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경영 문제? No! 상속세 부담 때문
〈한샘 등 중견기업이 연이어 M&A 시장에 나오는 이유〉
전문가들 “현행 상속공제 제도 손질해야”
국내 유통업계의 지각변동이 가속화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글로벌 경제가 유례없는 위기를 겪는 와중에도 대규모 M&A(인수·합병)가 줄을 잇는다. M&A를 통해 덩치를 키우면서도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신세계그룹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의 진두지휘하에 SK 와이번스와 W컨셉 등을 최근 인수했다. 지난 6월말에는 3조4400억원을 투자해 이베이코리아마저 손에 넣었다. 이베이코리아는 현재 G마켓과 옥션, G9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은 12%로 네이버(17%)와 쿠팡(13%)에 이은 3위 업체다. 신세계가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서 숙원이었던 이커머스 사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우연의 일치일까. 지난 2008년 G마켓을 이베이에 매각한 인터파크 역시 최근 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인터파크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2%로 미미한 편이다. 하지만 공연 예매 부문에서 시장 점유율 70%를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네이버와 카카오, 11번가, 롯데 등 거대 기업들이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누가 인터파크를 인수하느냐에 따라 관련 시장의 판도 또한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배달앱 요기요를 운영하는 딜리버리히어로를 누가 삼킬지도 주목하고 있다. 요기요의 시장 점유율은 30% 전후다. 최근 점유율이 하락하기는 했지만, 인수에 성공하면 단숨에 시장 2위 업체로 점프할 수 있다. 공정위는 당초 요기요의 매각 기한을 8월초로 못 박았다. 신세계가 포기하고, 인수 후보군으로 사모펀드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퍼미라 등만 남으면서 주목도가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최근 요기요의 매각 기한을 5개월 연장했다. 이 과정에서 GS리테일이 새로운 인수 후보군으로 급부상했다. GS리테일은 현재 편의점 GS25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GS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GS홈쇼핑과의 합병을 발표한 데다, 요기요까지 인수할 경우 새로운 유통 강자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쌍용자동차와 이스타항공, 한샘, 로젠택배, 휴젤, 신라젠, 대한전선, MS저축은행, 알펜시아리조트 등이 이미 매각됐거나 매각이 진행 중이다. 한국M&A거래소(KMX) 등에 따르면 올 상반기 M&A 건수는 414건으로 지난해 상반기(280건)보다 134건(47.9%) 증가했다. 같은 기간 M&A 거래액 규모는 43조8605억원으로 전년(26조4576억원) 대비 60% 늘어났다.
◇주목되는 사실은 알짜 중견기업 역시 최근 잇달아 매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가구 및 인테리어 1위 업체인 한샘이 대표적이다. 최근 10년간 한샘의 매출은 3배, 영업이익은 2.5배나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매출 ‘2조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올해 한샘의 매출은 2조3074억원, 영업이익은 1134억원이 될 것으로 증권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각각 전년 대비 11.6%, 21.8% 증가한 수치다.
그런 한샘이 M&A 시장의 매물로 나오면서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매각 대상은 조창걸 명예회장의 지분(15.45%)을 포함, 특수관계인 지분 30.21%다. 전문가들은 현재 주가를 감안할 때 매각가는 최대 1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사모펀드인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가 매각을 위한 독점적 협상권을 가지고 있다. 하반기 중 본계약을 체결할 경우 한샘의 대주주는 50여 년 만에 IMM PE로 바뀌게 된다.
이와 관련해 한샘 측은 언론에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최상의 파트너로 IMM PE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조 명예회장은 그동안 회사 비전과 미래가치를 인정하는 전략적 비전을 갖춘 투자자를 물색해 왔다”면서 “IMM PE가 경영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장기적 성장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지분 양수도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말했다.
IMM PE 입장에서도 나쁜 거래는 아니다. IMM PE는 현재 온라인 인테리어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오하임아엔티의 대주주로 알려졌다. 오하임아엔티의 주요 고객사가 한샘이니만큼 인수에 성공하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다른 얘기가 나온다. 조 명예회장은 슬하에 4남매를 뒀다. 장남인 조원찬씨가 2002년 사망하면서 현재는 세 딸만 있다. 이들이 보유한 한샘 지분은 많지 않다. 세 딸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3%가 되지 않는다. 조 명예회장이 승계를 위해 보유 지분을 증여할 경우 막대한 규모의 상속세가 부과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지만 최대주주 할증이 더해지면 60%까지 높아진다”면서 “조 명예회장이 올해 82세로 고령인 데다, 증여세로 주식을 물납할 경우 경영권마저 위태로울 수 있는 만큼, 주식 증여를 통한 승계 대신 매각을 선택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그동안 상속세 부담 때문에 2세 승계를 포기한 기업이 적지 않았다. 세계 1위 콘돔 생산업체인 유니더스나 밀폐용기 생산업체 락앤락, 국내 1위 종자기술 업체 농우바이오 등이 과거 상속세 부담을 이유로 사모펀드나 대기업에 경영권을 넘겼다. 최근 SK증권에 MS상호저축은행을 매각한 조일알미늄의 이재섭 회장도 상속세 부담 때문에 가업 승계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현재 승계를 목전에 둔 중소·중견기업들이 국내에 적지 않다는 점이다. 코스닥협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1496곳 중 36.7%인 549곳의 CEO가 60대 이상이다. 2019년 27.6%와 비교하면 9.1%나 차이가 난다. 상장 기업들이 급속히 노후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가업을 물려주기는 쉽지 않다. 매출 3000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 2세가 가업을 이어받을 때 상속세 부담을 낮춰주는 현행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속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7년간 100% 고용을 유지해야 하고, 업종 전환도 제한된다. 이 때문에 2019년 가업상속공제의 이용 건수는 88건(26억90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구시대 유물인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현실에 맞게 뜯어고칠 때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전규한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스닥 창업주의 고령화로 세대교체를 앞두고 있지만 상속·증여세 납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분을 매각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면서 “가업 승계 세제의 적용 대상을 3년 평균 매출 3000억원 미만 기업에서 모든 중소·중견기업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021.07.29 08:00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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