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사치〕샤넬치약·구찌세제…요즘 서민들 부자생활 즐긴다.
일반 제품 대비 최대 30배 이상 비싼 프리미엄 생필품 유통업계 대세 등극
◇경제학에 ‘립스틱 효과’라는 이론이 존재한다.
지난 1930년 미국 대공황 시절의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용어다. 당시 미국 산업별 매출 통계 결과 립스틱 매출이 유독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립스틱은 다른 화장품들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은 저렴하지만 사용 시 ‘화장을 했다’는 심리적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여성 소비자들은 불황기에 돈을 최대한 아끼면서도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립스틱을 많이 소비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 불황기에 저가로 사치를 즐기기에 적당한 제품의 매출이 증가하는 현상을 ‘립스틱 효과’로 명명했다.
‘립스틱 효과’는 ‘넥타이 효과’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립스틱효과와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생필품 중 양질의 고가 제품을 소비하는 ‘작은 사치’, ‘스몰 럭셔리’ 등의 소비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최근 유통가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작은 사치’ 소비 패턴과 이 같은 현상의 배경 등에 대해 취재했다.
▲ 최근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 ‘럭셔리 생필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각 유통업체들도 주방·섬유 세제부터 치약, 칫솔, 샴푸 등 생활필수품들의 명품화를 시도하고 있다. 덕분에 생필품의 구매 이유 또한 ‘필요성’에서 ‘만족감’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사진은 프리미엄 치약 루치펠로(사진 왼쪽)와 보나비츠 ⓒ스카이데일리
최근 유통가에 ‘스몰 럭셔리’ 바람이 불고 있다. 오랜 기간 지속된 불황과 치솟는 생활물가의 영향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생활 속 작은 사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초콜릿, 케이크 등 식품에서 시작해 현재는 생활에 꼭 필요한 생필품으로까지 확산됐다.
치약, 세제, 화장지 등 과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로만 평가됐던 제품군에서도 ‘명품’, ‘프리미엄’ 등의 수식어를 단 신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푼돈 안 아깝다”…온라인 시장 프리미엄 생필품 열풍 오프라인으로 확대
식품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디저트 관련 업종이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SNS상에서 화제가 된 딸기뷔페를 시작으로 열대과일 뷔페, 초콜릿 뷔페 등 각종 고급디저트 뷔페가 생겨나고 있다. 소비자들의 호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롯데그룹 통합멤버십 브랜드 엘 포인트의 ‘4월 엘 포인트 소비 지수’에 따르면 프리미엄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에 대한 소비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47.7% 증가했다. 고급 디저트 소비의 증가는 ‘욜로(You live only once·YOLO)족’의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욜로’는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소비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소비트렌드는 최근 생활필수품 시장으로까지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생필품의 경우 과거 ‘필요하기 때문에 산다’는 인식에서 최근 ‘이왕 쓸꺼면 좋은 것 쓴다’는 인식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덕분에 양질의 제품 구매를 위해 지출을 아끼지 않는 소비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시작은 온라인 시장이었다. 온라인에서 프리미엄생필품을 소량으로 생산·판매하던 중소업체들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프리미엄세제 생산·판매 업체 ‘르주르(Le Jour)’가 대표적인 사례다. 르주르는 콩, 야자, 율무 등 친환경·식물성 소재에 본인들만의 발효, 나노화공법을 적용해 생산한 주방세재, 섬유유연제, 가루세제 등을 판매한다.
▲ 르주르 세제의 경우 일반 세제보다 8배 가량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하는 등 인지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프리미엄 생필품은 세제뿐만 아니라 치약, 칫솔 등의 품목에도 존재했다. 사진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진열된 르주르 세제(사진 왼쪽)와 ‘SUM MARKET’ 청담점에 진열된 Piave칫솔 ⓒ스카이데일리
르주르 주방세제의 경우 650㎖ 제품이 1만7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100㎖당 2615원이다. 관련 제품군 중 판매량 1위에 올라 있는 애경 트리오 주방세제(약 100㎖당 323원)보다 8배 이상 비싼 수준이다.
르주르 섬유유연제는 500㎖ 제품을 1만8500원(100㎖ 당 3700원)에 판매 중이다. 이 역시 관련 제품군 판매량 1위 피죤 섬유유연제(약 100㎖ 당 100원)에 비해 30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르주르는 일반 세제보다 더 고가인 여성 속옷용 세제, 유아용 세제 등도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가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르주르는 지난해 말 ‘한국소비자감동지수1위’(국민일보 주관) 인증식에서 고객만족브랜드(세제)부문 1위를 수상하는 등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 더베이 101, 신세계백화점 강남점(바디블루 점포)에 입점하는 등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1세트 10개’는 옛말…치약계의 샤넬 ‘루치펠로’, ‘보나비츠’ 인기
고가 생필품 인기는 세제 제품군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치약 역시 ‘명품’, ‘프리미엄’ 제품이 온라인 시장을 거쳐 오프라인 시장으로 진출 중이다. 대표적인 프리미엄 치약 업체로는 치약계의 샤넬로 불리는 ‘루치펠로’가 있다.
덴탈케어전문업체인 루치펠로는 천연유래 해양추출물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한다. 국내 브랜드로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탈리아 유명 브랜드 ‘마비스’와 비견되기도 한다. 유명배우 전지현이 애용해 ‘전지현 치약’으로도 알려져 있다. 루치펠로는 현재 롯데백화점(본점·잠실점·관악점), 신세계백화점(본점·강남점·영등포점), SSG(청담점·목동점), 현대백화점(본점·무역점·목동점) 및 면세점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루치펠로 치약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본점을 찾았다. 루치펠로 상품은 롯데백화점 본점 내 지하 1층 식품관 내에 진열돼 있었다. 타 치약들과는 달리 별도로 마련된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치약, 가글, 세트상품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가격은 치약 100g 9800원, 가글 480㎖ 1만5000원(100㎖당 3125원) 등이었다. 반대로 일반 치약의 경우 100g당 약 500원 가량에 판매되고 있으며 가글은 100㎖당 200원~300원 정도에 불과했다. 루치펠로 제품은 일반 제품에 비해 적게는 10배에서 많게는 20배 가까이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셈이었다.
진열대 근처에서 상품을 안내 중이던 한 직원은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이지만 최근 조금씩 판매가 늘고 있다”며 “이 제품을 사기위해서 마트를 방문하는 고객들도 있을 정도다”고 말했다.
▲ 프리미엄 샴푸의 경우 브랜드, 상품에 따라 10만원 이상의 가격에 판매되는 제품이 존재한다. 바디워시 역시 100㎖당 1만원 이상에 판매되고 있으며 일부 고급 양날면도기의 경우 11만원에 해당하는 제품도 존재했다. 사진은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존마스터 오거닉 샴푸, 퓨어체크 샴푸, 데메테르 바디워시, 더비엑스트라 면도기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치약을 살펴보던 이수연(29·여) 씨는 제품 가격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묻자 “다른 치약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1만원 자체가 그렇게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며 “‘나를 위해 이 정도는 투자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구매하게 된다”고 말했다.
루치펠로와 함께 명품치약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보나비츠의 제품은 주로 편집숍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편집숍은 한 매장에 2개 이상의 브랜드 제품을 모아 판매하는 유통 형태를 의미한다. 보나비츠 역시 계면활성제, 타르섹소 등 화학성분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제품을 생산·판매 중이다. 현재 부츠(드러그 스토어) 스타필드 하남점과 ‘SUM MARKET’ 등에 입점해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직접 찾은 청담동 소재 ‘SUM MARKET’ 에는 보나비츠 제품이 타 브랜드 제품들과 함께 진열돼 있었다. 꽃과 새가 그려져 있는 보나비츠 제품 특유의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보나비츠 치약은 120g상품이 1만5000원(100g당 1만25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치실의 경우 3개 6000원이었으며 칫솔은 1개 당 8000원에서 1만원 사이였다.
매장에서 상품을 구경 중이던 송희진(31·여)씨는 “요즘에는 식품, 마트 등 어디를 가나 비싸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며 “내가 아껴서 소비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아 최근에는 보다 과감하게 소비를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럭셔리 생필품 이끄는 ‘뷰티 편집숍’…13만원 샴푸부터 10만원 면도기까지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현재 명품 생필품 소비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곳은 2개 이상의 브랜드를 한 곳에 모아놓고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특히 미용제품들을 모아놓은 뷰티 편집숍은 고급 샴푸, 바디워시 등을 판매하며 ‘럭셔리 생필품’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강남구에 위치한 ‘크리마레’를 찾았다. 크리마레는 패션 종합쇼핑몰 ‘디스카운트’에서 운영하는 뷰티편집숍이다. 기존의 뷰티편집숍에 휴식공간을 추가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각종 국내외 브랜드 화장품과 스킨·헤어 케어, 캔들, 디퓨저 등을 판매하고 있다.
▲ 럭셔리 생필품은 주로 일반마트보다 편집숍에서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다. 특히 뷰티편집숍에서는 각종 국내외 브랜드 화장품뿐만 아니라 고급 헤어·스킨·바디케어 상품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사진은 뷰피편집숍 크리마레 내부 전경 ⓒ스카이데일리
매장 입구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들어온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매장 안쪽에 마련돼 있는 휴식공간과 ‘SKIN’, ‘HAIR’ 등으로 구분된 진열장에 빼곡히 진열돼 있는 제품들이었다. 일반 마트에서는 보기 힘든 다소 낯선 제품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가격 역시 일반 시중 제품에 비해 고가였다.
샴푸의 경우 미국 존마스터 오거닉의 ‘징크&세이지 컨디셔닝 샴푸(473㎖)’가 6만7000원(100㎖당 1만4165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허니 & 하이비스커스 헤어 리컨스트럭팅 샴푸(473㎖)’의 가격은 12만9000원(100㎖당 2만7273원)에 달했다. ‘허니 & 하이비스커스 헤어 리컨스트럭터(473㎖)’는 개당 18만8000원(100㎖당 3만9746원)이었다. 샤샤후안의 ‘오션 미스트 블루샴푸(250㎖)’는 3만2000원(100㎖당 1만2800원)이었고, ‘오션 미스트 볼륨 컨디셔너(250㎖)’ 또한 같은 가격이었다.
바디워시의 경우 존마스터 오거닉의 ‘로즈마리 아니카(236㎖)’가 3만5000원(100㎖당 1만4830원), 데메테르의 ‘바디클렌저(120㎖)’가 1만2000원(100㎖당 1만원) 등에 각각 판매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인텐스 테라스 ‘립밤(7g)’ 제품이 1만4000원에, 더비엑스트라 양날면도기 제품이 11만원에 각각 판매 중이었다.
크리마레에서 판매되는 제품들은 대부분 일반 제품에 비해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긍정적인 편이었다. 매장 내에서 한 헤어제품을 구매한 유수진(가명·31·여)씨는 “물론 매번 이러한 (고가의) 제품들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구매할 때 마다 상당한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른 명품제품들은 부담이 되다보니 고급 생필품을 통해서 소비활동을 즐기고 있다”며 “경제 사정이 너무 안 좋다보니 돈을 모으는 것에 대한 기대가 없어지고 그 것이 소비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기불황 속 생활물가 상승, 소소한 사치 즐기는 소비 성향 원인으로 지목
▲ 럭셔리 생필품 열풍은 오랜 불황과 최근의 생활물가 상승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일어나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불황으로 인해 미래를 위한 투자, 저축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줄어들었으며 생활물가 상승으로 럭셔리 생필품의 가격이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사진=스카이데일리DB]
유통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고급 생필품 소비 성향은 불황과 생활물가 상승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불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물가상승까지 겹치자 소비자들 사이에서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는 현재의 소비를 즐기자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수년간 한국경제는 말 그대로 ‘불황’이 이어져 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2.8%의 낮은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증가율)을 기록했다. 2015년 2.8%에 이어 2년 연속 2%대 성장률을 보였다. 최근 5년으로 기간을 확장하더라도 지난 2014년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해 모두 2%대 성장률에 그쳤다. 2012년 경제성장률은 2.3%며 2013년과 2014년은 각각 2.9%, 3.3% 등이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율 전망치 역시 3%의 벽을 넘지 못했다. 노무라증권은 2.7%를 예측했으며, 씨티은행은 2.9%를 전망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세계경제성장 전망치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OECD는 최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3%에서 3.5%로 상향조정했다. 한국에 대한 전망치는 2.6%로 유지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소비자들의 생활물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와 오랜 가뭄으로 인해 일부 식료품들을 중심으로 소비자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스프(7.6%) ▲즉석우동(5.4%) ▲된장(3.4%) ▲식초(3.0%) ▲닭고기(11.9%) ▲무(5.3%) ▲구강청정제(6.1%) 등이 높은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국민음식이라 불리느 제품들도 줄줄이 가격이 오르고 있다.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BBQ의 가격인상을 시작으로 치킨업계는 ‘1마리 2만원’ 시대를 열었다. 오비맥주는 지난해 11월 카스, 프리미어OB, 카프리 등 주요 맥주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 인상했다.
라면업계 1위 농심은 지난해 말 신라면, 너구리 등 12개 브랜드의 권장소비자 가격을 평균 5.5% 올렸다. 삼양식품 역시 내달 1일부터 주요 브랜드 제품의 가격을 평균 5.4% 가량 인상시킬 계획이다.
소비자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불황이 지속되자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심리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작은사치’에 열중하고 있다”며 “그러던 중 생활물가 상승으로 고급생필품과 일반생필품의 가격차이가 줄어들게 되자 명품 생필품에 대한 소비를 더욱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7-06-16
이기욱기자(gwlee@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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