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Issue/@Management

〔업의 본질〕본질적인 차별화에 들어가며

Paul Ahn 2020. 1. 29. 08:53

업의 본질본질적인 차별화에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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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의 ‘본질’ 잃으면 업의 존재가치가 사라진다

 

날로 치열해지는 유통시장에서 기업들은 사업 전반을 재정비하며, 유통업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 되새기고 있다. ‘어려울수록 본질에 집중하는 차별화’만이 살길이라고 여기며 업의 본질에 충실한 생존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홈플러스 전략마케팅부문장 장중호 전무가 이번 달부터 연재하는 기고문에서는 ‘업의 본질’이라는 주제로 유통업의 본질적 경쟁력을 찾을 수 있는 경영전략 키워드를 소개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작금의 유통시장에서 과연 차별화의 본질은 무엇인지 다뤄본다.

 

필자는 지난달로 홈플러스 전략마케팅부문장을 역임한 지 3개월이 지났다. 갑작스럽게 홈플러스에 합류한 후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작년 연말부터 올 초까지 40일가량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바로 그 다음날 출근해 처음 열흘간은 시차적응도 되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40일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기만 하다 다시 회사에 출근을 하니 한동안 멍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대형마트 업계에 복귀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9년 전 근무했던 이마트를 떠난 후에는 사실 마음이 아파 어느 대형마트에도 아예 쇼핑하러 가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홈플러스 본사에 출근해 앉아있으니 과연 이 자리가 나한테 맞는 곳인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홈플러스, 경영체계와 일하는 방식 바꾸다

 

이마트를 떠나고 2년간 나는 온라인 기업인 GS샵의 마케팅 임원으로 일하며 이전에 접해보지 못했던 모바일 마케팅과 SNS, 빅데이터 전략 등을 차근차근 공부하며 실무에 적용하는 경험을 했다.

 

신문·전단광고, 각종 판촉행사, 매장 디자인, PB 브랜딩 등 전통적 오프라인 유통 마케팅에 익숙해있던 내게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온라인·모바일 마케팅 경험들은 정말 흥미로웠다. 혹자는 ‘누가 회사를 재미로 다니느냐’고 말하겠지만, 조직문화와 근무방식이 기존과 전혀 다른 회사에서 2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감사함 때문이었다.

 

이전 회사에서는 월∼금요일까지 매일 아침∼저녁 한시도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업무에 숨 가빴다. 이전 회사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머리를 비우다 보니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어느 한 기업의 틀에 있지 않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물론 20년간 월급쟁이로 살다보니, 두려움도 컸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연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유통업체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6년을 근무했고, 책도 두 권이나 썼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모바일과 SNS가 시대의 흐름인 상황에서 컴퓨터 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내게 유리한 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유통과 마케팅의 경험, 그리고 테크놀로지를 접목하면 실리콘밸리의 투자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작년 11월 GS샵을 나와 백수생활을 하며 이러한 구상을 그렸다. 그리고 그 첫 출발로 가족에게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두 달 간의 유럽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인연인지 우연한 기회에 홈플러스에 합류하게 됐다. 자세한 사연을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내 운명과 홈플러스의 미래를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고 믿는다.

 

홈플러스는 많은 이들이 아는 것처럼 사연이 많은 회사다. 영국 테스코가 본국 사업이 4년 전부터 어려워지며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심했는데, 그 순간 이후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4년 전 이마트 마케팅 업무를 한참 총괄하고 있던 당시 내가 제안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면 경쟁사들이 곧바로 반응하며 내 뜻대로 움직였는데, 홈플러스는 늘 무반응이었다. 당시는 영국 본사 전략의 일관성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홈플러스에 와서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테스코가 2년 전 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모펀드인 MBK에 회사를 매각한 이후에도 겉으로 보기에 큰 변화가 없고 정체된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관행과 같이 이어져오던 영국의 오래된 경영방식을 한국과 현재 상황에 맞게 바꾸고, 합리적인 경영체계 및 조직구조, 일하는 방식 등에 변화를 주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로마제국에서 기업의 흥망성쇠를 보다

 

다시 유럽여행 이야기로 돌아가면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에서 보낸 초반 20일은 모든 것에서 해방됐다는 기쁨에 정신없이 좋았다. 그러나 출근날짜가 정해지고 구체화되다 보니 여행의 반이 지나간 후부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운명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과거와 입장이 완전 달라져 홈플러스를 어떻게 다시 강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신세계그룹의 유통산업연구소장과 마케팅 임원으로서 이마트만을 위해 24시간 고민하고 연구하던 내가 과거 일했던 기업의 경쟁사를 위해 일하게 된 것이다. 이마트에서 성과를 내고 실패한 전략들도 많았지만, 그 결과 지금 이마트는 대형마트 3사 가운데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찌 보면 국내 유통기업 중에서 가장 차별화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렇게 나의 손때가 묻어있는 이마트를 추격하며 선두기업의 대항마로 홈플러스를 어떻게 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명색이 전략마케팅부문장인 내가 전략기획실과 마케팅부문을 모두 맡아 새로운 전략을 수행하고, 이를 영업 현장으로 실현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깨가 상당히 무거웠다.

 

여행 후반부에는 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과거 찬란했던 두 제국들의 유적과 도시들을 둘러봤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의 역사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저녁 호텔에 돌아오면 다음날 방문할 도시와 그 도시 유적의 역사와 사연들을 살펴보며 아침에 일어나 실제로 가서 눈으로 확인했다. 로마제국이 기원전 300년 무렵 왜 급격히 강해졌고, 기원후 100년가량 어떻게 전 유럽을 통치했으며, 이후 500년쯤 왜 무너지게 됐는지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고 로마 현지에서 확인을 하는 것은 흥미로웠다.

 

마찬가지로 스페인도 1400년대까지는 통일도 되지 못한 채 아랍제국의 통치 하에 있으면서 지리멸렬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거듭났고, 다시 16세기부터 쇠망의 길을 걸으며 영국에게 세계 최강의 자리를 빼앗겼다. 단순히 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역사의 자리들을 방문해보니 ‘아…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로마 제국과 스페인 제국은 정말 위대한 국가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리더들의 생각과 상황에 대한 판단으로 인해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되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수익 담보 없는 차별화는 무용지물

 

그렇다면 왜 제국이 됐든 기업이 됐든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것일까. 세계를 석권하면 부와 사람, 정보를 소유하고 이를 잘 활용하면 제국의 영예나 1등 기업 위상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역사를 보면 이들도 부침을 겪게 되고, 언젠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유럽 여행 도중 홈플러스를 어떻게 다시 일으킬 것일까를 고민하다보니, 제국들의 역사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다. 소위 잘 나가던 기업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경영이 어려워지고 환경이 바뀌면, 과거 잘 나가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연연하게 된다. ‘예전에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통했는데…’라는 생각을 갖고 과거에 연연하기 시작하면 많은 문제들이 생기는 것이다.

 

문제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이다. 기업 경쟁력이 약화된 근본적 원인은 세상이 변화한 것과 직결된다. 기업이 잘 나가던 시기의 경쟁관계가 계속 유지되면 뭐가 문제겠는가. 그런데 잘 아는 바와 같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특히 최근의 유통업계 상황은 최악이다. 고객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똑하고 현명하며, 변덕스러우며, 선택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진 고객들에게 계속 사랑 받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매일 새로워져야 하고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선보여야 한다.

 

솔직히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 멋지게 선보이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작업에는 대가가 따르는데,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사실 신상품이나 점포 포맷을 새로 개발, 브랜드화해 언론 주목을 받으며 신규 고객을 창출한 일은 많이 해왔던 작업이다.

 

그 가운데는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는 성과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을 지속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수익이 담보되지 않는 한 새로운 시도는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브랜드나 사업을 시도하면서 처음부터 수익을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막연한 긍정론을 갖고 시간이 지나면 수익이 날 것이라는 기대로 업무를 추진하는 것 또한 어리석다.

 

비용과 수익의 균형점은 무엇일까. 너무 보수적으로 움직이면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낙관적으로 일을 추진해도 안 되는 상태가 어쩌면 홈플러스의 상황이었던 것 같다. 결국 고객 머릿속에 홈플러스는 지난 4년 동안 정체된 이미지로 남게 됐고, 이제는 그 균형점을 찾아 새로운 출발을 하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화려함 버리고 본질적 차별화 추구할 때

 

그동안 마케터로서 나의 전략 키워드는 ‘차별화’였다. 이전에 출간했던 ‘마케터가 알아야 할 21가지 이야기’와 ‘나는 디자인으로 승부를 건다’라는 두 권의 책에 많은 이야기를 담았지만, 두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차별화’다. 20년 전 전략 컨설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내가 머릿속에 늘 간직하는 핵심 키워드는 ‘차별화가 아닌 것은 전략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는 경영의 그루, 마이클 포터가 ‘경쟁우위의 전략’이라는 책에서 엄중하게 던진 말 한마디이기도 하다.

 

전략 컨설턴트 시절 삼성전자나 LG전자, 아모레퍼시픽을 컨설팅 할 때도 늘 나의 화두는 차별화였다.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장과 이마트 마케팅 임원을 역임할 때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이마트를 남다르게 만들어 경쟁사들을 따돌릴 수 있을까가 주요 미션이었다. GS샵에서 모바일 마케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10년가량의 실무 임원 생활을 하며 깨달은 점은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 혹은 ‘투자 효율이 나오지 않는 차별화’는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케터로서 아는 것은 ‘차별화’라는 키워드밖에 없으니, 앞으로도 홈플러스의 차별화 전략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그런데 유럽 여행에서 위대했던 제국의 흥망성쇠와 스토리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추가한 또 한 가지 키워드가 바로 ‘본질’이다. 그전에도 본질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많은 경영자들이 본질이 중요하다는 말을 강조했지만 사실 피부에 확 와 닿는 표현은 아니었다.

 

로마가 멸망하고, 스페인이 약해진 이유가 바로 그들 제국이 성장의 본질을 잃고 화려함만 내세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머릿속에 본질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돌았다. 나는 향후 홈플러스에서 ‘본질적인 차별화’, 그리고 ‘차별화의 본질’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찾아갈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현재 대형마트 업계의 어려운 국면과 홈플러스 상황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화려함 속에서 망해간 제국들과 기업의 전철을 밟지는 않겠다는 확신은 든다.

 

앞으로 ‘장중호’라는 마케터와 그리고 홈플러스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고객 마음을 파고들어 다시 사랑을 얻고, 지속 가능한 본질적 차별화를 이끌어갈지 나 스스로도 궁금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대가 된다. 다시 9년 전쯤 처음 이마트 마케팅을 맡았을 때처럼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