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오(PRAO) / 스웨덴 학교의 직업체험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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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는 8학년(한국의 학제로 중학교 2학년)을 기준으로 상당히 많은 것들이 바뀐다. 가깝게는 공식적인 성적표를 받기 시작하고, 멀게는 학교를 졸업한 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7학년 때는 실감하지 못했던 일들이 시작되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으로 학업을 끝내는 학생들이 많아서인지, 스웨덴 중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 때 자신의 진로에 대해 어느 정도는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가 무조건 공부를 많이 하는 인문계나 덜 하는 실업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직업을 목표로 하는지에 따라 구체적으로 과를 나누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개인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대해 최대한 많이 생각해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프라오(PRAO: Praktisk Arbetslivsorientering, 직업 실습 체험)다.
프라오란 스웨덴 전역의 8, 9학년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직업 체험기간으로 8학년이 2주간, 9학년이 1주간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대신 기업을 정해서 일을 경험하게 된다.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직종의 기업을 마음대로 골라서 프라오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신청한 기업에 모두 거절당하게 되면 학교에서 대신 자리를 알아봐 준다.
프라오를 할 시기와 고등학교 원서를 낼 시기만 되면 정신 없이 바빠지는 진로 상담선생님은 8학년 네 개 반을 하나하나 돌며 프라오에 대해 설명했다. 다른 아이들은 프라오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많이 들어서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자세히 설명을 해줘야 할 대상은 사실상 나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중학교 2학년, 이제부터 성적표도 받아야 할 학생들이 2주 동안 학교에도 나오지 않고 어딘가에서 무보수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의사항과 점심값, 교통비를 학교에 청구하는 방법 등이 인쇄된 종이들을 나눠 받았다. 기본적으로 스웨덴에서는 학생이 학교에 통학하고 점심을 먹는데 자신의 비용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은 프라오 기간 중에도 마찬가지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통근’을 해야 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버스, 지하철을 타면서 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프라오 장소에서 점심을 따로 제공하지 않을 경우에도 영수증을 첨부하면 끼니당 최대 30SEK를 돌려받게 된다.
자신이 직접 프라오 자리를 마련할 학생들은 한 달 후까지 해당 기업 담당자의 서명과 부모님의 서명을 받아와야 한다. 다른 친구들은 카페니, 레스토랑이니, 부모님 친구가 운영하는 회사 같은 곳에 물어 볼 것이라고 들떠 있었지만 나는 어디다 말을 해야 할지 감도 못 잡은 상태였다.
만약 내가 전기공이 되고 싶었다면 전기 회사에 신청을 해 볼 수 있었겠지만, 내가 되고 싶은 것들은 경험 없는 학생이 쉽사리 체험할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엔 직원이나 회계사, 검사, 범죄심리학자를 ‘체험’하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이것이 프라오의 딜레마였다. 회계 사무소나 로펌 같은 곳에서 날 체험 학생으로 받아준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에 한정될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프라오는 서빙 같은 신체적인 노동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견학을 하거나 둘 중 하나로 결정되고는 했다. 아빠 회사가 거래하는 회계 사무소나 로펌에 부탁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2주일간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을 것이 분명한 따분한 견학을 할 생각은 없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것이 체험학습을 빙자한 무보수 아르바이트라면, 정말 아르바이트생처럼 진짜 몸으로 부딪치는 일을 해 보고 싶었다. 어쨌든 자주 해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미 프라오 경험이 있는 9학년 학생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마침 나는 9E반, 즉 9학년 영어반 학생들 중 몇 명과 꽤 가깝게 지내고 있어서 물어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가장 먼저 알게 된 카를 영(Karl Young)은 영어 모국어 반에서 만난 친구다. 여자친구 리네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귀찮게 여기는 귀찮음 대왕인 카를은 ‘프라오 그까짓 거 어떻게 하다 보면 다 돼’라고 조언(?)했다. 8학년 때 카를이 맡은 일은 폐차장에서 고물 자동차들을 사정없이 두들겨 부수는 것이었단다.
언제나 검정색 옷과 검정색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통칭 ‘까만 녀석’인 루카스는 묘지에서 프라오를 했다고 한다. 나뭇가지를 긁거나 관 넣을 구멍 파는 것을 도왔다고는 하지만 대단한 프라오였음이 분명하다.
카를도, 루카스도 다들 하나같이 하는 조언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되는 대로 하라는 거였다. 카를도 장래에 수명 다한 자동차를 온 몸으로 부수는 폐차 전문가(?)가 될 생각은 없었고 루카스도 딱히 묘지관리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런 것을 체험한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프라오를 하는 의도가 학생들이 ‘나는 이 직업에 뼈를 묻겠어’라고 결심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런 직업도 있었구나’라고 느끼는 데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런 모든 사실들과 조언들을 종합해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이라면 무작정 앉아서 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닐 테고, 내 적성이나 관심사에도 맞으니까 완벽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몇 개월 전에 이사한 우리 집은 학교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 떨어져있기 때문에 프라오를 할 장소는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일단 우리 집이 있는 동네인 태비(Täby)의 가장 큰 도서관 문부터 두드려보기로 했다. 불행히도 내가 받은 답은 ‘이미 프라오를 하는 학생이 있다’는 말이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학교 근처의 솔렌투나 도서관에서도 이어졌다. 한 학기에 받아들일 수 있는 프라오 학생들의 숫자가 정해져 있고, 이미 그 인원을 다 채웠으니 곤란하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시내에 있는 스톡홀름 최대 도서관인 시립도서관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여기에서 스웨덴 특유의 공무원 정신이 발휘되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담당하는 일이 아니면 일절 대답해 주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그건 내가 담당하는 게 아닌데……”라고 말하는 사서 수 명을 거쳐서야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신청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스톡홀름 시내에 있는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만 받습니다.” 3개 국어를 능통하게 한다는 것을 무기로 내세우고 도전한 스톡홀름 국제도서관 역시 같은 이유로 실패였다. 심지어 스톡홀름 문화원 부속 ‘독서 살롱’은 프라오 신청 마감 기간 일주일이 지나서야 잊어서 미안하다고 딱지를 놓기까지 했다.
결국 나는 수많은 도전을 하고서도 프라오 마감 기간이 될 때까지 단 한 건의 승낙도 받아내지 못했다. 당연히 한 군데 정도는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다른 것을 준비해놓지도 않았고, 결국 남은 방법은 2주간의 내 운명을 진로 상담 선생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차를 때려 부수는 것이건, 묘지에서 구덩이를 파는 것이건…
프라오 종합 발표일, 자신이 직접 프라오 할 장소를 찾은 학생들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나처럼 학교가 정해주는 학생들은 어디에서 일하게 될 지 궁금증을 안고 게시판 앞에 몰려 갔다. 우리 학교 학생회장인 오스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롤린스카 대학병원에서 일하게 되었고, 맥도날드에서 일하게 된 남자아이들도 몇몇 있었다. 그런데 일바는 자신이 일하게 될 곳의 상호명을 보고는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Bögs Gård’, 직역하자면 ’게이의 정원’이다. 사실 그곳은 조랑말을 타는 등 동물과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체험장이었고, 동물도 자연도 좋아하는 일바에게 딱 어울리는 곳이었지만, 왜 그렇게 지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이름이었다.
그리고 내가 배정받은 곳의 이름은 ’Panini’였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이름과 비슷하여 음악 관련 기업일까 잠깐 희망을 품었지만, 옆에서 친구 중 한 명이 툭 던진 말에 내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파니니? 거기 샌드위치 전문점인데?”
그 친구의 말 그대로 파니니(Panini)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를 동경한 사람이 차린 악기상이 아니라 샌드위치 전문점이었다. ‘파니니’는 정확히 말하자면 이탈리아식 샌드위치 이름인데, 긴 빵을 세로로 잘라 그 안에 살라미, 모짜렐라 치즈, 햄, 야채 등을 넣어 파니니용 그릴로 눌러 굽는 음식이다.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 파니니는 샌드위치뿐만 아니라 기타 이탈리아 요리를 제공하는, 한국의 도시락 가게와 비슷했다.
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들어가 본 파니니의 웹사이트에는 ‘스톡홀름 60분 내에 배달’이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써져 있었다. 스톡홀름 내에 있는 회사나 가게 등에 점심 도시락을 배달하는 것이 주업으로, 스톡홀름 시내에 지점이 10개 정도 있었다.
잘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웹사이트도 찾아보고, 예전에 파니니에서 프라오를 했던 사람들에게도 묻고 다니는 등 사전 조사를 하면서도 들뜬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도서관에서의 프라오를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실패해서 받은 자리이니 당연했다. 직종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게 체육관 다음으로 어울리지 않는 장소가 있다면 바로 주방일 것이다. 아직 성인이 아닌 우리는 법적으로 돈을 다루는 일은 할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러니 서빙을 하지 않는 식당에서 내가 할 일은 주방일 뿐이지 않겠는가?
출근 시각은 9시, 첫날은 8시에 가서 먼저 일을 배우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학교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살기 때문에 진로상담 선생님께 학교에서 가까운 곳보다는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배정해 달라고 부탁 드렸다. 그래도 시내 중심에 있는 가게까지는 기차와 지하철을 바꿔 타고 40분은 족히 가야 하는 거리였다.
내가 일할 파니니 1호점은 지하철역 외스테르말름스토리(Östermalmstorg)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스웨덴 역시 대중교통이 인접한 곳에 유동인구가 많고 땅값도 비싸다. 스톡홀름 중앙, 가장 번화가인 T-Centralen 부근은 한국의 명동이나 종로쯤 될 것이다. 외스테르말름스토리 역은 T-Centralen에서 한 정거장 밖에 떨어지지 않았고, 부근은 사무실과 고급 의류매장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파니니는 가게들과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점심을 담당하는 수많은 점심 레스토랑 중 하나였다.
들어가보니 실내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카운터를 따라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고, 맞은 편에는 식탁이 벽을 마주보며 늘어서 있었지만 저렇게 좁은 공간에서 식사가 될까 싶었다.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다웠다.
아직 이른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카운터에는 직원이 없었다. 주방에서는 말소리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 같은 것이 연신 들려왔다.
잠시 망설이다 주방에 고개를 들이밀자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날 반겼다. 나는 학교에서 받은 프라오 통지서에 써진 대로 자넷 올손이라는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고, 곧 그 아주머니보다 훨씬 젊은 20대 여자 한 명이 가게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프라오 학생에게는 반드시 지도자가 있어야 하고, 그 지도자는 프라오 기간 동안 학생이 많은 것을 배우고 위험한 일이 없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파니니 1호점 지점장인 자넷이 바로 내 지도자였다.
자넷과 나는 스웨덴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악수를 나눴다. 자넷은 나처럼 프라오를 하는 학생들에게 익숙한 듯 했다.
자넷이 안내하는 대로 주방을 지나자 건물 안쪽에 위치한 직원용 탈의실이 나왔다. 탈의실은 좁았고, 캐비닛이 꽉꽉 들어차 있어서 한 사람이 옷을 갈아입기에도 답답할 정도였다. 자넷은 내게 직원용 유니폼 한 벌을 꺼내주면서 멋쩍게 웃었다.
”미안한데 비어있는 캐비닛이 없네. 옷은 여기 옷걸이에 걸어둬도 되지?”
자넷은 전화를 받으러 나가버리고(사실 두 사람이 서 있을 자리도 없었다), 나는 Panini라고 써져 있는 셔츠와 앞치마로 갈아입은 뒤 주방으로 나왔다. 손님이 없는데도 주방은 분주했다. 아직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여자와 아까의 그 아주머니,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직원이 정신 없이 돌아다니며 샐러드며 샌드위치 등을 만들면서 포장하고 있었다. 파니니의 좌우명은 ’빠르지만 건강한 패스트푸드’이고, 그 때문에 샐러드나 야채가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 같은, 일반적으로는 빨리 만들기 힘든 음식을 최대한 빠르게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넷은 카운터에서 전화로 주문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뭘 할지 몰라 주방 한 켠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들은 말이 있어서 그다지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프라오 지도자라고는 해도 그 회사의 직원이고, 일을 비워두고 학생들 뒤치닥거리만 하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아서 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넷이 주문을 다 받은 뒤 내게 돌아올 때는 품에 커다란 봉투를 안고 있었다. 감자 봉투였다. 자넷은 둔기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 같은 도구를 카운터에 놓더니 사용하는 방법을 내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마치 하프처럼 단단한 쇠줄이 묶여 있는 그 도구는 감자를 여러 조각으로 한 번에 자를 때 사용했다. 아르바이트는 해 본 적도 없거니와 집에서도 저런 도구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설명을 최대한 귀담아 들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냥 감자를 질서정연하게 놓고 손잡이를 열심히 꾹꾹 누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괜히 긴장하고 있었던 나는 뭐 이런 시시한 일이 다 있나 싶어 심드렁한 자세로 일을 마쳤다.
하지만 정신 없이 바쁜 주방에서 내가 할 일은 많고도 많았다. 다음에 내가 하게 된 일은 오이를 써는 것이었다. 지점장인 자넷은 주문을 받고 식재료 주문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사실상 내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내게 일을 가르쳐 주는 것은 처음 만났던 그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오이 한 포대를 가지고 와서 내게 써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칼로 하는 것이라고는 가정 시간에 햄을 썰어 본 기억밖에 없는 내게는 그 반복적인 동작들이 너무 어려워 보였다. 칼에 손을 벨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도 있었다. 어쨌든 아까 기계적으로 손잡이를 내리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일임에 분명했기에 집중해야만 했다.
오이를 써는 것이 끝나자 계속 일거리가 밀려들어왔다. 이번에는 석류를 갈라 알을 빼내고 썩은 것을 골라내는, 지루하기 짝이 없으면서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내가 한참 석류 까기에 몰두해 있을 즈음 다른 프라오 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나와 같은 8학년이지만 오스타(Årsta) 지역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사라(Sara)는 자넷의 요청에 의해 당장 드레싱을 개별 용기에 붓는 일을 시작했다.
그 날 나와 사라는 오이와 파프리카를 세 가지 방법으로 썰었고, 닭 가슴살 10kg 정도를 썰었으며, 석류알 한 바가지를 골라냈고, 산처럼 쌓일 만큼 많은 드레싱을 부었다. 예정된 퇴근 시각인 4시가 아닌 2시에 일이 끝났음에도 지쳐 쓰러질 것 같았다. 평소 학교에 다니면서 느끼는 정신적인 피로감이 아니라 육체적 노동에서 오는 피로감이었다.
며칠간 나와 사라가 한 일은 가끔 있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비슷비슷했다. 우리는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다른 파니니 지점에 심부름을 갔고, 프린터 잉크나 건전지 같은 것을 사러 스톡홀름 시내를 돌아다녔다. 화물 운반용 엘리베이터에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가득 싣고 지하로 내려가서 버리기도 했다.
일 자체로는 뭔가를 배웠다고 하기에 힘든 것들뿐이었다. 오이를 세 가지 각각 다른 방법으로 썰거나 썩은 석류알을 효과적으로 골라내는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프라오의 목적은 단지 일을 도우며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일을 시작한 뒤 내게는 변화가 생겼다.
일종의 실습인 프라오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일’이었고, 학교와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직장에서는 내게 일이 주어졌고, 내 몫을 반드시 해내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되어 있었다.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긴 통학 거리 때문에 종종 학교에 지각을 하는 내가 일을 하면서는 단 1분도 늦지 않도록 필사적이었다. 그냥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머릿속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은 최대한 빨리 완벽하게 끝내야 했고, 내 일의 결과가 그대로 상품이 되어 진열되었다. 일을 처음 해 보는 나로서는 내가 한 일의 결과물을 사람들이 값을 치르고 사 간다는 사실이 상당히 경이로웠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올 때마다 머리를 묶고 손톱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일은 그다지 고되지 않고 반복되는 일이었지만 재미있는 면도 없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일이 익숙해지자, 다른 아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여름방학 한정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어졌다. 스웨덴은 긴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 13살만 되어도 간단한 일을 할 수 있고, 급여 수준도 높다.
레스토랑과 호텔 직종에 종사하는 17세 미만 청소년이 받아야 하는 최소 급료는 시급으로 한화 12,000원 이상 된다. 스웨덴의 물가가 한국보다 높다고는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내 단짝친구 일바는 여름방학 기간 동안 돈을 모아 겨울방학에 날 따라 한국으로 오겠다고 할 정도다.
다른 모든 제도가 다 그렇듯 프라오에도 반드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런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일 자체도 그럭저럭 재미있었으니 시간을 알차게 보낸 편이지만 모든 학생들이 그럴 수는 없다. 분명 그 시간에 배워야 할 것을 못 배우고, 2주간 시간 낭비만 하다가 터덜터덜 학교로 돌아오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하지만 그럼에 불구하고 나는 프라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의무를 완수하는 것을 통해 책임감이 뭔지 알아 가는 과정과, 구성원 속에서 내 존재감을 확인하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종류의 의무와 책임감이다.
선생님들 중 한 분이 프라오를 하러 떠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8학년을 두 시기로 나눈다. 프라오 이전과 프라오 이후, 지금 9학년인 학생들이 그랬듯이 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웃으면서 학교로 돌아오면 좋겠다.’
그 선생님의 말씀대로, 2주간의 일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면 내가 조금 더 성숙해질까?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2주간의 프라오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을까?
자, 앞으로 1주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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