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라이프〕섹스 앤 더 시티
- "여자도 남자처럼 섹스 할 수 있을까?"
- 섹스 앤 더 시티 제대로 읽기 킴 아카스, 재닛 맥케이브 지음
드라마 방영 10년… '세계적 사건'으로 자리 매김 '브런치 테이블 수다'로 남성 중심 문화 뒤집어 - 박선이 여성전문기자 sunnyp@chosun.com
- 뉴욕 맨해튼에서 매일 아침 11시와 오후 3시에 떠나는 〈섹스 앤 더 시티〉 투어 버스가 출발한다. 독신 여성들의 섹스와 사랑, 성공에 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 〈섹스 앤 더 시티〉 촬영 현장을 찾아가는 '성지순례'다. 주인공들이 먹었던 분홍색 컵케이크가 불티나듯 팔리는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멋진 신부가 나타났던 길모퉁이 성당, 남자 없이도 기쁨을 얻게 만드는 '토끼'를 팔던 플레저 체스트 등을 들르는 이 투어는 1인당 40달러라는 적잖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여성 관광객들로 와글와글 붐빈다. 한국 팬들은 이들 명소를 '목련 제과'(매그놀리아 베이커리), '청수장'(블루워터 그릴)이라고 친근하게 부르기도 한다.
- 배우 새라 제시카 파커가 지난달 27일《섹스 앤 더 시티:더무비》(원제 Sex and the City: The Movie) 시사회가 열린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로 들어서고 있다. AFP / 그래픽=송윤혜기자 ssong@chosun.com
〈섹스 앤 더 시티〉가 등장한지 올해로 꼭 10년. 6개 시즌을 거쳐 마지막 회가 끝난 것이 2004년이지만, 이 드라마는 지금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방영되고 있다. 드라마 주인공들을 그대로 등장시킨 영화도 나왔다. 지난 10년 간 이 드라마는 대중문화 텍스트를 넘어 여성의 성 담론 혁명, 패션과 소비에 대한 물신 숭배적 열광 등에서 유례 없는 세계적 사건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킴 아카스(Akass)와 재닛 맥케이브(McCabe)는 이 드라마에 열광했던 자기 경험에서 출발한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진정한 정신을 찾겠다"며 뉴욕의 드라마 현장투어 버스에 오른 이들은 "문화현상과 그것을 소비하고 싶은 욕망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이 (드라마처럼 살고 싶은) 팬터지"이며 캐리의 집 앞 계단에서 찍은 기념 사진을 통해 "자신만의 〈섹스 앤 더 시티〉 내러티브 속에 걸어 들어갔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그러나 말랑말랑한 팬 북이 아니다. 〈섹스 앤 더 시티〉 매니아들을 위한 정보모음집도 아니다. 공동 저자는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전공한 학자들이며, 책에 실린 글은 대중문화연구와 여성연구 논문들이다. 하지만, 〈섹스 앤 더 시티〉가 TV드라마라는 대중문화 텍스트인 동시에 현대여성담론의 공론장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대중문화·여성연구물인 동시에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속속들이 파헤치며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진지한 안내서로도 읽을 수 있다.
저자들은 〈섹스 앤 더 시티〉가 우선 여성들의 이야기란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매 에피소드는 극중 화자(話者) 캐리와 3명의 친구들이 카페나 빵집, 식당에 모여 앉아(4명은 한 테이블을 꽉 채우는 숫자다!) 수다 떠는 모습을 빼놓지 않는다. 처음에는 비판도 거셌다. 이성애(異性愛) 백인 여성들의 '쓸데 없는 잡담' '날조'라는 혹평이 이어졌다. 그러나 시즌을 거듭하면서 이 드라마에 담긴 성 담론과 여기에 열광하는 여성들에 대해 재평가가 시작되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과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모두 주목 받게 된 것이다.
브런치 테이블에 둘러 앉은 4명의 여성은 섹스와 삶에 대한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여성의 사정(射精), 바이브레이터, 낙태, 불임, 자신의 성기를 들여다보기 등을 허세나 장식 없이, 마치 주가나 부동산 가격 등락을 논하는 것 같은 평범한 어조로 논의한다. 이 '브런치 테이블 수다'는 기존의 남성 중심 대중문화 텍스트와 성 담론에서 볼 수 없는 여성의 주체성과 우애를 확립한다는 점에서 남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여자도 남자처럼 섹스 할 수 있을까?"는 논의의 핵심은 "여자도 (감정없는) 섹스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캐리와 친구들이 카페 창 밖으로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점수 매기기 게임을 할 때, 대중문화의 역사에서 언제나 주체(남성)의 시선의 대상으로 타자화 되어왔던 여성들이 비로소 주체의 관점을 찬탈하는 순간이 된다. 저자들은 "이러한 수다를 통해 언급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로맨스 신화나 사회적 금기에 노출되고, 새롭게 변형된다"고 설명한다.
드라마의 여성 주체성은 호명(呼名)의 정치학에서도 드러난다. 여성 주인공의 이름과 직업, 성격이 분명한 것에 비해 남성들은 단지 미스터 빅(Big), 미스터 마블러스(Marvelous), 아티스트 가이(Artist Guy)로 익명화된다. 캐리가 마음 졸이는 두 남성, 미스터 빅과 에이단은 '완벽한 남성성'이 해체되는 증거로 등장한다. '백마 탄 왕자님'인 줄 알았던 남성들이 변태이거나 괴물이라는 것을 발견한 순간, 여성들은 그들과 결혼할 수 없고 여성들 역시 이 시대의 괴물일 수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책의 주장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3세대 페미니즘'과 이 드라마의 성공을 연결한 부분이다. 저자는 이 드라마가 표방하는 페미니즘은 "백인, 중산층, 이성애 여성 캐릭터로 제한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여성운동이 성취한 것을 누리며 성장한 세대가 가진 제3세대 페미니즘은 인종과 계급 같은 사회적 이슈보다 인간의 개별성과 개인의 정의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한국에서도 특히 20, 30대 여성들의 열광을 이끌어냈고, 여주인공이 섹스 칼럼니스트로 설정된 TV드라마 〈여우야 뭐하니〉, 브런치 메뉴, 마놀로 블라닉과 지미 추 구두 유행으로 이어졌던 것을 떠올리면 한국 사회도 어떤 변화를 향해 갈지 흥미로운 예측을 가능케 한다.
이 책은 대중문화 텍스트로서 〈섹스 앤 더 시티〉에 대한 꼼꼼한 독법을 제시하고 있지만, 저자 스스로도 '다섯번째 주인공'이라고 부른 패션(상품)과 극중 패션 상품이 현실 세계의 여성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비판보다 설명에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던진다.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도 극중 패션 브랜드와 판매 정보가 넘치는 현실을 볼 때, 대중문화 텍스트가 가진 상업성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시선이다.
원제 Reading Sex and The City
→〈섹스 앤 더 시티〉는?
〈뉴욕 스타〉라는 가상의 신문에 〈섹스 앤 더 시티〉라는 칼럼을 쓰는 캐리와 PR회사 중역인 사만다, 변호사 미란다, 화랑 매니저인 샬럿. 4명의 30~40대 여성 주인공이 드라마의 중심 인물이다. 이들은 로맨틱한 사랑과 화끈한 데이트, 직업적 성공을 꿈꾼다. '천생연분'을 소망하는 캐리는 빅과 에이단이라는 두 남성 사이에서 고민하고(그러면서 사이사이 숱한 남성들과 밤을 보낸다) 성 해방론자인 사만다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섹스의 모험에 나선다. 미혼모인 미란다는 '관계'에 대한 냉소주의자다. 유일한 기혼녀 샬럿은 완벽한 결혼 생활을 꿈꾸다 실패하고 유태인과 재혼해 아기를 가지려 노력한다.
드라마는 캐리가 쓰는 칼럼 주제가 매 회 에피소드를 이끈다. 캐리와 친구들은 성 경험과 끔찍했던(가끔은 성공적이었던) 데이트 경험을 두고 수다를 떤다. '여자도 남자처럼 섹스 할 수 있는가?' '20대 남자는 새로운 값비싼 마약인가?' '스리섬 섹스는 차세대 섹스 프론티어인가?' 같은 주제에서 보듯, 매 에피소드는 섹스에 대한 노골적인 대화, 화려하고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논란과 화제를 일으켰다. 캐리가 거의 광신적으로 '숭배'하는 마놀로 블라닉 구두와 지미 추 구두는 이 드라마와 함께 세계적 상품으로 떠올랐다. 드라마 속 이들이 자주 가는 빵집, 카페, 식당, 백화점, 보석 가게와 호텔, 미술관 등은 뉴욕의 명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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