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종상가 / '88만원 세대'의 향수를 부르는 목공소
운영 방침
길종상가는 상가에 입점한 사람들이 살아 오면서 배우고 느끼고 겪어온 모든 것들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인력, 그 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적절한 금액을 받아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가려고 합니다.
앞으로 새로 배우는 일과 다른 이들과의 협력으로 인해 다양한 상점들이 오픈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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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도 반한 한국 디자이너..."세상에 하나 뿐인 물건 만들죠"
개인 맞춤 의자에서 에르메스 윈도까지
"전방위 디자인 작업의 동력...오로지 '재미'"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길종상가에서 박길종씨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누군가의 방에 놓일 북스탠드, 영화관의 매표소와 수납장, 화장품 가게에서 쓸 스툴, 시립미술관의 어린이 놀이공간, 백화점 명품 매장의 쇼윈도 디자인...'
최근 1년 동안 디자이너 박길종(40)씨가 직접 디자인한 물건 혹은 공간들의 리스트다.
개인 고객을 위한 맞춤 가구부터 미술관이나 명품 브랜드 매장의 윈도까지 망라하는 전방위 디자인 작업이다.
그의 이름 뒤에 '사장', '작가', '목수', '실장' 등 매 프로젝트마다 다른 직함이 따라붙는 이유다.
박씨는 자신이 만든 디자인 스튜디오 '길종상가'에서 올해로 11년째 세상에 하나 뿐인 물건과 공간을 만들고 있다.
최근 '길종상가 2021' '사포도' 두 권의 책을 내고 그간의 작업을 소개한 그는 "실용과 예술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듯 하다"고 했다. 10년사이 맞춤 디자인 업계에서 대체불가능한 디자이너로 자리잡은 그를, 혹자는 '1세대 엑스스몰(X-small) 디자이너'라고 칭한다.
서양화를 전공한 박씨가 한 명을 위한 맞춤 디자인을 하게 된 건 목공일을 시작하면서다.
대학을 졸업 한 뒤 1년 동안 목공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깨너머로 가구 제작을 배웠고 지인들의 부탁을 받아 '본의 아니게'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것.
그는 "가구 제작을 위해 고객과 소통하면서 꼭 물건이 아니더라도 용역서비스나 문화 콘텐츠 등을 책임져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마치 1인 인력사무소처럼 인테리어 보수나, 가전제품 수리, 이삿짐 배당 등 개인 고객들의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대신해주거나 원하는 물건이나 공간을 뭐든 유용하고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 말장난처럼 만든 '길종상가' 홈페이지는 전진 기지 역할을 했다. 길종상가 안에 '가공소', '간다 인력사무소', '사진관' 등 가상 가게를 만들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 즉 '박길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기록했다. "요즘 말로 '부캐(부수 캐릭터)' 활동을 꾸준히 재밌게 해온 건데 사례가 숱하게 쌓이면서 길종상가의 정체성이 만들어졌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재미'를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그는 "고집스럽게 한 클라이언트를 위한 디자인 작업을 전개하다보니 그 자체로 독창성과 희소성이 생긴 것"이라며 "유행보다 개성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점점 강해지던 때에 마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붐과 맞물리면서 운좋게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박길종씨가 올해 여름 시즌에 디자인한 백화점 에르메스 매장의 윈도 디스플레이.
에르메스 코리아 제공
일반적인 디자인 체계를 벗어난 덕분인지 작업 규모와 활동 반경은 나날이 확장됐다. 박씨는 "초창기 길종상가의 일감은 주로 개인을 위한 가구 디자인과 제작이었지만 점차 브랜드 홍보를 위한 디스플레이 작업,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 공간 디자인으로 넓어졌다"며 "요즘은 공간을 위한 디자인과 설치, 제작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년 전 맡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매장의 쇼윈도 디자인 작업이 그 전환점이 됐다고 한다. 매년 브랜드의 테마에 따라 계절별로 네 번 윈도를 디자인해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그는 "주로 1대1로 만나며 소통하다가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을 정기적으로 하다 보니 외형적으로나 질적으로 단단해 진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 10년간 길종상가의 디자인 스펙트럼은 얼마나 넓어질 수 있을까. 그는 "길종상가의 작업 리스트는 '재미'라는 공통 분모 속에서 지금도 업데이트 되는 중"이라며 머쩍어 했다. "고객이 꾸준히 이어지고, 여전히 그 작업이 재미있는 걸 보면 10년 뒤에도 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장사 잘 되는 동네 세탁소나 식당이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그대로 있을 것 처럼요."
2022.08.23 07:00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길종상가 / '88만원 세대'의 향수를 부르는 목공소
http://www.fi.co.kr/main/view.asp?SectionStr=Fashion&idx=40880&NewsDate=2012-11-05
한남동 이슬람 사원에서 도깨비 시장까지, 굽은 골목 입구를 3~4개 지나자 ‘길종상가’라고 적힌 투박한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 빼꼼 쇼윈도 너머를 살폈다. ‘철물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름한 외관과 달리 안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했다.
작은 화단을 조성한 미니 화분부터 제 멋대로 놓여진 파라솔과 플라스틱 의자, 널찍한 탁자 위의 알록달록한 미니어처, 초등학교 교실에서나 볼 법한 통일 포스터까지. 매장의 소소한 볼거리들은 ‘응답하라! 90년대’를 외치듯, 복고풍의 향수를 강하게 불러왔다.
여기 저기 둘러봐도 분명 상점은 하나뿐인데, 간판엔 떡 하니 ‘상가’라고 적혀 있다. 의아해 하던 차에 길종상가의 관리인, 박길종(30)씨가 수줍은 미소로 취재진을 맞았다.
“가게 이름만 보고 이 건물이 제 소유인줄 아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길종상가는 10 평 남짓한 이 공간이 전부랍니다. ‘상가’가 꼭 다점포로 구성된 건물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길종상가에는 ‘한다 목공소’, ‘판다 화랑’, ‘밝다 조명’, ‘있다 만물상’, ‘꿰다 직물점’, ‘걷다 사진관’ 등 7개 업체가 입점해 있다. 물론 이들은 정식 상가임대차계약을 맺은 것도, 점포 형태의 매장을 구성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각각의 업체들은 꿋꿋한 청년 CEO들이 꾸려나가는 엄연한 독립 회사다.
박길종씨는 길종상가 관리사무소를 맡아 상가의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한다. 동시에 ‘한다 목공소’의 주인장도 겸하고 있다. 그는 ‘박가공’이라는 범상치 않은 닉네임처럼 독특한 가구를 뚝딱 만들어낸다. 가구 제작을 ‘어깨 넘어로 배웠다’는 그는 발상 자체가 남다르다. 그의 가구는 결코 정형화되는 법이 없다. 엉뚱하다 못해 상식을 뛰어 넘는다.
가게 전면에 자리 잡은 ‘목마 위 얹어진 책장’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 흔들리는 목마 위에 누가 책장을 올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의 ‘걸 수 있는 거리’는 죄다 걸도록 만든 병풍형 가구도 독특하다. 이름마저 ‘걸이 거리다’이다.
길종상가에서는 ‘낡은 것’의 가치가 느껴진다. 매장 한 켠의 오래된 LP판과 CD, 길종상가 관리실에서 직접 사입한 프랑스 빈티지 원피스, 박씨가 초등학생 때 그린 수채화, ‘있다 만물상’의 오목 렌즈, 만화경, 오재미, 3단 꽃무늬 도시락 등. 2030 세대들이 물어물어 길종상가를 찾아 오는 이유기도 하다.
‘간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직업학교 프로그램도 운영 중인 박씨는 취업난을 겪는 청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는 “우리가 가르쳤던 그림이나 실 공예가 실제 구직 활동엔 별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는 길만이 인생의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오늘도 ‘88만원 세대’의 안식처, 길종상가에는 청춘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Interview with 박길종 길종상가 운영자
- 가구 제작은 언제부터?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우연히 DIY 목공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1년간 잡부처럼 일하다 보니 어느새 기본적인 기술을 익히게 됐다.”
- 디자인 영감은 어디서 얻나?
“이 근방은 보다시피 조금 촌스럽지만 운치 있는 동네다. 주변 주택가에선 할아버지들이 내다버린 가구를 개조해 사용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들이 독특하게 리폼한 가구들을 보면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 ‘한다 목공소’의 주문 방식은?
“모든 가구는 철저히 오더 메이드로 제작된다. 주문이 들어오면 우선 가구가 놓일 공간을 방문한다. 가구의 위치, 공간 사이즈, 주변 분위기, 소비자 성향 등을 고려해 디자인과 생산을 시작한다.
- 프로그램도 진행한다던데?
“매회 다른 유형으로 진행되는 직업학교 프로그램이 3회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실을 이용해 패브릭, 가방 등을 만드는 ‘실로몬’ 강습 교실을 열었다. 1회는 ‘판다 화랑’의 송화백과 함께하는 그림 교실, 2회는 가구 미니어처를 만드는 ‘우드 아닌 우드락’을 진행했다.
- 향후 계획은?
“최근 막을 내린 문화역 서울 284의 ‘인생사용법’처럼 앞으로도 전시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가할 계획이다. 10일에는 『에이랜드』 홍대점에서 팝업 스토어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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