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감홍로주(甘紅露酒)
http://news.donga.com/3/all/20121018/50222111/1
사라질 뻔했던 조선의 3대 명주
조선 3대 명주 ‘감홍로주’ 제조 계승자 이기숙 씨의 名人되기 12년 오빠가 세상 떠난 날… 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눈물 젖은 술을 빚었다.
최근 감홍로주 ‘식품명인’으로 지정된 이기숙 씨(오른쪽)와 남편 이민형 씨가 경기 파주시 파주읍 부곡리에 있는 공장 앞에서 감홍로주를 선보이고 있다.
왼쪽의 기구는 감홍로주를 만들 때 쓰는 전통 증류기다.
파주=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기술을 전수받았다는 근거가 없습니다. 명인(名人) 지정은 어렵겠습니다.”
2001년 가을 이기숙 씨(55·여)는 정부로부터 명인 지정에서 탈락했다는 최종 통보를 휴대전화로 받았다. “아버지한테 착실히 배웠다. 이대로 두면 감홍로주(甘紅露酒)는 사라진다”며 필사적으로 매달려 봤지만 허사였다. 두 다리의 힘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정을 받으려고 준비한 수개월이 물거품이 된 순간 아버지 얼굴이 어른거렸다. 감홍로주는 이대로 사라지는 것일까. 만인에게 공평하다는 법(法)이 오직 나에게만 가혹해 보였다. “아직 포기하지 맙시다. 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요.” 남편 이민형 씨(57)가 어깨를 두드리자 굵은 눈물이 이 씨의 뺨을 타고 흘렀다. 그날 밤 이 씨 부부는 숙성 중이던 감홍로주 한 병을 땄다.
감홍로주는 조선시대부터 전해지는 명주(銘酒)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전주의 이강고(梨薑膏), 정읍의 죽력고(竹瀝膏)와 함께 이 술을 3대 명주로 꼽았다. ‘춘향전’ ‘별주부전’ 등 옛 문헌에도 등장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19세기 유학자 이규경은 일종의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중국에 오향로주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평양부의 감홍로가 있다”고 이 술을 소개했다.
먼저 누룩과 쌀로 빚은 술을 증류해 소주를 만들어 숙성시킨다. 일반 소주는 여기서 끝나지만 감홍로주는 한 번 더 증류한 뒤 방풍, 계피 등 한약재를 침출시켜 재숙성시킨다. 짧게는 6개월부터 길게는 2년까지. 숙성기간이 길수록 목 안을 타고 내려가는 맛은 깊어진다. 은은한 붉은 빛깔과 깊은 맛에 평양의 주당과 기생들은 이 술을 최고의 술로 쳤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근대 이후 외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감홍로주를 맛본 뒤 ‘조선의 위스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강고, 죽력고가 각각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상업화에 성공하는 사이 감홍로주는 잊혀져 갔다.
6·25전쟁 때 평양에서 내려온 이 씨의 아버지 이경찬 옹만이 감홍로주를 지켰다. 1954년 정부는 귀한 쌀로 술을 빚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그래도 이 옹은 집에서 몰래 감홍로주와 또 하나의 평양 특산주 문배술을 담갔다.
1986년 정부는 이 옹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했다. 최초의 술 관련 인간문화재였다. 이 옹은 큰아들 이기춘 씨(70)에게는 문배술을, 작은아들 이기양 씨(2000년 사망)에게는 감홍로주 제조 기법을 전수했다.
이 옹이 1993년 사망하자 기춘 씨는 무형문화재가 됐고, 기양 씨도 정부가 지정하는 ‘식품명인’이 됐다. 문배술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오를 정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감홍로주의 운명은 달랐다. 기양 씨가 당뇨로 2000년 사망하자 만들 사람이 없어졌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이것뿐” 아버지는 유독 딸을 좋아했다. 딸도 아버지의 옆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아버지는 종종 딸에게 감홍로주를 만들도록 시켰다.
어깨 너머로 배웠지만 지금도 영화처럼 생생하다. 딸의 삶이 깊어질수록 진한 손맛이 담겼고, 감홍로주의 붉은 빛깔도 더욱 농염해졌다. “하지만 술은 오빠들이 만들어야 한다.” 이 씨는 아버지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1988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살림에 몰두했다.
그러나 작은오빠가 사망한 날, 그는 세상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북한 술을 왜 우리가 공인해야 합니까?” “진짜 감홍로주인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법과 제도는 유독 감홍로주에 대해서만 냉혹했다. 무형문화재는커녕 식품명인 지정을 받기도 어려웠다.
“아버지한테 배웠다”고 하면 문서상 근거를 대라고 했다. “집에서 배웠다”고 하면 “최종 명인은 이기양 씨이므로 이 씨에게 배운 근거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5년이 됐다. 경영학 박사인 남편이 아이디어를 냈다.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하면 전통주를 만들어 팔 수 있었다. 일단 대중에게 먼저 알리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이 씨 부부는 1억 원을 출자해 ‘㈜감홍로주’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경기 파주시에 공장을 세웠다. 2006년에는 주류 면허를 얻어 감홍로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다시 한 번 식품명인 지정 신청을 냈다.
지루한 절차가 2년여간 이어졌다. 그사이 담당자는 여러 차례 바뀌었다. 요구하는 서류도 많아졌다. 경기 과천시와 파주시를 수차례 오갔다. 그래도 부부는 묵묵히 감홍로주를 만들었다. 매년 1억 원 넘는 적자가 났지만 아버지가 남긴 문화재를 끊기게 할 순 없었다.
결국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왔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달 9일 감홍로주 제조 기능 보유자로 이 씨를 인정하고 명인으로 지정했다. 최근에는 백화점 납품도 시작했다. 12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명인 인증서를 받는 순간. 그는 오히려 덤덤했다. “너무 간절했던 것이 이뤄지면 오히려 허무하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으니까요.”
파주=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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