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치킨에 빠진 이유
- 1960년, 최초 영양센터 들어서… 명동 거리 초만원
- 1971년 해표 식용유 출시로 '가마솥 통닭' 시대 열려
1인당 한해 20마리 먹는다는데, 한국인이 치킨에 빠진 이유
한국인이 한 해 소비하는 닭고기는 대략 14kg이다. 마리로 치면 20마리쯤 된다. 이처럼 많이 먹지만 우리가 먹는 닭이 어떤 품종인지 관심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닭은 품종과 음식 문화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육계산업의 시작과 전기구이 통닭
집에서 부업으로 기르던 닭이 대량화·산업화 되는 것은 1960년대 초반이다. 달걀을 낳는 산란계와 고기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육계가 분리되는 것이 산업화의 시초였다. 1965년 육계를 뜻하는 브로일러(broiler)가 수입되면서 양계산업이 본격화된다. 브로일러의 원 뜻은 ‘구이용 닭’으로, 사육일수가 짧으면서도 고기량이 많다.
육계 덕분에 가장 먼저 대중화된 것은 전기구이 통닭이다. 1960년 서울 명동에 전기구이 통닭의 원조인 ‘영양센타본점’이 들어섰다. 하지만 재료 공급이 안정화된 1965년부터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선다. ‘전기구이 통닭, 군침부터 삼키고 한 집 문을 열었을 때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도 없이 초만원이라 다른 집엘 갔다. 역시 만원이다.’(신동아 1965년 9월호)
장작구이 통닭.
◇육계와 식용유, 시장통닭과 프라이드 치킨의 시대
1971년 해표에서 국내 최초로 식용유가 출시되면서, 가마솥에 닭을 튀긴 가마솥 통닭이 1970년대 초반 등장했다. ‘시장 통닭’이라고도 부르는 가마솥 통닭이 인기를 얻으면서 육계산업도 급성장한다.
수원 매향동 진미통닭.
프라이드 치킨의 시대가 열린 건 1970년대말이다. 1970년 일본에 상륙한 KFC가 큰 인기를 얻자 발 빠른 수입업자들이 압력솥을 수입해 팔면서 프라이드 치킨이 국내에 등장했다.
‘닭을 6조각으로 나누어 한 조각에 600원씩을 주고 파는 탓에 통닭 한 마리를 먹기가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신촌 주변 대학가에는 이 집들이 10m 간격으로 생겨나 일반유흥업소까지도 켄터키 치킨을 팔겠다고 나서고 있다.’(1980년 10월 28일자 매일경제) ‘장사를 하는 입장에선 점포임대료를 합쳐 1000만 원 내외의 소자본으로 (창업) 가능하고 비교적 수익성이 높기 때문에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몇 집 건너 한 군데씩은 켄터키치킨집이 퍼져있다.’(1981년 2월 4일자 매일경제)
1977년 신세계 백화점 식품부에서 만든 ‘림스치킨’은 대한민국 최초의 치킨 프랜차이즈다. 1979년에는 ‘롯데리아’가 문을 열면서 프라이드 치킨을 선보였다. 1984년 KFC가 정식으로 국내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프라이드 치킨의 시대에 돌입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안동찜닭 유행
안동찜닭은 경북 안동 구시장에서 탄생했다.
프라이드 치킨의 영향으로 통닭보다 조각닭이 유행했다. 그러자 1980년대 안동시장 상인들이 조각닭에 당면, 감자, 당근, 파, 마늘, 붉은 고추를 넣은 찜닭을 개발했다. 안동찜닭은 친숙하면서도 자극적인 맛과 푸짐한 양으로 1990년대 중반 안동 대학가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안동 방문을 계기로 서울은물론 전국적으로 안동찜닭의 짧은 전성 시대가 열렸다.
안동찜닭
시장통닭이나 안동찜닭은 프라이드 치킨보다 비해 큰 닭인 12호 이상의 육계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닭은 451~550g의 닭을 5호를 기준으로 100g이 증가할 때마다 한 호수씩 높이는데 최대 17호(1651g 이상)까지로 구분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프라이드 치킨은 9호나 10호 육계를 주로 쓴다.
2019.02.07. 10:00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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