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북한의 농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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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회주의인 북한에 자본주의의 상징인 시장이 존재하나요?
북한의 장마당.. 이미 남한에도 널리 알려진 용어입니다.시장경제를 부인하고 계획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북한에서왜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는 걸까요? 북한에서 사적 경제활동을 통하여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는 시장에서의 거래를 통하여 유통되며,재화와 서비스가 거래되는 북한의 시장은대체로 농민시장(장마당)과암시장의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장마당의 정식 명칭은 농민시장인데요,북한의 농민시장은 북한 당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합법적인‘사회주의적 상업’의 한 형태입니다. 즉, 농민시장이란 텃밭이나 부업밭, 뙈기밭 등을 통해 생산되는 농축산물이나 부업을 통한 생산물을 매매하거나 교환하는 농촌의 장터이지요.
평안남도 안주시의 장마당 풍경
북한은 자본주의적 요소인 농민시장을 허용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는데요,사회주의 초기에는 아직 생산력 발전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일부 부식물들과 일용품들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 상황이라 농민시장은 자본주의적 잔재를 많이 가지고 있는 뒤떨어진 상업 형태이기는 하지만 농민들의 생활편의를 도모하고 노동자·사무원들에게 여러 가지 농산물을 공급함으로써생활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즉, 농민시장을 사회주의가 완성되기 전의 과도기에서의 일시적 현상으로 보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농민시장은 농산물 및 각종 생필품 유통에 매우 큰 역할을 하였으며,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의식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농민시장이 그 성격이 변화되고 규모가 확대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농민시장의 형성과정장마당으로 불려지는 북한 농민시장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외부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 경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 내에는 광복 직후부터 장마당이 존재해 왔고, 50여 년간 명칭과 운영 형태는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북한 당국은 이를 폐쇄한 적은 없었지요.
농민시장은 대체로 인민시장(1950년 이전) → 농촌시장(1950년)→ 농민시장(1958) → 농민시장 상설화(1982) → 종합시장(2003)으로 변천해 왔습니다. 80년대 들어 북한에서 농민시장(암시장)이 확산된 계기는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변경무역과 부업밭 등의 허용이 농민시장의 거래규모를 급속히 확대시켰습니다.
거기다 1984년 가내 부업을 장려하는‘8·3 인민소비품창조운동’을 계기로 술이나 떡 등과 같은 간단한 식품의 생산과 의류 및 신발의 수선, 목수일 등과 같은 다양한 개인 부업활동이 증가하기 시작했지요. 둘째, 1989년에 개최된 평양축전의 영향을 들 수 있습니다.
이때 중국 등지로부터 상품들이 유입되었고, 축전 개최로 인한 경제위축으로 주민들의 생필품 조달이 더욱 어렵게 되었습니다. 셋째,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귀국하는 노동자들을 통하여 유입되는 소비품이 주민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한 측면도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농민시장이 비사회주의적 현상을 확대시키는 등 폐해가 크다고 판단하고 1987년과 1992년에 농민시장을 축소시키기 위하여 매일장을 10일장으로 환원시키려는 조치를 취하였으나, 1989년과 1993년에 각각 이를 취소하고 다시 매일장으로 환원시켰습니다.
북한 당국의 이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농민시장은 국영 상업망이나 협동단체의 상업망을 보완하는 상품 유통체제의 하나로 자리를 잡아갔으며, 동시에 개설 취지와 달리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주민들의 생활용품과 식료품 등 공업용품의 암거래 시장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장마당에서의 거래장마당에서는 어떻게 거래가 이루어질까요?
우선 장마당 거래가격은 ‘국정가격’과 달리 시장에서 결정되는 ‘시장가격’이며,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시장가격이 국정가격보다 높지요.
장마당에서의 거래상품은 원래 개인이 텃밭에서 생산한 채소류 등만 허용되었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사적 생산물, 국가 공식부문에서 절취·유출된 상품, 외국상품 등 제한 없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주거래 물품은 식량과 소금인데 옥수수와 쌀의 거래는 식량배급이 중단되기 시작한 1995~1996년쯤부터 급격히 늘어났으며, 소금은 된장·간장공장의 가동 중단으로 장류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장마당에 필수적인 거래품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잡화로는 세탁비누가 가장 많은데 이는 대부분 중국산이나 개인 제조품입니다다.신발, 성냥, 라이터, 담배 등도 많이 팔리는 품목들입니다.
장마당에서의 거래제품도 점점 더 다양해졌는데요,닭·잎담배·계란 등 농산물에서부터 옷·신발·술·김치·두부 등 공산품과 식품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라고 해요. 특히 장날이면 제한된 장마당 구역 내는 발 디딜 틈이 없고 자릿세도 고가로 거래됩니다.이용자 수도 급속히 증가하였고, 도매상 거간꾼 등 전문적인 장사꾼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지요. 주민들은 농민시장에서 옥수수·쌀 등 식량의 약 60%, 생필품의 약 70%를 구입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비공식 경제부문 재화들은 주로 사적인 경제활동, 국경 밀무역, 중국 상인이나 조선족 동포들에 의한 보따리장사를 통해 유입되거나, 외화벌이 일꾼들에 의해 유용된 물자나 공장·기업소에서 절취된 물자들입니다. 이렇게 활성화된 암시장 거래형태는 재화 및 서비스 거래형태로만 그치지 않고 금융부문까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사채와 같은 사금융거래, 암시장을 통한 외환거래 등 형태도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장사 행태를 보면, 쌀·밀가루·콩·옥수수 등 곡물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본금이 넉넉해 애써 호객 행위를 하지 않는 편이나, 다른 품목의 장사꾼들은 집요하게 손님을 설득해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북한의 장마당에는 TV·냉장고·오디오·자전거 등도 거래되는데 이러한 물품은 먼저 흥정하고 물품을 건네 주는 형식입니다.
금지된 품목을 버젓이 내놓고 팔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처럼 멋진 디스플레이를 해놓고 손님을 끄는 형식이 아니지요. 흥정이 이루어지면 파는 사람은 사는 사람을 데리고 예정된 곳에 가서 돈을 받고 물건을 건네주는 방식입니다. *출처: 통일교육원, <주제가 있는 통일문제강좌: 북중변경무역과 북한의 시장실태>
북한 장마당 400개 육박 … 2010년 대비 2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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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풀뿌리 시장경제' 역할을 하는 '장마당'이 갈수록 늘어나 400개 정도에 육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커티스 멜빈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구글 위성사진을 분석해 "현재 확인할 수 있는 북한 내 장마당은 약 396개로 2010년의 200여개에서 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밝혔는데요
멜빈 연구원에 따르면 396개의 장마당 중 옥외나 길거리에 형성된 장마당이 77개로전체의 약 20% 정도라고 합니다. 평안남도 안주시의 장마당 풍경 (출처 : 노컷뉴스) 멜빈 연구원은 "북한 주민의 생계 수단으로 자리 잡은 장마당이 규모나 거리, 정책에 상관없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활발한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일본의 대북정보 매체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지금 북한 경제는 장마당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북한 내부가 정치적으로 긴장국면이지만 장마당을 완전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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