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한마리 칼국수
‘닭한마리요!” 시장 상인들의 배를 채워주었던 푸짐함
‘닭한마리’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끓는 물에 넣고 여러 가지 채소와 가래떡을 곁들여 먹은 후 마지막으로 국수까지 넣어먹는 음식이다. 닭한마리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국수를 필두로 한 사리들이 메워주기 때문에 면 요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닭한마리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음식으로, 이 특이한 메뉴명은 우리가 닭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 닭고기가 흔해진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 땅에서 자랐던 토종닭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외래종으로 종자가 바뀌었다. 한국전쟁 때는 그나마 있던 닭들을 잡아먹은 탓에 점점 줄어들었다. 당시 귀하게 여겨졌던 닭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닭이 흔해진 건 1970년대 이후다. 양계기술이 발달하고 사료가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대규모 양계장이 생겼다. 공급이 많아지니 닭 값은 내려갔고, 집 앞 시장곳곳마다 닭집이 생겼다. 닭을 잡아 국물을 내어 식구 모두 둘러앉아 집에서 고아먹던 닭요리의 기억은 이맘때쯤부터다.
시장에서 닭을 흔하게 구할 수 있었을 1978년 문을 열었다는 닭한마리 원조집은 중앙시장 닭장에서 닭을 사와 손님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동대문종합시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시간에 쫓기는 동대문상인들이 “닭한마리요”하고 주문하는 방식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장사하는 입장에서도 닭을 간단하게 삶아내기만 하면 돼 바쁘고 허기진 상인들에게 빨리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칼국수, 라면, 가래떡… 요리를 풍성하게 해주는 '사리'
상위에서 다시 팔팔 끓을 때까지는 각자의 양념장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부추를 잔뜩 집어 앞 접시에 놓고, 청양고추와 태양초를 섞은 빨간 양념과 겨자와 간장 등을 적당히 섞어둔다. 이 ‘적당히’가 개인의 기호이므로 알아서 양념장의 비율을 조절한다. 말랑해진 가래떡이 떠오르면 가래떡을 시작으로 각종 채소와 닭고기를 건져 양념장에 찍어먹는다.
닭 육수에 말랑해진 가래떡을 몇 개 건져보아도 아직 채워지지 않는 그런 빈약함이 있다. 그 부분은 국수를 필두로 한 사리들이 메워준다. 원래 사리는 국수, 새끼줄, 실 따위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뭉치를 의미한다. 즉, 음식에서의 사리란 국수를 적당한 양으로 사려놓은 덩어리 등을 의미하는데, 한국인 ‘사리추가’의 의미는 이것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주재료를 보강해주거나 더해주는 옵션을 의미한다.
우리는 닭한마리를 먹으면서 단지 ‘닭한마리’만을 먹는 것이 아니다. 라면, 떡, 감자, 만두, 고구마, 볶음밥 등은 사리라는 이름으로 닭한마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각자의 기호대로 만드는 닭한마리 칼국수
닭과 가래떡 등 사리들을 건져먹고 남은 국물은 서서히 진국으로 돼 간다. 그 졸아든 국물에 육수를 청해 국수를 넣는다. 닭 뼈의 골수까지 흐물흐물 녹아들은 국물이다. 신천 <큰손 닭한마리>의 육수는 닭 뼈를 이용해 12시간동안 거품을 걷어내고 거르는 작업을 한다. 덧밀가루를 입힌 칼국수에는 닭고기 국물이 그제야 서서히 배기 시작한다. 국수는 진할 대로 진해진 국물이 스며들어 한껏 묵직해졌다.
음식은 시대가 바뀜에 따라 그에 부여되던 문화적인 의미도 달라진다. 닭한마리라는 생소한 이름에 이끌려 들어오고, 잘 절단된 닭 조각들이 끓기만 하면 메뉴판을 보고 원하는 사리를 하나씩 추가해 먹는 것. 그것이 여럿이 모여 닭한마리를 나누는 지금 시대의 의미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한 마리를 해치우는 만족감보다는 국수를 포함한 여러 가지 사리를 각자의 기호대로 넣어먹는 취향의 풍요로움이 닭한마리에 투영되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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