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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미(豊美) / 1953, 인천차이나타운

Paul Ahn 2019. 2. 7. 09:34

★풍미(豊美) / 인천차이나타운

 

위치 : 중구 선린동

창업 :  1953년

 

 

 

'코로나19' 차이나타운 대표음식점까지 흔들어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20200213010003563

 

70년 가까이 된 '풍미'도 피해 여파

日유지비 80만원에 매출 20~30만원

'임시휴업' 많은 날은 10여곳 달해

 

인천 차이나타운의 유명 중국 음식점인 '풍미(豊美)'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휴업을 고민하고 있을 정도로 차이나타운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하면서 인천 지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중구 선린동에 위치한 '풍미'는 인천 차이나타운의 대표적인 음식점 중 한 곳이다. 현재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영업 중인 50여 곳의 음식점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풍미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현재 자리에 문을 열어 70년이 가까운 세월 동안 차이나타운을 지켜왔다. 한현수(41) 사장은 할아버지부터 시작해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정확히 몇 년도 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6·25가 지나고 나서 시할아버님이 자장 장사를 하기 시작했으니 50년은 훌쩍 넘은 셈이지요.”

 

 

풍미가 들어설 당시 이곳 차이나타운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관광특구로 지정된 지금이야 주말이면 어김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천의 명소가 됐지만 1940년대 이후 화교들이 하나 둘 이곳을 뜨면서 1970년을 전후로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 결국 풍미도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일선에서 물러난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의 뒤를 이은 한정화·조지미 대표는 자장면이 아닌 빵 장사를 시작했다. 화교들을 상대로 빵과 왕만두를 판매하는 일이었는데 이 역시 신통치 않아 중국인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김밥과 만두 장사까지 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간판도, 내부도 어느 것 하나 손대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다.

 

한정화 대표 부부가 풍미를 다시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90년도에 들어서다. 결국 이곳의 존재를 아쉬워하는 지인들과 매스컴의 도움 덕에 94년도에 재오픈, 자연스레 대를 잇게 된 것이다. 때마침 인천시에서도 차이나타운의 재건을 위해 안팎으로 지원을 한 덕에 사라졌던 중국집이 하나 둘 다시 들어서면서 활기를 찾아갔다.

 

풍미의 4대 경영은 현재 한정화 대표 밑에서 주방일을 배우고 있는 아들이 맡을 예정이다. 일찌감치 대를 이을 생각에 스물 여섯 젊은 나이에 결혼, 아내와 함께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다. 현재의 한정화 부부가 일선에서 물러나면 아들에게는 주방을 맡기고 며느리에게는 홀을 맡겨 지금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차이나타운이 다시 번성하고 새로운 곳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한결같은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가끔은 들었단다. 새롭고 좋은 것을 찾아 떠나는 이들과 이러한 것을 애써 따라가지 않겠다는 결심 사이의 갈등이 그 이유였다.

 

“새로운 것만을 찾는 우리와는 달리 외국에서는 오래된 식당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잖아요. 요즘은 TV나 잡지를 봐도 온통 새롭고 좋은 곳들 뿐이라…. 우리나라도 일본의 노포처럼 전통 있는 음식점을 발굴하고 재조명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늘 들어요.”

 

 

◇4대에 걸친 가족 같은 고객, 옛 것 버릴 수 없어…

 

4대째 대물림되는 내력만큼이나 다양한 것이 풍미를 찾는 고객들이다. “아줌마 저 결혼했어요”라며 남편과 함께 찾아오거나, “얘가 이렇게 컸어요”라며 훌쩍 커 버린 아들 손에 이끌려 수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는 고객을 맞으며 그들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지곤 하는 조지미 대표다.

 

차이나타운이 다시금 활기를 띠면서 대형 건물과 최신 설비를 갖춘 현대식 중식당도 많이 생겨났지만 풍미만큼은 단 한번의 리모델링 없이 옛 모습 그대로다. 올려보기만 해도 겁이 나는 가파른 나무 계단과 빛바랜 옛날 사진들, 손때 묻은 중국 소품 등 모든 것이 50년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넓고 세련된 곳을 원하는 고객들은 그러한 곳으로 가세요. 저는 그저 옛날 기분 느끼려고 찾으시는 분들께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이 모습 그대로를 지켜가고 싶어요.”

 

그들을 위해 변하지 않는 또 하나는 풍미의 맛이다.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노하우와 중국에서 건너온 양질의 식재를 사용한 한결같은 맛으로 몇 년만에 찾아온 이들에게도 아련한 옛 맛을 전해주곤 한다. 중국산이 아니면 맛을 낼 수 없는 일부 메뉴는 중국에서 들여온 식재로, 아낌없는 재료를 넣어 정성껏 만들어 내는 것 외에는 특별한 비법이 없다는 조 대표이지만 50년 세월을 이어 내려온 손맛이야말로 최고의 비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느 중국집과 마찬가지로 풍미 역시 밥과 면, 냉채, 새우, 생선,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야채, 두부 잡품류 등 130여 가지의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이 중 가장 풍미다운 것은 소양해삼과 초마면. 해삼을 양념해 튀긴 후 소스를 입혀 제공하는 소양해삼은 야채와 곁들여 먹도록 해 맛뿐 아니라 영양까지 뛰어나 술 안주로도 인기인 요리다. 진한 육수에 야채와 해산물이 푸짐하게 들어간 초마면은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하얀 짬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옛날 짬뽕이라고도 불리는데 현대인 입맛에 맞게 고춧가루를 첨가해 먹는 것에서 시작해 지금의 형태로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단품 외에도 3만원, 5만원의 가족 세트메뉴 네 가지와 8만~30만원의 정탁 메뉴를 별도로 마련, 중국 정통 코스요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래도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역시 자장면과 탕수육임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장면은 한국음식이다

 

최근 들어 자장면의 ‘원조’를 두고 말이 많다.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것이냐, 한국에 거주하던 화교가 개발해 낸 것이냐 하는 국적 논란에서부터 과연 짜장면이 맞는지, 아니면 자장면이 맞는지 하는 표기법에 이르기까지 매스컴의 난데없는 자장면 논란에도 ‘국민 메뉴’ 자장면의 인기는 여전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장면은 인천광역시가 지정한 향토음식이다. ‘중국에는 자장면이 없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토착화 된 음식’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국민이 하루에 700만 그릇을 먹어 치우는,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에 젖은 음식이라는 것이다.

 

2006-04-25

사진|이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