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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중동호떡

Paul Ahn 2019. 3. 28. 08:41

★군산 중동호떡

http://gjdream.com/v2/week/view.html?uid=436629

 

68년 역사 이어온 군산중동호떡 

`오래 거기 있어이야기를 쌓은 맛

지름이 일절 안 들어간게 담백하고 물리지를 안혀라고 입 모으는 `중동호떡’.

 

 


 “겨울에는 요 호떡을 돈 있어도 못 묵어. 오래 지달려야 한게.”

 “줄 서서 지달리는 것도 맛이여.”

 “지름이 일절 안 들어간게 담백하고 물리지를 안혀.”

 

 “식어도 짤깃짤깃 맛나고.”

 “나는 애기 때부텀 묵고 컸어.”

 “호떡집으로다가는 아조 전통 있는 디제.”

 

“쩌어 먼 동네서들도 요것 한나 묵을라고 일부러 오는 디여. 나운동에서도 오고 비행장에서도 오고, 쩌어그 장항, 서천에서도 오고.”

 

“미국도 간다네. 출세한 호떡이제.”

“군산에서 요 집 몰르문 간첩이여, 간첩.”

“아조 전통 있는 디제”…2대가 68년 역사 이어

 

 호떡 하나를 둘러싸고 애정어린 찬사들이 바쳐진다. 단골을 자처하는 이들의 말은 무성하게 뻗어가는데, 그 집의 외관은 참으로 과묵하다. 군산의 중동, 일명 `문짝집골목에 있는 `중동호떡’.

 

 간판 하나가 덜렁 달려있을 뿐, 겉으로 봐선 지금 장사를 하는지 안하는지 쉬이 분간이 되지 않는 모양새다. 올 사람은 다 알아서 온다는 듯 수선 떨 것 없다는 듯 그저 담담한 외관. 그래서 즐거운 반전도 있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달겨드는 포근하고 다감하고 달큰한 냄새. 다른 온기 없이 그 냄새만으로도 마음이 훅 덥혀진다. 담백하고 슴슴한 반죽 안에 꽉 채운 달콤함을 지닌 이 집 호떡과도 똑닮은 가게 안팎의 정경.

 

 `오로지 호떡만으로 2대가 68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그 뚝심이 어여쁘다.

 

 8∼9월 여름철 두 달은 문 닫고 10월부터 다시 문을 연다. `중동호떡집이 문 여는 때가 되면 겨울이 멀지 않았다는 말. “찬바람 날 때부텀 하제라고 말하는 이년욱(68)·송영화(64) 부부. 탁자 네 개를 놓아둔 8평 남짓한 공간에서 이들 부부와 아주머니 두 분, 이렇게 네 명이 일하고 있다.

 

 자글자글, 치르르, 철판에 기름 두른 소리는 없다. “지름을 치지 않아 담백하고 질리지 않는다는 게 손님들의 이구동성. 철판에 기름을 두르고 구워내는 여느 호떡과 달리, `중동호떡은 기름을 치지 않은 철판에다 호떡 반죽을 스무 개 정도 놓은 다음 뚜껑을 덮고 구워낸다. 호떡이 구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3∼4. 그 사이에 익혀지는 정도를 봐가며 몇 번 뒤집어준다. 밀가루 반죽을 잘 하고, 호떡 속은 흑설탕만으로 맛을 내고, 불의 온도를 잘 맞춰 구워내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

 

 싸가는 호떡이라면 옛날 시험지 같은 갱지에 둘둘 싸서 건네고, 가게에서 먹고 가는 호떡이라면 조그만 접시에 올려서 낸다. 호떡보다 살짝 큰 지름 크기의 낡은 `스댕접시’. 아무렇지 않은 이 고풍스러움이 반갑다. 호떡 하나를 시켜도 꼭꼭 집게 하나씩 들려 그 접시에 낸다. 그냥 손에 들고 먹기는 힘든 것이, 주체할 수 없이 뚝뚝 흘러내리는 설탕물 때문이다. 호떡 중심부에만 시늉으로 들어있는 게 아니라 전면에 두루 채워진 설탕물. 양이나 색깔로만 보면 엄청 달 듯싶지만, 의외로 적절히 감겨드는 당도다.

 

 오랜 세월 동안 여일하게 지켜온 건아버지 때부터의 맛!”

 몇 해 전 94세로 작고한 부친 이봉수씨가 시작했던 호떡 일이다.

 

 “아버님이 원래 중국집에서 일하셨어요. 속에 암것도 안 든 공갈빵 있잖어요. 그 공갈빵을 맨듬서 철판에 궈 갖고 지름 없는 호떡을 맨들어보문 어떨까 궁리하신 거래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이봉수표 호떡’. 아버지는 62녀 자식들을 호떡으로 건사했다. 처음 10여 년간은 옛 군산역 부근에서 장사를 하다 중동으로 이사하면서부터 이 자리에서 주욱 50년을 `오로지 호떡으로 버텨 왔다. 아들인 그가 호떡장사를 해온 세월만 헤아려도 37. 그 세월 동안 여일하게 지켜오려 애쓴 건아버지 때부터 해오던 그 맛!”

 

 `아버지의 호떡 맛이란 그에겐 `전통이란 말과 동의어다. 어느 날 홀연히 문 닫고 사라지거나 밀려나는 것들 많은 세상에서전통을 지킬라는 그 맘 하나벼리며 이 호떡집을 버텨왔다.

 

 62녀중 그는 둘째다. 자식들이 많지만 가업을 물려받은 건 그였다. 한때는 군산비행장에서 일해 보기도 하고 목수 일도 해봤지만 결국 `호떡으로 돌아왔다. 손에 익숙한 일이었고, 혀에 새겨진 맛이었다.

 

 “잠깐 손 뗐던 적도 있긴 허요. 우리 자석들이 `호떡집 아그들이라고 놀림받는 것이 속상해서.”

 미곡상을 해보기도 했지만, 벌이도 재미도 호떡에 미치진 못했다.

 “인자는 자부심도 가지요.”그 자부심이란맛있는 것을 사람들이 먹게끔 하는 재미에서 오는 자부심이다.

 

 “아버님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건 `박리다매였어요. 한번 맛없다고 맛 변했다고 소문나문 그날로 손님 떨어진게 재료 애끼들 말고 항시 정성을 다하라는 말씀도 자주 하셨죠.”

 

 떡볶이니 오뎅이니에 눈돌린 적도 한번 없이 `오로지 호떡인 이 집엔 차림표 대신 가격표가 붙어 있다.

 <1=700, 3=2000, 4=2800, 6=4000, 7(+1=8)=5000, 15(+1=16)=1만원>

 

 3개 사면 100원 깎아주는데, 4개 사면 정가 그대로인 이유는 뭘까. 5개 가격은 왜 안 써져 있을까. 3개가 2000원인 이유는백원 받기가 뭐한게.” 5개 가격을 안 써놓은 이유는다섯 개 사 가는 사람은 별로 없응게.” 아내 송영화씨의 대답이 그렇다. 나름 합리적인 가격표인 것이다.

 

 “얼마값?” 물으면오천원값” “만원값이란 대답들이 건네진다. `자를 꼭꼭 붙이는 게 군산 지역의 말습성인 듯.

 “지름이 안 들어간게 담백하고 물리지를 안혀

 “옛날엔 돈 없고 배는 고픈게 시계 잽히고도 묵고 우아기(윗도리) 잽히고도 묵고. 그런 일도 많앴제.”

 흐르는 세월 동안 `중동호떡집을 둘러싼 골목 풍경도 많이 달라지고, 쌓인 세월 만큼 이야기도 많이 쌓였다. ?

 

 “인자는 요 골목이 요렇게 한산해졌제만 옛날에 한국합판, 백화양조, 신흥목재 같은 큰 회사들이 여그 있던 시절에는 손님들이 훨썩 많앴제. 일 끝나는 시간이문 들어설 자리가 없었응게. 호떡 묵으러 왔다가 여그서 만나갖고 결혼한 처녀총각들도 많앴어.”

 

 이삼 년 다녀 갖고는 단골 축에 낄 수도 없다는 `중동호떡. 내흥동에서 자전거 타고 온 정용선(75) 할아버지는 중동호떡집과 역사를 거의 같이 해온 단골이다.

 

 “여그 아버님 하실 때부텀 나는 댕겼제. 지금은 돈으로다가 사묵지만 그때는 뭣 묵고자퍼도 워디 돈이 있가니. 학교길 이십리 걸어댕김서 신주머니에 쌀 조금 옇고 계란 및 개 너갖고 와서 고걸로 호떡 사묵고 그랬제.”

 

 자전거 손잡이에 호떡 봉지 매달고 돌아가는 할아버지 모습에 그 어린 학생의 모습이 겹쳐진다.

 “아는 냥반들 사다줄라고미원동에서 오토바이 타고 온 이명규(67)씨 역시호떡 한 개에 5원이던 시절부텀 묵었다는 단골. “꺼멍고무신 신고 사내키로 뭉끈 돼지오줌보 차고 놀 때부텀 나는 요 집 호떡을 묵고 댕겼어.”

 

 이때껏 단골인 이유는 이렇다. “애렸을 때부텀 묵어노문 추억을 잊지 못해 이 빵을 찾게 되는 거라. 비오는 날 눈오는 날이문, 입 심심허문, 생각나는 것이 요 호떡이라.”

 

 그 맛 못 잊어 멀리서도 찾는 이들 많다. “호떡집에 칠판 있는 집 봤어? 전화로도, 먼 디서도, 주문이 많이 들오잖아.”

 성산면 고봉리에 사는 이양순(62)씨도 일부러 호떡 먹으러 걸음했다. “지름값도 안나와. 근디 맛에 끌려서 오는 거지. 여그는 지름을 안쳐서 구수함서 담백한께 앙근 자리서 다섯 개까장 묵을 수 있어.”

 

 점심과 저녁밥 사이, 배가 조금 굴풋해질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하루중 손님이 제일 많은 때. 줄이 선다.

 “워매 손님 많애갖고 낼이나 되야 사제, 오늘은 못사겄네. 오늘 이 집, 집값 빼네.”

 `많이 폰단 말을 그렇게 하며 들어서는 이는 최덕남(85) 할머니.

 

 “이만원값 줘.”

 호기롭게 외치는데, 알고보니 삼천원값.

 

 “여그는 중동, 나는 경암동, 여그서 여그여. 날마다 할매들 너이 모태서 논디, 돌아감서 호떡을 내제. 고것이 겨울에 모태노는 재미여.”

 

 할머니, 특별주문 들어간다. “내야는 큼직큼직허니 혀.”

 “크고짝고 허문 되간디 다 똑같제라는 아주머니 대답에한날 한시에 난 성제도 아닌디 다 똑같어?”라는 응수 더해지고, 와크르 웃음이 번진다.  

 

 부모에서 자식들까지 세대 아우르며 추억을 이어가는 맛

 젊은이들도 많이 찾는다. 고석규(25)씨는날 추우문 절로 생각나는 호떡이라 자주 찾는다 하고, 함께 온 최단비(28)씨는어렸을 땐 어머니 아버지가 사다주셨는데, 이제 이 근방 오면 내가 사서 어머니 아버지 사다드리죠라고 말한다.

 

 부모세대에서 자식 세대까지를 아우르며 추억을 이어가는 맛인 것이다.

 나운동에서 온 최호병(45)씨도 20년 단골. “각시랑 연애하던 시절에도 자주 사먹었죠. 우리 각시가 입덧 심할 때도 요것은 먹습디다라고 말한다.

 

 주인 이년욱씨는찾아와주는 손님들 고마워서도 최선을 다하고픈 맘이라고 한다. “멀리서도 일부러 찾아오고 2대가 단골로 찾아온게요.”

 

 “아따 아직도 있소라며 화들짝 반갑게 들어서는 손님도 있다.

 익산으로 이사 갔다가 오랜만에 군산에 와서 일 보고 가는 길이라는 조병수(56·익산 부송동). “혹시 아직도 있는가 하고 와봤는디 간판이 보인게 참말 반가웁디다.”

 

 20년만이란다. “군산 살았으니깐 옛날엔 자주 먹어봤죠.”

 그에게 중동호떡은 고향과의 또다른 해후이기도 할 것.

 

 재경군산제일고 25회 사이트에서도 이런 말들 오가는 걸 봤다.

 -중동호떡 먹구자퍼, .

 -, 그 중동호떡 지금도 있을까?

 -얼마 전에 보았는데 아직 있더라.

 -군산 가면 호떡 먹으러 가자, 니가 사줘라.

 

 맛의 공유. 추억의 공유. 어쩌면 특별한 맛이라기보다는 `오래 거기 있어이야기를 쌓은 맛, `변함없어정든 맛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이야말로 혀의 미각을 넘어서 마음 속에 파장을 그리는 오묘한 맛일 터.

 

 오랜 세월 이 호떡집이 쌓아온 호떡, 그 호떡에 저마다 쌓은 추억들은 또 얼마랴.

 호떡집의 하루가 저문다. 67년에 또 하루가 보태졌다.

 

글·사진 = 남신희 기자

※이 원고는 전라도닷컴에 게재됐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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