면서 1997 11월 부도났다.

 

뉴코아그룹은 이듬해 7월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과 협의를 통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김의철 뉴코아그룹 회장이 공식 퇴진하게 된다. 2003년 뉴코아는 법정관리 졸업과 함께 약 6200억원에 이랜드에 인수됐다.

 

한신공영은 1983년 한신코아백화점도 열었다. 전주점부터 시작한 한신코아백화점은 노원점·성남점·광명점·대전점을 운영했다. 하지만 1998년 한신공영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문을 닫았다. 이후 2002년 할인점 운영업체인 세이브존에 매각됐다.

 

 

③ 쁘렝땅·동아백화점

 

쁘렝땅백화점은 1988년 지방 백화점의 서울 역진출 1호로 유통업계의 관심을 모으며 개점했다. 대구 동아백화점을 운영하던 건설업체 화성산업이 서울 중구 장교빌딩 자리에 대규모 백화점을 열었다. 프랑스 쁘렝땅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어 당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쁘렝땅백화점 TV광고 모습

 

하지만 1990년 이후 영업부진에 시달리다 1996년부터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매각에 실패했다. 롯데·신세계 등 대형 백화점과의 경쟁에서 상권확보에 실패했다는 업계의 평가를 받았다.

 

영업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저가 고품질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가 급증하자 백화점을 할인점과 아웃렛 점포로 바꿨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호응은 저조했다. 2000년 영업을 중단한 쁘렝땅백화점은 결국 2006년 서울지방노동청에 약 500억원에 건물을 매각했다.

 

2010년 문닫은 대구 동아백화점

 

1972년 문을 연 대구 동아백화점도 38년간 대구 토종 백화점의 명맥을 이어온 지역 유통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쁘렝땅백화점 매각 실패에 따른 적자 누적, 롯데·현대 등 경쟁에서 뒤처지자 "외지 거대자본과 경쟁에서 더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며 철수했다. 2010년 이랜드리테일에 2680억원에 매각됐다.

 

 

④ 아크리스·진로백화점

 

아크리스와 진로백화점은 1988년 진로그룹이 문을 연 백화점이다. 서울 서초동 본사와 의정부, 청주 등에 열면서 한때 인기를 누렸다. 진로그룹은 주력 업종인 음료 사업 외에 전선·제약·종합식품·건설·금융·유선방송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종합그룹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무리한 사세 확장은 결국 진로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진로그룹은 한때 20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19위까지 올랐으나 1997년 닥친 외환위기 전후로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결국 진로그룹은 2003년 법정관리와 계열사 분할 매각으로 공중 분해됐다. 맥주는 오비에, 소주는 하이트에 팔렸다. 진로는 2003 1월 상장폐지됐고, 아크리스백화점 등은 이랜드가 인수를 타진했으나 부동산 업체에 매각됐다.

 

과거 그레이스백화점을 인수해 새단장 한 현대백화점 신촌점

 

 

⑤ 올림푸스·그랜드·그레이스·해태·블루힐 등 중소 백화점

 

올림푸스백화점은 1995년 당시 지하 7층 지상 12층 연면적 33000여㎡으로 울산에서 규모가 가장 큰 백화점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쌍용건설에 건축비 320억원을 지불하지 못해 개장 8개월만인 1996 1월 부도났다.

 

울산 올림푸스 백화점

 

부도 이후 이 백화점은 법원으로 넘어가 9차례에 걸친 경매 끝에 1999년 이랜드가 인수했으나 자금력 부족과 분양 저조 등으로 다시 2001 8월 ㈜발해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소유주가 다섯차례 바뀐 끝에 2005년 이랜드가 다시 사들였다.

 

마산의 성안백화점과 해태백화점 고덕점은 부도가 난 후 지난 2000년부터 차례로 신세계에 인수됐다. 지금은 신세계백화점이나 이마트로 변신했다.

 

부산 태화백화점

 

분당의 블루힐 백화점, 인천의 부평시티 백화점, 그랜드 강남점, 부산의 세원백화점도 파산했다. 이후 롯데백화점에 인수돼 분당점, 부평점, 강남점, 부산 동래점으로 각각 바뀌었다.

 

울산의 주리원 백화점, 서울의 그레이스백화점은 현대백화점에 인수합병돼 현대 울산점과 신촌점으로 바뀌었다. 부도난 대전의 동양백화점도 갤러리아 대전점으로 변신했다. 부산 태화백화점은 1997년 파산했다.

 

2018.11.08 06:02

유윤정 생활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