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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겨울맛의 진수

Paul Ahn 2008. 5. 1. 16:26

⊙냉면,겨울맛의 진수

 (iloveorganic.co.kr)

 

과연 냉면의 계절은 여름일까

아니면 겨울에 더 어울리는 음식인가. 또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언제 먹어야 제맛이며, 왜 평양냉면은 물냉면이고 함흥냉면은 비빔냉면 일까?

 

 

미식가나 요리 전문가, 각자 개인 등의 의견 차이가 심한 것이 바로 이 질문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겨울에 먹는 냉면을 선호한다. 옛날에 따뜻한 온돌방에 모여 앉아 늦은 밤에 먹는 평양냉면(물냉면)은 추운 계절임에도 오히려 포근하게 마음을 감싸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겨울에 먹는 냉면을 더욱 즐긴다.

 

또한 함흥냉면 중회냉면’은 홍어(삭히지 않은 것)를 같이 곁들여 먹는데 이 홍어가 겨울철에 찰지고 맛이 들어 더욱 그렇다. 지금은 홍어가 비싸 대신 간재미를 사용하는 냉면집이 많다. 이렇듯 냉면은 계절의 식감(메밀, 홍어)으로 겨울철에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집은 동대문시장을 옆에 두고 수많은 약국이 있는 상가 지역에 위치하였다. 약국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당시 약국은 거의 병원과 다를 바 없었는데, 아프면 먼저 약국에 가서 증상을 이야기하면 약사가 약을 조제하여 주었다. 약국 이야기를 하니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건강이 썩 좋지 않으셨다. 그래서 약국 심부름도 많이 했으나 어머니가 판피린 하나 사와라 하시면 약국이 바로 옆집인데도 그게 귀찮아서 짜증을 내곤 하였다. 지금도 가끔판피린만 먹으면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이런 지역적 여건으로 우리집 주변에 대형 음식점이 많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주로 냉면집(종로4), 국일관(종로2), 한일관(불고기, 종로2) 등에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그 시절 외식은 주로 냉면, 짜장면, 불고기를 선호했으며 입학식, 졸업식, 어머니 지인들의 곗날 등 모임의 주 메뉴였다.

 

나는 초등학생 때 어머니를 따라 한 달에 한 번 있는계 모임에 자주 갔는데 장소는 주로 동네 근처 냉면집이었다. 사실 나는 그럼 모임이 왠지 창피하고 눈치가 보여 어머니를 따라가는 것이 싫었는데 그때 내 기억으로는(확실치는 않지만) 한 사람당 음식 한 개를 시켰고 어머니는 냉면집에서 육수만 드시고 나에게 냉면을 준 것 같은 희미한 기억이 있다.

 

그때 그 냉면집이함흥 곰보 냉면이다. 이 음식점은 동대문 광장시장 (종로4) 주변의 시계, 금은방이 모여 있는 항상 복잡하고 북적거리는 골목에 있었으며 이 집의 냉면은 순전히 어머니와 함께한 맛으로 기억되는 집으로 이제는 추억의 식당이 되었다.

 

말이 필요없다

3년 전쯤, 작은형이 누이들 내외, 큰형, 우리 식구를 초대하여 돌아가신 어머니와 어릴 적 추억을 되새길 겸 이 식당에 모여 (종로4가 종묘 옆 귀금속 건물 4층으로 이전) 불고기, 만두, 냉면을 먹고 종묘도 우리 모두 함께 산책하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안 계시니 냉면 맛도 예전 같지 않고 종묘도 어머니의 흔적이 생각나 작은형의 의도와는 반대로 우리 형제 모두 흥이 나지 않았다. 특히종묘’, ‘창경궁은 어머니와 자주 왔던 곳으로 너무 일찍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픈 마음에 더욱 그런 것 같았다.

 

맛있는 음식도 부모님 계실 때 먹는 것이 최고 맛임을 이제 깨닫는다. 이 집의 만두는 직접 만들어서 풍부한 맛(두부, 숙주나물 등)이 있으며 냉면 가락은 아주 가느다란 것이 특징이다.

 

중구 오장동에도 여럿 유명한 냉면집이 있으나 나는 원조 격인흥남집을 좋아한다. 예전에 냉면집은 모두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가 길게 늘어선 식탁에서 마주앉아 먹었으며 그때흥남집’은 규모면에서는오장동 함흥냉면집보다 작았지만 원조다운 면모가 있었다.

 

 

흥남집과 오장동 함흥냉면 집의회냉면맛은 좀 다른, 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두 집 다 전분을 사용한 면으로 찰진 식감을 주어 상쾌하다.

흥남집 냉면은 나만의 방법으로 먹는데, 나는 여러 메뉴 중 꼭회냉면을 주문한다. 일단 회냉면이 나오면 계란부터 먹고, 참기름을 두르고, 설탕을 뿌린다. 그리고 면을 자르지 않고 먹는데 가위가 들어가면 왠지 쇠 맛이 들어 있어 불쾌한 느낌을 주고 또한 갓 뽑아낸 냉면의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도 냉면을 자르지 않고 먹는 것이 나와 똑같다. 벌써 이 집을 드나든 게 40년이 훌쩍 넘는다.

 

딸이 중국에서 오는 날이면 공항에서부터 제일 먼저 오장동흥남집으로 간다. 회냉면과 사리를 주문하면 주인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고 사리 값은 안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제는 할머니가 안 계시고 가족이 운영하지만 아직도 가끔은 아들과 같이 가면 잔잔한 대우(사리 공짜!)를 받는다.

 

또한 아들은섞임 냉면을 시키는데 돌아가신 어머니의 주문과 똑같아 흠칫 나혼자 놀라곤 한다. 수육은 씹히면서도 부드러운 고기 맛이 한결 개운하다. 고기 맛을 표현하는데개운하다는 말이 어색할지 모르지만 고기 맛은 개운할 정도의 느낌이 와야 정말 좋은 고기이고 텁텁한 기름과 고기 냄새가 없는 깔끔한 맛, 이것을 나는개운한 맛이라 표현한다.

 

사람들은 담백하다, 시원하다, 식감이 부드럽다고 맛을 표현하는데 이는 맛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힘들고, 지치고 누군가 그리울 때는 고향 찾듯이 혼자 흥남집에서 회냉면 한 그릇하고 초등학교 시절 동네 친구들과 묵정공원(그때는 수영장이 있었음)에서 놀던 생각을 하며 활력을 되찾는다. 어머니로부터 우리 식구들의 추억이 배가 되는 이곳이다.

 

사실 나는 물냉면(평양식)에 대해서는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거의 함흥냉면(회냉면) 맛에 길들여져 있었고 매콤한 냉면에 맛있는 육수는 어린 나에게는 꿈같은 조합이었다.

 

그때 육수는 왜 그리 맛있는지, 여러 컵을 먹은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가끔 물냉면이 먹고 싶을 때 가는 집이 있다. 집 가까이에 있는평양면옥이다. 원래 평양면옥은 퇴계로6가 장충동 입구에 있다. (젊은 시절에도 장충동 족발을 먹고 집에 가는 길에 이곳에 들러 냉면을 먹고 동대문운동장(서울 운동장, 고교야구 많이 하던 곳) 쪽으로 해서 집에 가곤 했다.

 

그 당시 대학시절까지도 야구, 축구 등 모든 실외 경기는 동대문 운동장. 배구, 농구 등 실내경기는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특히 나는 집과 가까운 동대문운동장을 좋아하는데 고교야구가 한창 인기 있을 때는 한 7회 말쯤 되면 몇 개의 후문 출입구가 미리 열려 있어 나는 그때를 틈타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 라이트에 비치는 파란색 다이아몬드 마운드를 보며 희열에 잠기곤 했다.)

 

평양면옥장충동 평양면옥집 주인과 친인척 되는 모양이다. 이 집 제육은 먹을 만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기 냄새를 싫어하고 또한 입맛이 웃겨서(?) 고기류는 내가 좋아하는 부위만을 선호하는데 이 집 돼지고기 수육은 거의 나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기름기도 거의 없고 특히 오돌뼈가 붙어있는 부위는 고소함이 상당하고 같이 먹는 새우젓 또한 통통하고 깔끔하여 부득이 반주를 불러들여 즐거움을 더한다.

 

국수는 혼합 메밀(개인적 맛?)을 사용하는 것 같고, 육수는 삼삼한 게 나의 입맛을 돋우어 주고 가슴까지 울려 주는 맛이며 게다가 집 근처에 있어 고맙다.

물냉면은 육수가 생명으로 식당마다 그 맛이 차이가 있다. 자주 가는 물냉면 집으로는 필동면옥, 을지면옥, 남포면옥 등이 시내에 아직도 건재하니 독자분들도 그 맛의 차이를 느껴보시기 바란다.

 

 

또 다른 맛을 선사하는 물냉면 집이 있다. ‘봉피양이다. 사실 나는 딸, 아들과 상당한 시간들을 보내며 많은 이야기와 먹거리에 대한 추억이 많이 쌓여 있다. 아들(주노)이 대학 다닐 무렵 나는 아들을 데리고 청담동 언북 초등학교 옆봉피양에 갔다.

 

봉피양에 갈 때 약간은 걱정스러 웠는데 그 이유는 물냉면 맛이 젊은 아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평을 못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의 입맛으로 평가하면 봉피양 물냉면은 거의하이엔드(High-End)급 육수인데, 그래도 이 집의 돼지갈비만큼은 아들이 좋아할 것 같아 식당으로 향했다.

 

먼저 돼지갈비를 숯불에 굽는데 친절하게도 아주머니가 끝까지 구워주셨다. 타지 않고 육즙이 있으면서 기름기가 짜르르 흐르고 양념(간장)이 소박하게 배어 있는 돼지갈비를 한 점 먹으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특히 간장으로만 양념을 해서 거의 서울식 갈비와 맛이 비슷하다.

 

나는 갈비를 자를 때 꼭 갈비에 살이 넉넉히 붙어있도록 하여 나중에 손으로 갈비를 잡고 뜯는 습관이 있으며 이렇게 먹어야 갈비 먹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이런 나의 취향을 알고 아들은 아주머니에게 갈비뼈에 살이 붙어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한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고마운 녀석...’ 이렇게 돼지갈비를 먹은 후 물냉면을 시켰다. 전분이 들어있지 않은 순수 메밀향이 은은한 냉면으로 투박하면서도 자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아들이 육수를 한 모금 들이켠다. 무슨말을 할까 기대되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한 모금한다.

 

그리고 잠시 후 하는 말이거 맹물이네, 근데 이 물에 빠지겠네.” 나는 그 순간 아들하고 하이파이브 손뼉을 쳤다. “~ 가르친 보람이 있네.” 아들과의 봉피양 냉면은 그렇게 시작됐고 너무 맛있는 추억의 냉면이 되었다. 아이들이 서울에 오면 봉피양의 서울식 돼지갈비와 순박한 물냉면을 다시 먹을 것을 기대하며, 냉면의 추억에 젖는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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