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合從連衡〕유통업계, 이업종간 제휴·협업
영역 파괴한 파트너십
융합과 창조로 진화
유통업의 구조적 패러다임이 바뀌며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는 현 시대에는 이업종 간 전략적 제휴 등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만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략적 제휴는 유통업과 성격이 다른 이업종과의 ‘결합’으로 기존처럼 기업을 인수하는 고전적 방식이 아니라 조인트벤처, 전략적 제휴 같은 형태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객수 감소로 신규고객 창출에 고민에 빠진 오프라인 업계로서는 온라인 플랫폼이나 IT기업 등 이종산업 간의 융합(collaboration)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10번 가운데 9번 실패하더라도 이 같은 시도를 계속하는 기업에게 기회가 찾아오고, 기존의 오프라인 사고에 머물러 있는 기업은 산업 내 지위가 조금씩 떨어질 것이다. 상호 보완과 융합 창조를 통해 한층 긴밀해지고 있는 국내외 유통업계의 비즈니스 협업 사례를 찾아본다.
◇유통 체질 바꾸는 협업 / 주요 대상은 물류·플랫폼 기업
신세계그룹과 네이버의 지분 교환, GS리테일과 GS홈쇼핑의 합병, 11번가와 우체국 택배의 협력 등 유통업체들이 업종을 초월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자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찾는 것이다.
기존에는 단발성 마케팅 협업이나 단순한 입점 같이 느슨한 관계였다면 최근에는 긴밀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제휴에 나서고 있다.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대비책으로 이업종과 협업 시도가 계속될 것이다.
이업종간 협업은 자사의 약점을 제휴사의 강점으로 상쇄해 결과적으로 역량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유통업계 경쟁 심화와 온라인 전환 및 이커머스 재편 가능성, 코로나19로 바뀐 시장 환경 등 빠르게 변하는 상황 속 유통업체 혼자만의 힘으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기업별로 돌파구 마련을 모색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 온·오프라인 업체끼리의 협업 또는 제조, 물류, 플랫폼 등 여러 업종과 제휴가 발생하고 있는데, 과거와 달리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해 협업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불확실한 시기, 리스크 줄이는 협력
합종연횡은 유통산업 환경이 달라지면서, 유통업체들이 변화에 맞춰 대응하는 방법이다. 과거 유통업의 중심이 오프라인 매장이던 시절에는 상품구색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 성장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유통채널이 다변화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이제는 단순히 가격과 상품 경쟁력만으로 소비자들에게 소구하기 어려워졌다. 온라인쇼핑에 익숙해진 고객은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원하고 있고, 유통업체는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술을 도입해 디지털 혁신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롯데미래전략연구소 조기영 상무는 “유통업체에게 온라인 중심의 빠른 배송 서비스와 차별적 상품 확보 등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디지털화와 개인화 서비스의 중요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 기반 유통업체들은 고객니즈에 따라 디지털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시스템 개편, 온라인 전환에 대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인적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혁신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투자 효과가 확실하지 않고 성과 창출까지 오랜 시간 소요된다는 문제가 있다. 유통시장은 급변하고 있는데, 투자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시의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유연하고 민첩한 애자일 실행력이 중요해진 시기에 유통업체들은 신속한 체질 개선을 위해서 해당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과 제휴를 노리고 있다. 시너지 효과가 예상되는 이업종과 협업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19도 협업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전환이 빠르게 발생하고 소비자들의 생활 및 구매패턴이 바뀌면서 유통업계 변화의 폭이 컸다. 게다가 사업 환경이 불확실해지면서 기업들의 리스크 관리가 중요해졌다. 이로써 직접 투자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제휴를 선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 상황도 합종연횡의 배경이 된다. 2020년 기준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상위 3사 합산이 50% 미만으로, 아직 확실한 선두기업이 없다. 유통업체에게 배송, 물류, 멤버십 등 사업 경쟁력 강화나 신사업 모델을 창출해 이커머스 시장을 선점하려는 니즈가 있다.
조기영 상무는 이와 관련해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유통사업 역량 강화가 필요한 기업이 협업에 가장 적극적”이라고 언급했다. 온라인 플랫폼이 없거나 부족한 오프라인 중심 기업들이 플랫폼이나 온라인 유통업체와 협업을 통해 고객을 간접적으로 확보하고, 이들의 데이터 기반 운영 역량을 흡수하고 있다. 물류나 상품 경쟁력이 부족한 온라인 기반 업체들도 물류업체와 풀필먼트 협업, 오프라인 업체 쇼핑몰 입점 등의 방식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협업 통해 단기간 혁신 시도
유통업체들의 협업이 새롭게 등장한 트렌드는 아니다. 유통업계 협업은 과거부터 있었으나 최근 그 양상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온·오프라인 유통업체 또는 오프라인과 제조업체 사이에 ‘채널 및 고객 확대’를 목적으로 협업을 추진했다.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같은 오프라인 기업이 옥션이나 11번가 같은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하거나, 반대로 온라인쇼핑몰이 오프라인 매장 내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 제휴 역시 NPB 개발 후 독점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단발성 프로젝트나 단순한 방식의 협업이 주를 이룬 것이다.
이와 다르게 최근 유통업계 협업은 보다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시장 상황이 빠르게 변하는 탓에 유통업체들이 협업 목적을 사업 모델 혁신을 위한 전략 재구성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에 고객을 새롭게 집객하기 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체질을 개선하고 새로운 충성고객을 확보하는 것을 원한다.
실제로 유통업체들은 단일 기업이 단기간에 확보하기 힘든 기술적 역량을 채워줄 수 있는 이업종과 협업을 서두르고 있다. 유통 관련 기술을 보유한 IT기업이나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플랫폼 기업과 협업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오프라인 매장과 물류센터 같은 오프라인 자산을 활용하고자 오프라인 기반 유통업체와 손을 잡는 이커머스 업체도 등장했다.
한편 과거에는 직접적 경쟁 관계에 있는 유통업체와 손잡는 것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는 잠재적 경쟁자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업체와 협업 또한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달라진 유통업계 협업 트렌드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신세계그룹과 네이버다. 신세계백화점·이마트와 네이버의 지분 교환을 통해 강력한 협업 체계를 구축한 양사는 신선식품, 명품 같은 상품 역량, 풀필먼트 시스템, 멤버십 통합 등 다양한 영역의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SSG닷컴 출범 이후 이커머스 시장에서 경쟁자이기도 했던 두 업체가 서로의 약점을 채우기 위해 제휴를 맺은 것이다.
◇지분 교환으로 강력한 연합 형성
협업은 짧은 기간에 역량을 키울 수 있어 사업적 매력이 높다. 그러나 실제 실행시 다양한 변수가 생길 수 있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전에 보완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따라서 최근 협업을 하는 업체들에게서 지분 교환 같은 강력한 수단을 활용하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양자간 성과와 리스크 배분에 대한 사전 합의가 없을 경우 장기간 협업을 존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 사례로 신세계그룹과 네이버는 지난 3월 16일 사업 협약을 체결하고 2,500억 원 규모의 지분 교환을 단행했다. 이마트 1,500억 원, 신세계백화점 1천억 원 규모로 네이버와 상호 지분 교환을 통해 결속을 강화한 것이다.
먼저 이마트의 신선식품과 신세계백화점의 명품을 네이버 플랫폼과 결합해 고객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네이버 한성숙 대표는 지난 4월 29일 열린 2021년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신세계와 신선식품 장보기 관련 성공사례를 만들고 물류, 명품 부문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과 네오(NE.O)를 활용한 새벽배송,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이마트 PP센터에서 네이버의 물류 파트너사들이 상품을 받아 고객들에게 신속하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신세계포인트와 네이버플러스 통합 혜택도 제공해 양사의 고객이 서로의 서비스를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며, 이외에도 네이버의 AI, 로봇 기술을 활용해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새로운 쇼핑 경험도 구상 중에 있다.
한편 네이버는 CJ그룹과도 지분 교환을 단행하고, 물류와 콘텐츠 부문의 힘을 더했다. 지난해 10월 네이버는 CJ대한통운과 3천억 원, CJ ENM과 스튜디오 드래곤 경우 각각 1,500억 원 규모로 상호 지분 교환했다. 네이버는 상품 검색과 방대한 판매자를 갖췄으나, 배송 서비스에 약점이 있었는데 CJ대한통운의 풀필먼트 서비스를 활용하며 이를 해결할 수 있었다.
GS그룹 산하의 GS리테일과 GS홈쇼핑도 7월 합병 예정이다.
오프라인 기반의 GS리테일과 홈쇼핑, 모바일 기반의 GS홈쇼핑이 장점을 합쳐 온·오프라인 쇼핑을 넘나드는 ‘고객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온·오프 통합 커머스 플랫폼’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양사의 인프라에 추가로 5년간 1조 원을 투자해 취급액 25조 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디지털커머스 강화에 2,7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로그인 한 번으로 여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싱글사인온(SSO), 간편결제 ‘GS페이’ 구축 등이 포함된다. 물류센터 6곳 신축 등 이커머스 배송 역량에도 5,700억 원을 투자한다. 데이터 분석 강화를 위한 IT인프라 구축 작업은 이미 시작했다. GS리테일과 GS홈쇼핑의 구매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을 적용한 맞춤형 혜택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이로써 양사의 통합은 GS리테일의 오프라인 거점을 활용한 물류 개선, GS홈쇼핑의 모바일 역량을 활용한 온라인 사업 강화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GS더프레시와 GS홈쇼핑의 핵심 고객이 40~50대 여성으로 겹치기 때문에 상호간 송객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이커머스 필수가 된 ‘풀필먼트’ 역량
이커머스 시장에서 차별화된 역량을 갖추기 위해 물류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기존 물류업체와의 협업 또는 물류스타트업 투자 및 인수가 활발하게 이뤄지며, 물류 관련 기술을 갖춘 기업과 제휴를 통해 자사 물류센터 시스템을 고도화시키는 사례도 등장했다.
11번가는 지난해 12월 우정사업본부와 유통·물류 협력서비스 확대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고, 대전우편물류센터에서 11번가 판매자 상품의 입고, 보관, 출고, 반품, 재고관리가 가능한 풀필먼트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를 토대로 11번가는 당일 자정까지 입고된 상품을 다음날 배송하는 ‘오늘주문 내일도착’ 서비스를 시작했다.
조기영 상무는 11번가와 우정사업본부의 협업에 대해 “지방 소도시까지 촘촘한 배송 역량을 가진 우체국 택배를 활용하는 11번가가 마이크로 배송 네트워크를 구축해 차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커머스 업체들이 수도권에 배송 역량을 집중하면서 더이상 주요 도시 내 배송 차별화는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반대로 지방까지 비용 효율성을 높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는 CJ대한통운, 신세계를 포함해 동대문 기반 패션 앱 ‘브랜디(BRANDI)’, 가전·가구 물류 플랫폼 ‘하우저(HOWSER)’ 등과 제휴를 맺고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를 위한 물류 체계를 구축했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카테고리별 적합한 물류 서비스를 갖춘 사업자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이다. 네이버는 상품별 특화된 물류솔루션을 활용하는 전략을 NFA(Naver Fulfillment Alliance)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GS리테일은 KT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GS리테일 물류센터에 KT AI 물류 최적화 플랫폼을 적용했으며, 마켓컬리는 CJ대한통운 인프라를 활용해 충청도에 새벽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근마켓 더해 동네 플랫폼 된 편의점
협업을 통해 영역을 확장하는 움직임도 있다. 상품 카테고리 확장을 위해 카테고리 킬러 쇼핑몰을 인수하거나, 플랫폼과 제휴를 맺고 자사 채널의 활용 범위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신세계와 카카오는 각각 W컨셉과 지그재그를 인수했다. W컨셉, 지그재그는 여성 패션 중심 플랫폼이다. 특히 신세계는 W컨셉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SSG닷컴과 합치지 않고 따로 운영하면서 물류, 상품, 마케팅 등에서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카테고리 킬러 중에서도 특히 패션은 전문몰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따라서 이커머스 경쟁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신세계는 SSG닷컴의 차별화를 고민한 결과 패션 카테고리를 선택했고, 이를 활용해 고객니즈에 부합하는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GS리테일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서 편의점 역할을 넓히기 위해 협업하고 있다. 지난 2월 GS리테일은 당근마켓과 ‘우리동네 플랫폼’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GS25와 GS더프레시의 유통기한 임박 상품 처리와 직원 채용을 당근마켓을 통해 실시하며, 앞으로 당근마켓 서비스 사업과 GS리테일의 오프라인 매장을 연계해 지역 소비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4월에는 온라인 편집숍 무신사와 손잡고 상품 판매 및 마케팅 협업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GS25에서 현금결제를 통해 무신사 스토어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결제시스템을 구축하고 무신사 스탠다드 상품도 판매할 예정이다. 또한 편의점과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신사업에 협력하고 마케팅 활동도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다.
리테일 매거진
202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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