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 / 미국 1930년
• 설립일 : 1930년 3월 20일
• 설립자 : 할랜드 샌더스
• 본사 :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1930년대에 켄터키 주에 사는 할랜드 샌더스, 통칭 '샌더스 대령(Colonel Sanders)'이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으로 창업하였다. 1964년에 샌더스는 향토사업가 존 Y. 브라운과 잭 매시에게 회사를 넘겼고, 자신은 대변인을 맡았다. 1966년에 기업공개를 단행해 1969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샌더스 대령은 인생의 황혼기에 대박을 맞은 경우로, 작은 식당을 차렸으나 1년만에 화재로 모든 것을 잃은 뒤 지금 한국 돈으로 10만 원 남짓 되는 연금만으로 매우 궁핍하게 생활했다고 한다. 상황이 너무 절망적 이었던 지라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게다가 '대령'으로 불리는 것은 실제 군 복무를 해서 대령 계급에 오른 것이 아니라 친구가 켄터키주 주지사가 되면서 명예 대령 계급을 수여한 것. 남부에서는 원래 중년 이상되는 신사에게 존칭으로 Colonel이라고 불러주며, 한국어의 '영감'과 비슷한 용례이다.
결국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도우면서 익힌 요리 실력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 노구를 이끌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자신만의 닭 요리법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빈털터리였던 그는 끼니도 홍보용으로 만들고 남은 자신의 치킨과 비스킷으로 때웠다고 한다.
무려 수백 번의 시도 끝에 한 식당에서 샌더스에게 치킨 1조각을 판매할 때마다 일정 금액의 로열티를 준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샌더스의 치킨이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자 식당에서 독립하여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이라는 개인 식당을 창업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이 나이에 뭘해라고 생각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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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 창업자, 커넬 샌드스 이야기는 이 어려운 때에 큰 힘이 된다.
그가 6살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했어야만 했고, 어린 커넬은 3살짜리 남동생과 어린 여동생을 스스로 돌봐야만 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게 되었다. 그가 7살이 되던 해에는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가 10살 되던해, 농장 근처에서 월 $2 (약 2,300원)을 받으며 일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그 후 철도소방원, 보험외판원도 했고, 타이어도 팔았고, 주유소(편의점이 딸린)도 경영을 했다.
그가 40살이 되던 해, 코빈(Corbin, Kentucky)에서 배고픈 여행객들이 주유소에 들렀을 때 요리를 해주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을 운영한 것은 아니었고, 그의 식탁에서 여행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것이었다. 점점더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자, 그가 운영하던 주유소 건너편에 142명이 앉을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11가지 맛좋은 양념을 완벽하게 완성시켰으며, 그 비법은 지금까지도 유지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그가 65세가 되는 무렵 새로운 고속도로가 레스토랑을 가로질러 가게 되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고, 거의 파산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사회보장기금 $105로 생활을 근근히 이어 갔다. 그렇지만 튀김 닭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차를 타고 다니며 여러도시를 돌며 그의 치킨을 레스토랑의 요리사와 직원들에게 맛 보였다. 맛은 좋으나 65세 노인과 거래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1009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그렇지만 1010번째 계약에 성공하면서 점점 성장하였고, 1969년도에는 NYSE (뉴욕주식거래장)에 상장 되었다. 커넬이 1980년에 백혈병으로 사망직전 까지, 최소한 400,000Km이상을 여행하며 KFC 왕국을 세웠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가 65세 때 받았던 105달러의 사회보장지급금으로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나이가 많아서 못하는게 아니라 생각이 늙고, 도전의욕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다. 70세가 되더라도 지금은 재기가 가능한 시대이다. 건강도 삶에 대한 의욕이 있을때 지켜진다.
KFC의 역사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은 프라이드 치킨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의 얼굴로 알려진 이 브랜드의 창업자는 할랜드 샌더스(Harland Sanders)이다.
할랜드 샌더스는 1890년 인디애나주 헨리빌에서 태어났다.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가 일을 해야 했다. 그녀가 일하러 나가는 동안 할랜드는 두 동생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 음식을 요리했다.
12세에 그의 어머니는 재혼했다. 그러나 그의 의붓아버지는 할랜드 형제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 년 후에 그는 집을 떠나 농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아침에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잡일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7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대수학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후 몇 년 동안 전차 지휘자, 보험 판매자, 철도 소방관, 증기선 운영자, 타이어 판매자 및 변호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였으나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1930년 첫 번째 돌파구
1930년, 샌더스는 켄터키주 코빈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일자리를 얻었다.
그 주유소에서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 그는 음식을 요리하여 손님들에게 제공했다. 이곳에서 그는 프라이드 치킨과 어렸을 때 배운 다른 요리를 제공했다.
프라이드 치킨을 요리하는 데 약 30분이 걸렸는데, 프라이드 치킨이 메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샌더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닭고기를 튀기는 대신 압력솥을 사용하고 시간을 8-9분으로 줄였다. 이방식은 그가 프라이드 치킨을 더 많이 파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요리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찾아왔다. 그의 치킨은 큰 인기를 끌었고 결국 그는 주유소를 없애고 주유소를 본격적인 레스토랑으로 개조했습니다.
◇사업확장과 파산
1936년 그는 켄터키 주지사로부터 켄터키 대령 칭호를 받았다.
1937년까지 그는 약 142명을 수용할 수 있는 카페(Sanders courts & café)와 모텔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는 치킨 레시피를 계속 실험했다.
1938년, 그는 마침내 프라이드 치킨 레시피를 완성했다. 레시피에는 11가지 허브와 향신료가 포함되어 있으며, 오늘날까지 KFC는 비밀로 지키고 있다.
"밀가루에 치킨레시피 두 줌을 넣고 나머지 조미료와 함께 저어줬어요. 튀겨 보니 살면서 먹어본 치킨 중 최고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재료를 바꾼 적이 없습니다." - 그의 자서전에서 발췌 -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에 또 다른 Sanders Court & Café를 열어 다시 한 번 사업을 확장했으나 1939년, 화재로 코빈의 식당이 소실되었다. 재건될 무렵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여 주로 관광객으로 구성된 고객 기반이 줄어들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애쉬빌 지점을 매각했다.
그의 사업은 계속 어려움을 겪었고 1955년에 또 다른 타격을 입었습니다. 고속도로에 주간 우회 도로가 건설되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었다. 결국 샌더스는 코빈에서 자신의 자리를 팔아야 했다.
그는 66세였고 105달러의 사회 보장 수표로 생활해야 했다.
◇자신의 레시피를 프랜차이즈화
그러한 역경이 반전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샌더스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entucky Fried Chicken)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레시피를 프랜차이즈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1952년에 Pete Harman에게 자신의 레시피를 성공적으로 프랜차이즈화하면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고용한 간판 화가인 돈 안드레슨(Don Andreson)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entucky Fried Chicken)"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는 압력솥 몇 개와 11가지 허브와 향신료를 섞어 차에 싣고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국을 여행하고 도중에 수많은 레스토랑을 방문하여 샘플을 제공했다. 그들이 샘플을 맛본 후, 그는 식당 주인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협상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판매하는 모든 닭고기 조각에 대해 보통 0.04달러의 수수료였다. 그 대가로 그는 그들에게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유타의 한 레스토랑과 첫 번째 프랜차이즈 계약을 체결했으며 1963년까지 미국 전역에 600개의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프랜차이즈가 있었다.
하지만 샌더스가 그렇게 늙은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사업이 너무 컸다.
◇KFC의 매각과 사망
많은 사람들이 샌더스로부터 KFC를 사려고 했고, 1964년 할랜드 샌더스는 존 Y. 브라운과 잭 C. 매시가 이끄는 투자자 그룹에 KFC를 200만 달러에 팔았다. 그는 품질이 항상 유지되고 평생 급여를 받으며 항상 회사의 얼굴로 남을 것이라는 조건으로 판매했다.
1970년에는 48개국에서 3,000개의 매장 수가 늘어났다. 1971년 Brown은 KFC를 식품 포장 및 음료 회사인 Heublein에 2억 8,500만 달러에 매각했다.
할랜드 샌더스는 1980년에 사망했다. 그가 사망할 무렵에는 48개국에 6000개의 KFC 매장이 있었다.
거대 담배회사인 R.J. 레이놀즈는 1982년 휴블린을 인수했고, 1986년 KFC를 펩시코에 8억5000만 달러에 매각했다. 펩시코에 합류한 후 많은 신제품이 출시되었다.
"KFC"라는 이름은 1991년에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회사는 계속 성장했고 1997년 PepsiCo는 KFC, Taco Bell 및 Pizza Hut을 포함한 레스토랑 체인을 Tricon Global restaurant Inc.로 분사했다. 새로운 회사는 Yum!으로 브랜드를 변경했다.
◇2020년대 KFC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기 위해 KFC는 다양한 메뉴를 선보였다. 인도와 같은 국가에서는 더 많은 청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많은 채식 요리를 도입했다. 마찬가지로 KFC는 운영 국가에 따라 메뉴를 구성했다.
현재 KFC는 전 세계 135개국에 22,600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0년 7월 27일 기준 브랜드 가치는 미화 83억 달러, 매출은 279억 달러이다. KFC의 브랜드 가치는 세계 96위로 평가된다다.
2023년 4월 25일
Parth Ve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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