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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 본질〕스페인 무적함대의 운명

Paul Ahn 2020. 1. 29. 09:10

업의 본질〕스페인 무적함대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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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에 도취된 무적함대, 승리의 본질을 놓치다

 

엄청난 돈과 자원을 들여 3년간 전쟁을 준비한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해전의 ‘본질’인 심플함과 명쾌함을 잊고, 화려함과 복잡함에만 치중해 전쟁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승리의 전략은 바로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며, 기존의 성공에 도취해 이 같은 단순한 본질을 잃어버리면 어느 순간 도태되고 말 것이다.

 

1588년 유럽에서는 대이변이 일어난다. 영국 해군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처참하게 무너뜨린 것.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크고 작은 유럽 국가들의 왕실과 귀족들은 아마 이 엄청난 뉴스를 듣고도 믿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유럽 분위기는 섬나라 영국이 대국 스페인에게 덤볐다가 국가가 사라질 정도의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퍼지던 상황이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스페인 대군이 언제쯤 영국에 상륙해 그들을 초토화시킬 것인지 관전하고 있었다. 16세기 스페인은 다른 나라들이 범접하지 못할 정도의 부와 힘을 가진 대국이었고, 영국은 보잘 것 없이 해적질이나 하던 가난한 나라였다.

 

 

◇스페인은 어떻게 세기의 해전을 준비했나

 

스페인은 1492년 이사벨 여왕의 투자를 받고 선단을 꾸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덕분에 남미 대륙을 독식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수많은 금·은, 향신료, 보물을 실어오면서 일약 유럽의 부자 국가로 거듭났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도 스페인으로 오는 금이나 향신료 등을 수입하며 살았다. 이들 국가의 왕실들은 독실한 가톨릭 국가의 맹주 역할을 하는 스페인에 기대며 로마 교황 등과 연결돼 권력을 유지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유독 북쪽의 별 볼일 없는 섬나라 영국만이 스페인과 대립각을 세우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남미에서 금은보화를 실은 보물선이 스페인과 아메리카 대륙 사이의 대서양을 건너다녔는데, 도적질에 재미를 붙인 영국 해적들이 대서양 중간에서 이를 습격해 약탈했던 것이다.

 

대서양 중간의 영국 입장에서 스페인에서 훔쳐온 금과 보물은 국가 재정에 쏠쏠한 도움이 됐을 것이다. 스페인은 국가 차원에서 영국 정부에 해적 단절을 요청,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도 약속을 했지만 근절은커녕 오히려 해적들의 기세가 커져 스페인으로서는 더 이상 참을성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참다못한 스페인의 펠리페 2세 왕은 영국 전체를 해적이라고 규정, 영국 점령을 위한 전쟁 준비에 돌입한다. 섬나라 점령을 위해 국가 재정을 쏟아 부은 스페인은 130척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함대를 만들고 배를 짓기 시작했다. 감히 유럽 최강에 도전하는 자들을 쓸어버릴 배도 대강 만들지 않았다.

 

지금으로 비유하면 10층 건물에 가까울 만큼 여러 층으로 배를 짓고 큰 창고도 만들었다. 상인들과 뱃사람, 그리고 그들을 지키기 위한 군인과 각종 짐들을 싣기 위해서다. 배 옆면에 수십 개의 대포를 배치하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돛을 달아 배속도를 높였다.

 

스페인 함대는 원래부터 배의 규모가 컸지만, 영국 점령을 위해 수만 명의 군인들을 태워야하니 함선 크기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상륙한 뒤 육상 전투에 대비한 대포 등 무기와 기병들을 위한 말까지 태워야 하는 상황이라 배 한 척을 건조하는 데 1년도 넘게 걸렸을 것이다. 그런 함선을 수십 척이나 만들어야 했으니 영국에 선전포고를 한 후 전쟁 준비에만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무적함대 격파의 주인공은 해적 출신 제독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국에서는 당연히 난리가 났다. 지금이라도 스페인에 항복하고 해적들을 소탕해 목을 바쳐야 한다는 주장이 커졌고, 귀족이나 부자들은 유럽 다른 나라로 피신을 떠났다.

 

물론 엘리자베스 여왕의 고민도 컸을 것이다. 속으로 ‘어마어마한 스페인을 무슨 수로 당해내지’, ‘정말 항복을 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영국이 내륙 국가였다면 함선을 만들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나라가 초토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당시 역사를 바꿀 중요한 결정을 한다. 그것은 뱃사람 출신 가운데 가장 똑똑하고 역량이 뛰어난 드레이크라는 사람을 영국해군 제독에 전격 임명하고, 스페인 제국과 일전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스페인이 영국 정복을 위해 부지런히 배를 많이, 그리고 크게 만드는 동안 영국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스페인만큼 큰 함대를 만들 돈과 자원이 없는 영국은 해적선이든 상선이든 어선이든 어느 정도 규모가 돼 해전에 투입할 수 있는 배를 총동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스페인의 공격을 늦추기 위해 특유의 해적 정신으로 스페인 해변의 조선소에 불을 지르고 도망가기도 했다. 일종의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을 통해 스페인 함대의 준비를 늦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의 스페인 무적함대는 완성됐고, 역사적인 1588년 7월 영국을 향해 출정한다. 유럽 왕실과 국민 가운데 이 흥미로운 사건에 주목하지 않은 이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월드컵 경기에 돈을 걸듯이 많은 이들이 영국과 스페인 편으로 나뉘어 내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모든 이의 예상을 깨는 결과가 나왔다. 스페인의 완패. 130척의 거대한 요새를 옮겨놓은 스페인 함대는 거의 침몰하고 일부 함선만 네덜란드 해변으로 도망가 겨우 살아남았을 뿐이다. 영국 전함들도 피해가 컸지만 스페인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 수준이었다. 그 후 스페인은 국가 위상이 곤두박질치고 유럽 맹주에서 변두리 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반면, 영국은 새로운 시대의 강국으로 부상해 이후 200년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위상을 떨치게 된다.

 

 

◇국가도 기업도, 본질 잃으면 쇠퇴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운 스페인 무적함대 이야기는 시험에 자주 나와 왕 이름과 연도를 열심히 외운 기억은 있지만, 사실 이 사건 자체를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한 기업의 임원이 된 이후 회사 방향을 결정하고, 영업을 이끌어가야 하는 전략과 마케팅 등을 책임지면서 스페인 함대가 무너진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우리는 크고 잘 나가던 기업들이 어느 순간 방향성을 잃고 정체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그 반면,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회사들이 대박을 치며 거대 기업을 위협할 정도로 발전하기도 한다. 어느 회사든 경영 수뇌부에는 똑똑하고 경험 많은 인재들이 포진해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 고민할 것이다.

 

나 역시 로마제국 이야기, 스페인 무적함대 이야기, 몽고 칭기즈칸 이야기 등 과거 위대했던 제국들과 그 제국을 무너뜨린 벤처 세력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올해 들어 홈플러스 전략과 마케팅을 맡게 된 이후 고민은 더 커지고 있다. 경쟁사를 따돌리고 앞서가 있는 선두기업 이마트를 바라보면 더욱 그렇다. 가끔 고객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오래되고 정체된 느낌의 홈플러스가 세련되고 깔끔한 경쟁사와 비교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지금부터 어떻게 국면 전환을 해야 하나 난감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홈플러스를 즐겨 찾아주는 고객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고마울 뿐이다. 기업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할 때쯤 가족들과 유럽여행을 떠났는데 그 당시 우연히 방문한 스페인 마드리드 해양박물관에서 한 그림을 보고 나는 향후 집중해야 할 전략과 마케팅 화두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그것은 바로 ‘본질’이다. 무엇이든 본질에 집중, 화려함과 복잡함보다 심플함과 명쾌함으로 승부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화려함에 도취된 스페인, 승리의 본질 놓치다

 

해양박물관에서 본 스페인 무적함대와 영국 전함의 해상 전투 그림을 보면, 스페인 함선의 크기는 영국 전함의 것보다 3배나 커 보인다. 영국 전함은 수많은 스페인 전함들 사이에 둘러 쌓여있는 상태로 해전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투를 했는데 스페인 함대는 거의 침몰하고 영국이 대승을 거둔 것이다. 흥미를 가진 나는 스페인 여행 중 당시 해전 내용을 찾아봤는데, 거기서 두 가지의 본질을 알게 됐다. 들어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본질이다.

 

첫째, 해전에는 바로 큰 배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빠르고 방향 전환이 용이한 작은 배가 더 유리하다.

 

둘째, 대포의 쓰임새다.

해전에서는 크고 폭발력이 센 대포보다 길고 더 멀리 나가는 대포가 유리하다. 바다에서 만난 전함들은 서로 방향을 틀고 접근하면서 대포부터 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더 멀리 나가는 대포다. 아무리 대포가 많아도 발사거리가 짧으면 멀리 대형을 유지한 채로 빠르게 도망가면서 멀리 쏘아대는 대포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들으면 당연한 전략이지만, 스페인은 3년간 전투를 준비하며 이 두 가지를 간과했다. 그 결과, 해전 승리의 본질을 놓친 것이다. 스페인은 어떻게든 빨리 영국에 상륙해 본토를 쓸어버릴 생각에 더 많은 군인과 말을 실을 수 있는 큰 배만을 생각했다.

 

수백 명 단위의 군인들을 태우고 대형을 갖출 수 있는 일종의 요새 개념으로 배를 지은 것이다. 그러나 배의 규모가 크다보니 작은 영국 전함의 빠른 움직임을 잡아내기 어려웠다. 파도가 세고 해류가 빠른 영국 앞바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고민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영국은 스페인이 3년간 전투 준비를 하는 동안 돈과 자원이 부족한 관계로 많은 배를 만들지 못했다. 그 대신 ‘해전의 본질’인 멀리 나가는 대포를 많이 만들었다. 나무를 자르고 쌓아 짓는 데 시간이 걸리는 배보다 주물에 철을 부어 만드는 대포는 훨씬 빨리 완성할 수 있었다. 즉, 영국의 필승전략은 대포의 발사거리를 높이기 위해 대포 몸체 길이를 키우고 뾰족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 것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여러분들의 머릿 속에 똑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나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스페인 군함과 똑같이 왜군에 비해 배의 크기나 수적 싸움에서 밀렸지만 단 12척으로 수백 척의 왜군 함대를 박살낸 전략과 흡사하다. 이처럼 모든 승리와 성공 전략은 본질적으로 같다. 바로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다.

 

 

◇‘유통업의 본질’ 되새겨야 할 때

 

해전에는 해전만의 전략이 있고, 육상전에는 육상 전투만의 전략이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너무도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이 단순한 본질을 놓친다. 누구나 다 아는 쉬운 전략인데도 말이다.

 

기존의 성공에 도취해 주변을 의식하고 마음이 조급해지면 아무리 훌륭한 전략가나 경영자라도 본질을 잃고 실수할 때가 있다. 스페인처럼 화려한 군대와 강력한 함대를 갖추게 되면 그 안에 진짜 중요한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겉으로 보이는 웅대함에 도취돼 이미 승리를 거둔 것 같은 환상에 빠져 그 기쁨을 하루빨리 느끼고자 조바심을 내면 시야가 좁아지게 마련이다. 그러한 면에서 현재의 홈플러스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경쟁사들과 비교해보면 겉으로 보이는 면에서 차이가 난다. 이럴 때일수록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유통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고객들은 왜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 오고, 무엇을 찾는가’ 지금 그 본질을 모두 밝히지는 않겠지만, 몇 가지 핵심 본질에 집중하는 전략만 지켜도 발전 가능성은 크다. 지금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른 해적 출신의 드레이크 제독의 지혜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