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순도 진장 / 한국식품명인 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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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장흥고씨 ‘기순도’ 종부의 장맛전남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가면 양진제 종갓집 3대가 360년 내려온 씨간장의 명맥을 잇고 있는 전통 장집이 있다. 장흥고씨 양진제 10대 종부이자 한국전통식품 35호 진장(陳醬) 명인 기순도 여사의 장맛은 입소문이 자자하다.
기순도 명인에게 종부의 이름을 내건 명품 장맛의 내력을 들어보았다. 360년 대물림 비법 담긴 씨간장의 맥을 잇는다 대나무 밭을 지나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너른 마당에 들어서니 넉넉하게 생긴 항아리 600여 개가 빼곡하게 줄지어 서 있다. 고려전통식품 대표이자 장흥고씨 집안의 종부 기순도 씨가 장독 뚜껑을 열어 된장이며 고추장을 맛보라며 건넨다. 짜지 않으면서 입 안에 은근히 감도는 감미로움, 구수하면서도 깊은 맛이 여느 된장과는 분명 다르다.
엿기름을 고아 직접 만든 조청으로 맛을 낸다는 찹쌀고추장은 개운하면서도 맛있게 맵다. 기순도 종부에게 ‘씨간장’ 구경을 청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360년 된 ‘씨간장’ 독이다. 종부가 자그마한 독 뚜껑을 여니 이전까지는 본 적 없는 먹물처럼 까만 간장이다. 독 안에 넣어둔 바가지도 새까맣게 물들었을 정도다.
종부가 조금 떠서 맛을 보라 권했다. 귀한 장이라 심호흡을 하고 미각을 총동원해 맛을 보았다. 360년 세월의 깊이가 혀끝에 느껴지는 순간이다. 일반장(醬)과 향미에서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 짜지 않고 감미로우면서 묵직한 맛이다. 씨간장은 말 그대로 근본이 되는 간장이다. 수분이 날아가 양이 줄어든 만큼 햇간장을 부어 양을 유지하는데, 이 집은 2~3년에 한 번씩 진장(陳醬· 5년 넘게 숙성한 간장)을 넣어 양을 보탠다고 한다.
씨간장은 종가의 비법대로 전해 내려온 간장으로 특별히 제사나 명절에만 조금씩 꺼내 쓴다. 현재 서울 청담동의 신세계 프리미엄 식품관 ‘SSG 푸드마켓’에 대한민국명장 12호 무안요의 도자기에 담긴 씨간장 한 세트(500㎖, 300만원)가 전시돼 있다. 양진제종가의 씨간장을 구입하겠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전시제품 외에는? 이상 판매하지 않을 생각이다.
종부, 장집 CEO가 된 사연 기순도 씨가 장흥고씨 양진제 문중 10대 종부로 시집온 것은 스물네 살 때였다. 2남 1녀를 낳아 기르며 1년에 10여 번 제사를 치르느라 집안일이 끝이 없었다. “불교학과를 나온 남편은 애초부터 세속에 뜻이 없었습니다. 2남 1녀를 키우는 동안에도 마음은 언제나 산속에 가 있던 사람이었죠.” 그러던 남편이 어느 날 죽염을 만드는 법을 배워와 집안 대밭의 대나무를 채취해 20년 동안 죽염을 구웠다.
그때까지 집안일에 파묻혀 살던 종부는 1996년에 장집 사장이 됐다. 고혈압으로 남편이 쓰러지자 가까이 지내던 남편 친구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전통식품업체를 해보하고 권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고려전통식품이다. 종부가 죽염 장을 만들어 팔겠다고 나서자 먼저 문중에서 반대를 했다.
그러나 고려전통식품이란 회사를 차리고 죽염을 만들다 떠난 남편의 유업을 이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장 담그는 일을 강행했다. 국산 콩에다 집에서 직접 구운 죽염을 사용해 ‘최고의 된장’을 고집했다. 수십 년 종부로 살아오는 동안 그러했듯 장을 담그는 한과정 한 과정마다 심혈을 기울였다.
‘기순도 된장이 명성을 얻고, 식품명인이 된데는 아이들의 공이 컸다’고 자랑했다. “큰아들이 유통과 마케팅을 맡고 딸이 함께 장을 담가요. 막내아들은 식품학과에서 조선간장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우리 전통장의 맥을 잇고 우수성을 알리는 일에 우리 가족의 노력이 보탬이 된다면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기순도 명인의 기능 전수자인 장남 고훈국 씨는 이 때문에 진로를 바꿨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하며 학문의 길을 꿈꾸던 그는 제대 후 어머니 일을 돕기 시작했다. 바깥일을 해본 적 없던 종부에게 아들은 든든한 지원군이자 ‘사업 파트너’였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딸 민견씨도 어머니를 도왔다.
아들과 딸은 어머니가 만든 된장, 간장을 홍보하기 위해 전국을 누볐다. 기순도 된장은 알음알음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한번 맛본 사람들은 단골이 됐다. 전남의 콩·죽염·암반수가 장맛 비결 명인이 만드는 장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소나무와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장독대만 보고도 장맛의 명당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장독대 둘레를 아름드리 소나무가 감싸고 있으니 해마다 봄이면 청정한 바람을 타고 송홧가루가 내려와 장삸을 돋워주는 것이다. “예전부터 이 집터가 장맛을 내는 데 최적의 장소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원래 장맛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잘 맞아떨어져야 좋아지는데 공기, 물, 햇빛이 가장 중요합니다.
장은 모든 좋은 재료가 잘 어우러져야 합니다. 질 좋은 국산 콩, 죽염, 150m 지하 암반수로 담근 장이 전통 옹기와 어우러져 발효가 잘돼 장맛이 좋죠”라며 기순도 명인은 장맛 비결을 들려준다. 장맛의 토대가 되는 죽염은 담양의 3년 이상 자란 왕대를 잘라 간수를 뺀 천열염에 지장수를 섞어 소나무 장작불에서 굽는다.
죽염은 단맛이 감돌아 간장과 된장을 담그면 짜지 않고 감칠맛이 난다고 한다. 한 해 사용하는 콩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40㎏ 콩이 1200여 가마 이상은 족히 넘는다. 11월에 들어서면 전남에서 난 콩을 삶아 10여 명과 함께 꼬박 한 달은 매달려 직접 메주를 만든다. 메주는 짚으로 묶어 황토 발효실에 매달아 자연 발효하는데, 연초에 소비자단체와 연계한 바자에서 300가마분의 메주가 소비되고 나머지로 장을 담근다.
기순도 씨는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삼은 ‘명품 장을 만드는 장인’으로 통한다. 신세계, 현대, 롯데등 백화점에서도 팔리는 된장, 간장의 상표는 바로 ‘기순도’이다. “단골 소비자만 1000여 명이 넘고, 달라는 곳이 많아 매년 물량이 부족하다. 단순히 사업성만 고려해 장독대를 늘리고 대량생산하기보다는 전통 방식대로 명품장을 만드는 것이 원칙이다”라며 종부는 한결같이 장인정신을 고집한다.
기순도 명인의 장은 신세계 SSG 푸드마켓의 명품관에서도 당당하게 인기상품의 반열에 올랐다. SSG 기순도 유기농 된장(500g, 2만4000원), 간장(500㎖ 2만원), 쇠고기볶음고추장(230g 1만5000원)을 판매한다. 전남 무안의 유기농 콩과 신안 천일염과 3년 왕대에 두 번 구운 죽염만을 사용해 만들었고, 된장은 2년 이상 숙성된 장만 선별한 명품이다.
종부의 손맛 담긴 발효음식 상품화로 승부 진장 명인인 기순도 씨는 음식을 할 때 소금 대신 전통방식으로 담근 간장만 사용한다. 심지어 김치도 젓갈대신 간장을 넣어 맛을 낸다. 김치의 아삭아삭한 맛은 그대로 살아 있는데 짜지 않고 뒷맛이 더할 수 없이 깔끔하다. 장집을 찾은 날 점심상에 나온 오이냉국도 역시나 간장으로 간을 맞췄다고 한다.
종부가 직접 담근 간장과 고추장으로 숙성시킨 장아찌는 밥도둑이 따로 없다. 버섯, 죽순, 굴비 장아찌와 전복초 등 장아찌류는 명절 선물세트로 한정 판매한다. 지난해 11월에는 현대홈쇼핑에 우거지된장국과 청국장찌개를 내놓아 큰 인기를 끌었다. 죽염된장으로 양념을 해 물만 부어 끓이기만 하면 옛 맛이 살아나 건강과 간편함을 추구하는 젊은 층의 호응을 얻었다.
“우거짓국은 백화점 매장에서 벌크로 판매를 했을 때도 반응이 좋았는데 홈쇼핑업체에서 다양한 상품개발 요청이 들어왔어요. 홈쇼핑에서 우거지된장국 4개와 청국장찌개 8개 세트를 5만9800원에 판매했을 때 한시간에 1000봉지가 팔릴 정도로 인?를 끌었죠.” 이 밖에 장집을 찾은 손님들에게 내는 식혜 맛 또한 유별나다고 소문이 자자하자 이를 맛본 현대홈쇼핑 바이어가 상품화를 제안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상품개발을 담당하는 종손 고훈국 씨는 앞으로도 종부의 손맛이 담긴 다양한 발효음식들을 상품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실 사업성만 가지고 전통 장류사업을 하는 것은 힘든 부분이죠. 장을 만드는 일을 중심에 두고 장류와 발효음식을 접목한 상품 개발을 통해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또 규모가 커지다 보니 식품안전과 경영시스템을 표준화하기 위해 오는 10樂에 ISO 22000 인증을 취득할 예정입니다.”
[출처] 담양 장흥고씨 ‘기순도’ 종부의 장맛|작성자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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