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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 본질〕몽골제국 본질

Paul Ahn 2020. 1. 29. 09:19

업의 본질〕몽골제국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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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의 힘'으로 몽골제국을 경영하다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영토와 로마제국을 뛰어넘는 거대한 국가였던 몽골제국은 지금의 미국과 러시아를 합한 것보다 규모가 컸다. 이 제국의 시발점은 칭기즈칸으로, 변방의 작은 부족국가에서 계급 사회의 기득권이라는 개념을 없애고, ‘노마드(유목민)’의 본질을 지키며 단 70년 만에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지난 연재에서 다루었던 로마와 스페인 제국의 흥망성쇠는 내가 올 초 두 달 동안 역사의 현장을 직접 돌아보며 느꼈던 것을 옮겨 적은 것이다. 홈플러스의 전략마케팅부문을 맡으며 나 자신을 새롭게 일깨우고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도 됐다.

 

역사의 위대한 두 제국을 바라보면서 업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은 커졌고, 이것저것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한 제국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단기간 내 세계를 정복하고, 아시아부터 유럽까지 전세계를 호령하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지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나라에 대해서 말이다. 이쯤 되면 ‘아! 그 나라∼’하고 떠오르는 국가가 있을 텐데, 그곳은 바로 몽골제국이다.

 

 

◇칸의 제국, 세계를 석권하다

 

1200년대 지금의 만주와 몽골지역에서 일어난 몽골은 10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거대 제국을 완성했다. 서쪽으로는 지금의 중앙아시아를 석권, 러시아의 모스크바까지 점령했고 남쪽으로는 중국 남부, 동쪽으로는 우리에게 치욕의 역사이지만 고려를 점령해 몽골제국의 영토로 만들었다.

 

그 유명한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해내지 못했던 러시아 모스크바를 점령해 러시아 왕까지 갈아치웠다는 사실은 새삼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모든 영토를 점령하는 데 불과 70년,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몽골제국의 인구는 100만 명도 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절반은 여자, 그리고 아이와 노인들을 제외하면 실제 말을 타고 전쟁에 나선 남자들은 많아야 20∼30만 명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일을 해내고 전쟁을 하는 데 있어 사람들의 머리수 싸움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 듯하다.

 

몽골제국의 1세대 칸인 칭기즈칸은 사막과 광야 지대에서 뿔뿔이 흩어져 서로 싸우고 죽이던 동족들을 자기 세력으로 규합해 1206년 몽골제국을 통일했다. 이후 만주지역을 점령, 우리가 흔히 오랑캐라고 칭하는 여진족과 거란족 등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들과 함께 만리장성을 넘어 당시 거의 망조가 들어 분열돼가던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차지하게 된다.

 

그 다음 말머리를 바로 중앙아시아로 돌려 지금의 실크로드를 석권하고, 중국과 유럽 사이에서 무역을 통해 돈을 버는 루트를 장악했다. 실크로드에서 벌어들이는 수익과 세상 돌아가는 정보는 몽골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이를 토대로 러시아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모스크바를 정복한 것이다.

 

당시 몽골은 변방의 조그마한 부족국가로, 어쩌면 국가라고 표현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근본도 기반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제국들 가운데 가장 넓고 광대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을까.

 

우리가 영화에서 본 칭기즈칸은 어마어마한 제국의 황제답게 화려하고 웅대한 왕궁에서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연회를 열고 회의를 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초라한 천막에서 장군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음 정복지를 정하고 한번 목표가 정해지면 바로 말을 달려 순식간에 해치운다.

 

그리고 다시 그 땅에 천막을 쳐 말을 쉬게 하는 것이 칭기즈칸의 실제 모습으로 다른 제국의 왕들과는 사뭇 다르다. 적은 수의 군사로 기라성 같은 장군과 수많은 군사를 거느린 국가들을 무릎 꿇게 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실크로드에서 세상의 이치를 배우다

 

지금 전세계 국가들과 기업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예전에 잘 나가던 나라와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어려워지고, 조직은 여러 이유로 사분오열돼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탓하며 자기 몫을 챙기는 데 급급하다.

 

특히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절대 꿈적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설령 나라와 기업이 망해 모두가 어려워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은 용납하지 못하고 자기 것은 내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반대로 기득권에 도전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설령 모두가 망하더라도 기득권이 잘 사는 꼴은 결코 못 보겠다며 전체를 흔들어 댄다. 이러한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국가나 기업 경쟁력은 작은 돌덩이에 부딪혀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외부에서 작은 충격이 가해질 경우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매일 아침 신문에 나오는 경제·사회 스토리, 그리고 점점 힘들어지는 기업의 내부 사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앞서 언급한 말들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과거 오랜 기간 기득권을 누려왔던 보수 세력과 새로운 정권 패러다임에 맞춰 국가 권력을 흔들고 있는 진보 기득권 세력이 충돌하는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업과 경제가 성장하고 시장 파이를 키우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시대에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더 움츠러들고, 본인이 갖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득권층의 실험이 무색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 가운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흩어져가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언제 새로 뭉치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올지 실로 걱정된다.

 

몽골제국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칭기즈칸은 이러한 세상과 사람들의 이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당시 실크로드 길목에 있던 몽골족은 오가는 모든 세상의 흐름과 이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제국이 단기간 내 흥했던 다른 민족과 달랐던 본질은 무엇이며, 그 반대로 단시간 내 망할 수밖에 없었던 본질적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국의 본질  1  경계에 선 유목민〉

 

몽골제국의 첫 번째 본질은 바로 ‘유목민’이라는 데 있다. 그들은 늘 가운데 위치한 중심이 아니라 경계에 서 있었다. 척박한 사막에서 계절에 따라 옮겨 다니며 살아가던 민족이었던 것이다.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교수가 몇 년 전에 ‘경계에 서라’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며 인문학의 붐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최 교수는 모든 것이 변화하는 모바일 경제 패러다임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언제나 이동하는 노마드(유목민)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앙의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꿈꾸지 말고, 변방이나 경계에서 늘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참으로 공감되는 이야기다.

 

경계에 서 있는 민족들은 항상 불안하고 주변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날씨 변화, 주변 민족의 이동, 세상 변화에 신경이 곤두 서 있다. 농경민족인 중국 송나라는 만리장성 아래서 편하게 농사를 지으며 내부 권력 싸움에서 지지만 않는다면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반면, 몽골족은 중국의 움직임을 챙기면서,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 길을 지키고 거기서 일어나는 수많은 이권과 암투를 헤쳐 나갔다.

 

그렇게 늘 긴장한 상태로 천막을 옮겨 다니면서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고 대제국을 만드는 것이 과연 행복한 일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번 굴러간 눈덩이는 멈출 수 없듯이 한번 시작한 전쟁도 쉽게 끝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마침내 몽골제국을 통일, 1대 칸이 된 칭기즈칸은 후손들에게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격언을 남기기도 한다. 어쩌면 그는 전세계를 정복했지만 머지않아 후손들이 몽골족의 본질을 버리고 성을 쌓는 순간 망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안타깝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제국의 본질  2  기득권 없는 무한경쟁〉

 

두 번째 몽골족의 본질은 바로 ‘무한경쟁’이었다. 당시 대부분 국가들은 왕족·귀족으로 대변되는 기득권과 평민·천민으로 나뉘어 둘 사이에 깊은 골이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천민이 귀족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상을 정복한 로마제국에서도 평민이 장교나 장군이 돼 이름을 날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몽골족들은 달랐다. 귀족이든 천민이든 비슷한 천막에서 말을 타고 사냥을 하며 초라하면서 검소한 생활을 하던 몽골족들에게 기득권이라는 개념은 통하지 않았다. 땅에 대한 소유권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농지를 소유한 자와 그 농지의 소작민으로 살아가던 자의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지금까지 뿌리 박혀있는 ‘장자세습의 원칙’도 없었다. 장남이 됐든 차남이 됐든 능력 있는 자가 세습을 하고, 천민이든 귀족이든 전쟁에 나가서 공을 올리는 사람이 우대받는 기득권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래서 당시 몽골의 건장한 청년이라면 누구든 말을 타고 적진에 돌진해 많은 공을 올렸고, 이들이 바로 장군이 되고 리더가 됐다.

 

또한 몽골족의 모든 군인은 기마부대로 구성됐다. 귀족 출신 군인들은 말을 타고, 평민들은 창과 방패 하나만 들고 보병으로 뛰면서 위화감을 조성했던 다른 나라 군대와는 전혀 달랐다. 귀족과 평민 모두 말 위에서 달리며 밥을 먹고, 천막에서 눈을 붙인 후 또 다시 모두가 달렸던 것이다. 이러한 군대 체계 하에 무한경쟁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 전세계를 점령하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대제국을 건설한 원동력이었지만, 거꾸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 본질적 이유이기도 했다. 특히 장자세습이 없어 칭기즈칸이 죽은 후 제국을 4개로 나누고 형제들에게 통치를 하게 한 다음 그 중에 한 명을 대칸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칭기즈칸 사후 형제와 친족들 간 전쟁이 벌어졌다. 서로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능력과 힘만이 지배하던 지배층의 파워게임은 서로 피를 나눈 형제들이라도 죽고 죽이는 비참한 결과로 변질됐다. 동족 간에 칼을 겨누고 자신이 대칸이 되기 위한 소모적 전쟁은 순식간에 몽골제국을 망하게 만들었다.

 

 

〈제국의 본질  3  외교력과 포용정책〉

 

마지막 세 번째 제국의 본질은 바로 뛰어난 ‘외교력’이다. 몽골제국은 자신이 정복한 국가의 왕들과 정략결혼을 통해 평화를 추구했다. 몽골제국 공주들이 마치 전세계로 수출되는 핵심 품목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정략결혼을 통해 정복지의 왕과 귀족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반목과 반란의 여지를 없앤 것이다.

 

몽골군은 잔인하고 무자비하기로 유명해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버티는 나라는 남자는 물론, 여자와 어린아이, 노인, 심지어 성안에 있던 동물들까지도 모두를 살상하는 잔인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항복한 후 몽골제국에게 충성을 맹세하기만 하면 황제의 가족과 결혼해 한 가족을 이루고, 평화를 보장받는 외교정책을 통해 불필요한 살상을 불러 일으키는 전쟁을 피했다.

 

늘 경계에 살면서 수많은 민족들과 만나 싸우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배웠던 몽골족들의 외교능력은 남달랐다. 고려 충렬왕을 비롯해 우리가 아는 많은 고려 말 왕들도 원나라 공주와 결혼해 몽골제국의 사위가 됐다. 그러나 정복지의 왕족과 귀족에 한정된 포용정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유목과 수렵 문화에 익숙한 몽골족들은 정복지 백성들을 하나의 정신으로 이끌 철학적 배경을 갖지 못했다.

 

정복지 백성들도 몽골족이 휘두르는 칼의 권력에 두려워할 뿐 지배계층으로서 인정과 존경심은 기대할 수 없었다. 단지 왕족들에 대해서만 동물적 결혼을 통해 불만을 잠재울 뿐이었으나 이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세상이 바뀌면 업의 본질도 바뀐다

 

국가든 기업이든 흥하고 망하는 것은 바로 ‘정신의 문제’에 달려 있다. 흥할 수 있는 업의 본질을 만들고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본질에는 양면이 있어 상황에 맞춰 바뀌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돼 돌아온다.

 

성장할 수 있는 본질적 강점을 가진 기업들은 지금 대기업의 위치를 차지했지만, 모든 것이 바뀐 세상의 변화 속에서도 과거 좋았던 시절과 그 당시 일하던 방식을 추억하는 직원들이 아직도 많다.

 

세상이 바뀌면 같은 업의 본질이라도 다르게 풀어내야 한다는 것을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로마·스페인·몽골 제국의 흥망성쇠를 보며 그들의 스토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