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ail Issue/•Hidden Champion

★덕산그룹

Paul Ahn 2022. 6. 17. 18:02

★덕산그룹

 

이준호 덕산그룹 회장

포브스 (joins.com)

 

기업가의 길, 나눔의 길

 

이 회장은 울산을 대표하는 벤처기업인이자 반도체 소재 산업이 전무했던 지역에서 산업 다각화를 이끈 인물이다. 덕산하이메탈을 창업하기 전, 이 회장 역시 지역을 대표하는 조선과 자동차부품 기업에 몸담았다.

 

“대학을 나와 현대중공업 1기로 입사해 5년간 일했습니다. 이어 지금의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 자재부로 스카우트돼 자리를 옮겼죠. 그렇게현대맨으로서 10년을 일한 뒤 창업에 나섰습니다. 월급쟁이들이 으레 그렇지 않습디까. 제 일을 해야겠다고 맘먹을 때가 있잖아요.”

 

오늘날의 덕산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를 대표하는 기업인 데 반해, 사업 출발점이자 그룹의 모체인 덕산산업은 컨테이너 부품, 조선 부품을 제조해 납품하는 헤비머티리얼 업종이었다.

 

“어릴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참고 견디기보다는 도전해서 바라는 것을 얻으려는 기질이 강했어요. 직장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어느 순간 비전이란 게 사라지더군요. 현대 같은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내 인생의 비전을 찾기로 결심해 창업에 나섰습니다.”

 

이 회장은창업 초기에는 현대 출신이라는 이점을 톡톡히 누렸다고 돌이켰다. 전 직장 동료들의 도움으로 무난히 사업을 이끌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연은 언젠가 끊어지게 마련이었고, 물량이 끊어지자 대기업 납품사업이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작지만 기술집약적인 틈새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 회장이 덕산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창업한 덕산갈바텍은 아연 용융 도금 전문업체다. 당시 울산 지역의 유일한 도금 전문 기업이었는데, 이 회장은 이를 계기로 기업가의 소명이 혁신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의 집무실 벽 한복판에 걸려 있는천지지대덕왈생(天地之大德曰生)’이라 글귀가 그의 경영 이념이자 인생의 좌우명이 된 배경이다.

 

“주역에 나오는 경구인데, 세상천지에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만큼 큰 덕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기업 경영에 적용해 나름대로 해석을 한 거죠. 혁신(새로움)이 곧 기업 경영의 근본(큰 덕)이라는 뜻입니다. 혁신은 새로움입니다. 혁신을 주창한 슘페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혁신은 새로운 기술, 소재, 생산방법, 제품, 용도, 시장 등 과거의 것을 답습하지 않는 시도를 말합니다. 발전을 가져오는 원동력이죠.”

 

 

대기업 납품에서 벗어나 울산에 없던 도금 사업을 새로 시도한 것 자체가 이 회장이 디딘 혁신의 첫 발자국이었다. 기존 일반 도금인 아연 용융 도금보다 훨씬 우월한 알루미늄 도금 기술을 개발한 것 역시 기업가로서 깨달은 혁신에 대한 열망 덕이었다. 이러한 열정은 고스란히 덕산하이메탈 창업으로 이어졌다.

 

 

◇중공업 일색 울산에 등장한 1호 벤처기업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단순 벤더사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는 영속적인 기업, 즉 혁신을 통해 지속성장할 수 있는 기업을 세우고 싶다는 꿈으로 발전했다. 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선 반드시 사회 전체가 꼭 필요로 하는 업종에 뛰어들어야 하고, 산업 기반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는 데 골몰하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였다.

 

“당시의 산업적·사회적 니즈에 맞춰나가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하게 돼 있습니다. 단순 협력사에서 벗어나 미래를 이끌고 발전시킬 인자가 무엇인지를 모색하게 됐죠. 그렇게 찾은 소재가 바로 솔더볼(Solder ball)입니다.”

 

이 회장은 철이 산업의 쌀로 불리듯,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쌀이 반도체라고 정의했다. 모든 ICT 산업이 반도체 없이 돌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솔더볼은 반도체 후공정 작업인 패키징에 필요한 핵심으로, 칩과 기판을 연결해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접합 소재다. 덕산하이메탈은 1999년 창업 이래 30㎛ 미만의 초정밀 솔더볼 생산능력을 갖춘 글로벌 소재 강자로 성장했다.

 

혁신이 빚어낸 열매는 필연적으로 뼈를 깎는 노력과 고통 끝에 얻을 수 있다. 개발 당시 국내에 전무했던 솔더볼 개발에 뛰어든 이 회장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와 핵심 인력 유출 등 말로 다하기 힘든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야 했다. 시작은 울산대학교에서 반도체 소재 관련 연구를 하던 한 교수의 제안이었다.

 

“작은 기업이 반도체 칩을 생산할 수는 없잖습니까. 후공정, 소위 니치마켓이야말로 우리 같은 중소·중견 기업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죠. 대학 연구실에서 1차 생산에 성공했던 소재였지만, 이를 상용화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시드 테크놀로지를 대기업이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생산량을 맞추는 과정은 몇 배나 더 어려웠죠. 그렇게 2~3년을 고생한 끝에 2003년 비로소 삼성전자에 납품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덕산하이메탈의 솔더볼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 인텔, 퀄컴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반도체 메이커가 모두 채택한 고품질·고부가가치 소재다. 삼성전자 납품만 해도 수없는 실패 끝에 얻은 성과였다. 당시 대학 연구실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던 학생 5명은 지금도 임원으로 일하며 연구개발(R&D)를 이끌고 있다.

 

“덕산하이메탈 창업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소재 산업은 대단히 열악했습니다. 울산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개발한 제품도 대부분 외국 기업의 부품과 소재를 수입해 조립하는 수준이었죠. 소재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면 국가의 부가 결국 해외로 유출될 뿐이었어요.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소재, 기존 제품을 답습하는 게 아닌 완전히 새로운 소재, 독특한 사업적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소재는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그걸 찾고 뛰어들어 결단하는 게 바로 기업가, 즉 리더의 역할입니다.”

 

현재 덕산그룹은 9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룹 모체인 덕산산업을 비롯해 도금 전문 업체인 덕산갈바텍, 반도체 소재 전문 기업인 덕산하이메탈, 디스플레이 소재를 생산하는 덕산네오룩스, OLED 중간 소재와 반도체 소재인 헥사클로로디실란(HCDS)을 생산하는 덕산테코피아 등 소재 전문 그룹으로서의 라인업을 탄탄히 갖추고 있다. HCDS 역시 덕산테코피아가 유일하게 국산화에 성공한 반도체 소재다. 하이메탈, 네오룩스, 테코피아 등 상장 3사의 기업 가치는 약 2조원, 매출 규모는 5000억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덕산넵코어스를 인수해 항법장치를 개발하는 방산사업으로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했다. 해외법인으로는 솔더볼의 원자재인 주석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미얀마에 세운 DS미얀마가 있다. 신기술 사업가와 벤처기업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투자전문회사인 티그리스인베스트먼트도 운영 중이다.

 

 

◇임직원 마음을 얻는 기업가가 진짜 리더

 

조선 부품업체에서 첨단 반도체 소재 산업으로 극적인 피벗을 이룬 과정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역할과 기업의 가치,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모험과 도전이라는 기업가정신의 요체 역시 소재 산업에 발을 디디면서 정립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전통적인 제조업은 이미 세팅된 기술을 잘 활용하는 사람, 즉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주축입니다. 그러니 위계에 의해 일이 작동하기 쉽죠. 소재 산업은 전혀 다르더군요. 석박사 과정의 연구원들은 엔지니어라기보다 지식노동자에 가까웠어요. 이들이 마음껏 지식을 발휘하고 R&D에 집중할 수 있게끔 동기부여를 해주는 일이 리더의 역할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자율과 창의가 뿌리내리는 토양을 리더가 깔아줘야 한다는 뜻이에요.”

 

이 회장은헤비머티리얼 사업만 계속했다면 나 역시 위계로 작동하는 경영 스타일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재 산업에 뛰어들면서 리더십의 방향 또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고백이다. 일례로 현재 덕산그룹 내 모든 계열사에선 인사와 재무, 구매, 연구 등 각 사업 부문을 모두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룹장 밑에 소속된 직원들은 팀원이나 부원이 아닌 파트너로 통칭해 부른다.

 

7명 정도까지는 맨투맨으로 끌고 가는 게 가능해요. 그보다 사람이 늘면 중간 허리가 있어야 하죠. 조직이 커질수록 허리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야 합니다. 위임과 재량이죠. 리더는 조직원 하나하나가 가진 재량과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면 됩니다. 창의를 120% 발휘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바로 시스템이자 경영의 요체이죠. 리더가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순간 죽은 조직이 되기 쉬워요.”

 

이 회장은 기업의 조직문화를 강조하면서 특유의줄다리기론도 꺼냈다. 모두가 똑같은 방향으로 힘을 주어야만 이기는 줄다리기처럼, 기업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같은 방향을 향해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이다. 톱매니지먼트에서 말단 현장까지 똑같은 목표와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이 말하는 줄다리기론이다.

 

“계열사 상장 때나 새로 M&A한 기업의 직원들에게 모두 스톡옵션을 지급합니다. 주가가 올라서 얻는 돈잔치는 금방 식어요. 우리는 일정 기간이 지나서 주가가 오르면 그 차액을 현금으로 돌려주는 제도를 도입했어요. 직원들이 주가에 민감하면으쌰으쌰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회사 입장에선 수십억원의 비용이 발생하지만같이하자, 함께하자, 같은 곳을 바라보자는 차원입니다. 직원들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작은 돈이죠. 리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울산을 한국의 스타트업 메카로

 

임직원의 마음을 얻어 혁신에 나서는 게 기업 내부의 목표라면, 좋은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길이다. 이 회장은 소재 산업에 뛰어든 후 부딪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결국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흡사 전쟁터처럼 느껴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초과학, R&D, 특허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인재, 특히 과학기술 인재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분야 인재 육성은 학생과 연구자에게 과감하게 투자할 때만 가능합니다. 학교에선 오롯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학비나 생활비 걱정 없도록 해줘야죠. 신진 학자들에게는 마음껏 새로운 도전에 나서도록 조건 없이 연구비를 지원해야 합니다. 기업이 우수한 인재 양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죠.”

 

지난해 전격적으로 이뤄진 유니스트 300억원 기부 전에도 이 회장은 지역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위한 지원을 계속해왔다. 자신의 아호를 딴 유하장학재단은 올해로 5기째를 맞아 이공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고, 이와 별도로 한국로타리장학재단에 지금까지 기탁한 금액만도 6억원에 달한다.

 

울산 벤처 1세대인 이 회장은 이러한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치러낸 값진 경험들을 어떻게 하면 후배들에게 전달해줄까 늘 고민해왔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지역 경제를 다시 일으키고,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새로운 산업 생태계 구축에 대한 해답은 스타트업 활성화다.

 

“지방에서 탄탄하게 성장한 스타트업이나 유니콘기업이 드문 건 그런 사례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 수도권에 몰려 있죠. 창업경진대회 같은 걸 매년 열지만, 결국 상금 2000만원, 3000만원 주는 게 전부예요. 더 실질적인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번 유니스트 기부를 통해 새로 들어설 챌린지융합관은 대학은 물론 울산을 대표하는 스타트업의 메카가 되리란 기대가 높다. 이 회장은창업 교육과 창업 후 보육, 창업가와 멘토 간 매칭,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모델 개발, 제품과 특허 개발 등을 한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집적화된 장소가 필요했다면서평소의 소신이 유니스트의 비전과 정확히 맞아떨어져 기부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울산의 산업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희망이다.

 

이 회장은 인터뷰 말미 어린 시절 겪은 일화를 소개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했다. 가난한 시골 농가에서 홀어머니 아래 살던 소년의 깨달음이 수십 년 후 첨단소재 기업을, 사회적 책임에 헌신하는 기업가를 낳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일화다.

 

3 1녀를 홀로 키우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 고구마 밭에 가셨답니다. 밤사이 누군가 3분의 1가량을 싹 캐갔다지 뭡니까. 화가 난 어머니의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웃 아주머니가너무 상심 마이소, 마 그래도 주인이 더 많이 먹는다 그리 생각하이소하시는 겁니다.

 

어머니 옆에 있던 전 어린 나이에도 그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고, 수십 년 지난 지금도 머릿속에 각인돼 있어요. ‘나눌 줄 아는 사람의 사고 구조는 이렇게 가져야 하는구나깨달았던 거죠.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그때 일을 교훈 삼아 나누려 애써왔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아닐까요.”

 

 

〈덕산그룹 주요 계열사 현황〉

 

덕산홀딩스 :

덕산그룹 미래 성장전략 견인 주력사업 그룹 지주사 소재지 울산광역시

 

덕산하이메탈 :

세계 최고 수준의 솔더볼 제품군 및 기술력 보유 주력사업 솔더볼, 도전볼, 솔더파우더, 솔더페이스트 등 전자재료 소재지 울산광역시

 

덕산네오룩스 :

최첨단 디스플레이 소재 전문 기업 주력사업 세계 최고 수준 유기물 제조, 최첨단 AMOLED 패널 소재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덕산테코피아 :

정밀 화학합성 전문 기업 주력사업 실리콘 모노머, 유기금속 전구체, OLED 재료 국내 최초 HCDS 국산화 성공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덕산넵코어스 :

방위산업 전문 기술개발 기업 주력사업 기동무기화력체계, 정밀유도무기체계 소재지 대전광역시

 

덕산산업·덕산갈바텍 :

알루미늄, 아연 용융 도금 주력사업 알루미늄, 아연도금 소재지 울산광역시

 

DS미얀마 :

금속 제련 전문 기업 주력사업 주석 등 금속 제련 및 판매 소재지 미얀마 양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