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he〕히트상품을 통해 본 일본 틈새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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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린고비형 상품도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야 뜬다
최근 일본의 틈새 트렌드는 경기불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소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할인 상품권을 애용하거나 외출 및 외식을 줄이는가 하면, 반대급부적으로 우울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작은 사치 상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경기불황의 여파로 모든 것을 집안에서 해결하려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집 나가면 돈’이기 때문이다. 이는 가장 소비생활이 활발한 20대도 예외는 아니다. 휴일에도 집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고 전반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집(家)’이 주요 키워드로 떠올라 집에서 먹고 즐길 수 있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 집에서 먹고 논다
지난해 ‘니케이트렌디’가 선정한 히트상품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먹는 라유(고추기름)는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3D영화(2위)나 스마트폰(3위)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라유의 주요 제조업체인 에스비와 모모야가 각종 언론에 ‘재고부족 사과문’을 실을 정도로 먹는 라유는 일본 열도를 흔든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먹는 라유는 단순한 고추기름이 아니라 마늘, 양파, 채소 같은 건더기를 섞어 밥 위에 얹어 비벼먹을 수 있는 제품이다. 일본인들은 예전부터 밥에 뿌려 먹는 감미료인 후리가케를 즐겨왔는데, 식품업체 모모야가 이 점에 착안해 양념으로만 사용되던 고추기름 성분과 맛을 변형해 후리가케처럼 내놓은 것이다.
먹는 라유는 입맛이 없거나 시간이 없을 때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2009년 8월 첫 출시된 모모야의 ‘매울 듯 맵지 않은 라유’는 재미있는 제품명으로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먹는 라유를 라유라 할 수 있는가’라는 논쟁까지 일으키며 붐을 일으켰다.
그 후 하나 둘 경쟁업체들이 가세하면서 라유시장은 1년 새 130억 엔에서 940억 엔으로 7배 커졌고, 파생상품들이 등장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훼미리마트는 ‘라유 삼각김밥’을 내놓았는데 작년 한 해 동안 500만 개 이상 판매되는 돌풍을 일으켰고, 라유를 첨가한 햄버거와 컵라면까지 등장했다.
냄새와 연기 걱정 때문에 가정에서 생선 요리를 꺼리기는 생선을 좋아하는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다. 고바야시 제약이 출시한 ‘생선구이 팩’은 팩에 생선을 싼 채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만 돌리면 팩 내부의 특수 필름이 200℃까지 올라가면서 바삭한 생선구이가 완성되는 아이디어 제품이다. 냄새와 연기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용 후 그대로 버리면 된다. 이 제품은 출시 1년 만에 450만 개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외식이 줄고 집에서 식사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식재료들이 자연스레 히트상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먹는 라유나 생선구이 팩처럼 소비자들의 잠재된 니즈를 파악해 그에 맞게 업그레이드된 상품만이 히트상품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이 밖에도 선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특수 파우치 용기를 이용한 파우치 간장, 뜨거운 물을 편리하게 버릴 수 있는 컵용기 야끼소바, 오르니틴(아미노산의 일종)이 들어간 된장국 등이 익숙하지만 특별한 상품들이다.
한편, 식재료뿐 아니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장난감(블록쌓기, 트럼프, 요요), 가전제품, 인테리어 상품, 조리기구, 원예용품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수납함이나 우산대가 인기를 끈 점이 이색적이다.
가정용품 수요가 증가한다고 1인용 제품만 인기를 끈 것은 아니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여자회(女子會)’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는데, 이는 여자들끼리 수다를 떠는 모임을 말한다. 집에서 홈파티를 즐기는 경우가 많아 돈키호테의 도심형 점포들은 여자회를 겨냥해 다양한 코스프레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 작은 사치, 거부할 수 없는 디자인의 유혹
아무리 불황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해도 아름다운 디자인의 유혹은 거부할 수 없다. 니케이트렌디가 올해 히트가 예상되는 상품 2위로 뽑은 ‘모바비’, ‘모바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모바비, 모바뷰는 모바일과 미(美) 또는 뷰티의 합성어로 휴대가 간편한 뷰티상품을 통칭하는 단어로 휴대용 미용가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모바비, 모바뷰는 별개의 새로운 상품 시장을 구축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파나소닉의 초소형 전동칫솔인 ‘포켓 도르츠’를 들 수 있다. 길이 16㎝에 불과한 이 제품은 얼핏 보면 화장품(마스카라) 케이스처럼 보인다. 세련된 디자인에 건전지 하나로 간편하게 전동칫솔을 이용할 수 있어 전동칫솔은 집에서만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주었다. 가전제품 코너뿐 아니라 약국과 화장품 코너, 계산대 등에 배치, 적극적으로 여심을 흔든 이 제품의 등장으로 가정용 전동칫솔의 시장 규모가 2배로 늘었고 현재 일본 직장 여성들(오피스 레이디)의 필수품이 됐다.
그 밖에도 게르마늄 슬림 롤러, 휴대용 아이롱, 에티켓 카터(코털 제거기), 포켓 미스트 등이 뜨는 모바비?모바뷰 제품이다. 이들 제품은 집에서만 사용하던 미용가전을 밖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공간을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편의점 업계에서 인기를 끈 ‘프리미엄 롤케이크’처럼 과하지 않은 작은 사치(프티 사치) 제품들은 궁색한 소비생활을 위로해주는 감성 소비의 전형. 프리미엄 롤케이크는 150엔이라는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고품격 디저트 메뉴로, 케이크 전문점 수준의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로손의 야심으로 탄생했다.
부드러운 스폰지 케이크 가운데 가득 찬 생크림을 떠먹을 수 있도록 스푼을 동봉했는데, 롤케이크라는 고전적인 제품을 여럿이 아닌 1인용 제품으로 만든 점과 편의점 제품치고는 기대 이상의 맛이라는 점이 인기몰이의 배경이다. 일반적으로 편의점은 남성 고객이 많지만 프리미엄 롤케이크가 인기를 끌면서 여성 고객이 대거 편의점으로 향하고 있다.
불황기에도 기분을 낼 때는 주저 없이 지갑을 여는 프티 사치 풍조에 착안해 일본 편의점 업계는 크리스마스, 절분(입춘 전날로 소원을 빌며 김밥을 먹는 날) 같은 주요 행사날에 고가의 프리미엄 케이크나 김밥을 선보이고 있다.
■ 절약을 생활화, 상품권 판매점
프티 사치가 간간히 틈새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대세는 절약이다. 프티 사치도 1천 엔 이하 범위에서 허용되는 정도다. 최근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일본 자린고비들 사이에서 긴켄은 알뜰한 소비생활의 대명사가 됐다.
켄은 화폐에 준하는 상품권으로 백화점, 슈퍼마켓 같은 유통업체뿐 아니라 여행, 음료, 도서, 문구, 휴대전화, 엽서, 영화, 교통(회수권), 공연티켓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통용되고 있어 우리나라에 비해 활용도가 높다. 보통 2% 할인된 가격에 긴켄을 구입할 수 있어 다양한 긴켄을 사용하면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절약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저가 항공권 등 각종 티켓 위탁 판매와 외화 교환, 금매매 등을 병행하는 곳도 증가하고 있으며, 일반 기업이 주주에게 발행하는 주주 우대권은 긴켄 시장의 주요 품목 중 하나다. 업종에 따라 반값에 이용할 수 있거나 무료 시식, 입장권을 보내주는 경우가 많아 인기가 높다.
가장 인기가 높은 긴켄은 음식점, 정보통신, 레저, 쇼핑, 교통 티켓이다. 음식점은 ‘제후그루메 카드’가 유명한데, 패밀리레스토랑과 패스트푸드점•술집•백화점 식당가 등 전국 3만 5천 개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레저용 긴켄 중에서는 ‘도쿄디즈니랜드 패스포트’가 나오는 즉시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여행사나 항공사가 발행하는 상품권도 인기다. 영화 감상권도 있는데, 지정 영화는 높은 할인율(72%)로 감상할 수 있으며 보다 선택의 폭이 넓은 공통권도 있다. 일본은 교통비가 비싸기 때문에 교통 긴켄을 찾는 이들도 많다. 특히 ‘센칸센 회수권’은 출장이 많은 샐러리맨들이 많이 찾는다.
일본에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액면가보다 긴켄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긴켄숍이 있는데, 일본의 긴켄숍은 체인점 형태로 운영되며 그 중 다이코쿠야가 가장 유명하다. 최근 긴켄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 역세권이나 상점가 등을 중심으로 긴켄숍이 늘고 있는 추세며, 인터넷을 통해서도 확산되고 있다.
도쿄의 웬만한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다이코쿠야는 접근성을 높여 입지를 굳혔다. 긴켄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부러 교통비를 쓰며 점포를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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