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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벼룩시장서 중고물품 팔던 남자... 어떻게 매출 900억 올랜드아울렛 키워냈을까

Paul Ahn 2011. 2. 12. 14:18

⊙황학동 벼룩시장서 중고물품 팔던 남자... 어떻게 매출 900억 올랜드아울렛 키워냈을까

(mk.co.kr)

 

서울 강남역에서 광역버스에 몸을 싣고 북으로 북으로 달렸습니다. 파주시 입간판이 보이더군요. 종점이라 해서 내렸더니 다시 지역 버스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버스는 어느 다리 이름역에서 기자를 내려줬습니다. 지도앱을 켜니 여기서 또 600m를 더 걸어가야 한다고 나왔습니다. 땡볕이 정수리를 벗기려 할 만큼 뜨거웠습니다.

 

'누가 이런 대중교통 불편한 곳까지 와서 지갑을 열까' 하며 투덜댔습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하니 평일 낮인데도 주차장에 자동차가 빼곡했습니다. 매장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예비 신혼부부로 보이는 이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한샘 로고가 박힌 소파를 비교하면서 고르는가 하면 또 다른 매장에선 한 아주머니가 "다이슨 청소기가 어쩜 이리 싸대?"하며 연신 상기된 표정으로 매장을 활보하고 다녔습니다.

 

리퍼브 전문매장으로 유명한 올랜드아울렛의 파주 본점은 이렇게 활기찼습니다. 기자가 이 회사를 알게 된 건 매경이코노미 스페셜리포트 '현대판 아나바다 불황형 산업이 뜬다'를 취재하던 중이었습니다. 기사에 들어갈 기업 예 중 하나로 올랜드가 보이길래 간단히 언급했는데 회사를 좀 더 꼼꼼히 들여다보니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특히 리퍼브 전문업체 중 오프라인 매장 기반형으로는 국내 1위일 정도로 규모의 경제도 갖췄더군요.

 

여기서 잠깐. 리퍼브가 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거 같네요. 리퍼브란 소비자의 변심으로 반품된 정상품이나 성능에 문제가 없는 초기 불량품 등 B급 상품은 물론, 유통 기한 임박 상품, 과대 재고 상품, 흠집이 있는 상품 등을 말합니다. 리퍼브 전문매장은 이런 상품들만 한데 모아 파는 곳을 의미합니다.

 

동네마다 '중고가전제품 삽니다'란 스티커를 붙이고 폐가전을 수거하는 '○○재활용센터'류의 업체가 리퍼브 취급점으로 진화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런 리퍼브 매장이 성공하려면 얼마나 많은 리퍼브 제품을 확보할 수 있는지(소싱), 또 이를 잘 전시하고 사람들을 모을 수 있게 마케팅할 수 있는지(집객), 여기에 더해 대량 물품을 한꺼번에 사올 수 있는지(자금력) 등이 사업의 핵심으로 요약됩니다. 도심 변두리 재활용센터라 이름 붙은 매장에서도 이런 리퍼브 제품을 취급하긴 합니다만 대부분 영세한 이유는 이런 핵심 역량을 못 갖춰서입니다.

 

 

올랜드아울렛은 달랐습니다. 좀 이따 설명하겠지만 '천원의 행복' 같은 프로모션 이벤트도 하고 광고모델(개그맨 김한석)도 쓰고 주차장도 마련하고 출장설치도 해주는 등 나름 소비자 편의를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한 흔적이 매장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이곳 본사 매장뿐만이 아닙니다. 부산 대구 등 전국 20개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규모의 경제도 갖췄습니다. 소싱 능력도 남달랐습니다. 올랜드아울렛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 운영진과 선수단이 사용한 가구와 집기 일체를 11t 트럭 3000대에 나눠 실어 왔다는군요.

 

올랜드 아웃렛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집기가전 제품을 11톤 트럭 3000대 분량으로 수거해 되팔고 있다.

 

그래봐야 매출이 얼마나 되겠나 싶었는데 이 회사, 2016년 연간 매출액(가맹점 포함) 471억원, 2017년에는 595억원, 지난해에는 765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쑥쑥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900억원을 내다볼 정도라는군요. 영업이익률도 10%내외를 기록할 정도로 사정이 괜찮았습니다.

 

요즘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다들 경기가 안 좋다고 하는데 올랜드에 와보면 그런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회사를 보며 떠오른 문구가 있습니다.

 

"'경기를 탄다, 불황 때문이다'라는 말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시대 상황이 바뀌고, 환경이 변하고, 돈의 흐름 속에서 '있는 자' '없는 자'의 위치가 변하는 것뿐이다"

 

베스트셀러 '내 운명은 고객이 결정한다'의 저자 박종윤 경영코치의 말입니다. 기자는 올랜드가 '있는 자' 사례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상황과 환경, 그 시대 흐름의 변화에 맞춰 시장을 만족시키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불황이 뭔가요?'라고 반문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올랜드는 가치소비, 실속소비를 꾀하는 소비자를 '규모의 경제'로 저격했다고 볼 수 있죠.

 

그렇다면 올랜드는 처음부터 승승장구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시작은 초라했습니다. 중고제품, 골동품 상점이 몰려있는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이 올랜드아울렛의 고향입니다. 시장 한쪽에 '재활용센터'란 영세 점포 형태로 시작한 것이 1986년이었다지요.

 

창업자 서동원 대표는 30년이 넘는 외길을 이 분야에 바쳤다고 합니다. 사회생활 초기 직장생활로 번 돈 300만원으로 혈혈단신 벼룩시장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는데요. 올랜드아울렛 사업 스토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대표님, 본사 찾아오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외진 곳에 매장을 둔 거 아닌가요?

 

▷죄송한데…. 실은 저희 고객들은 대부분 차를 가지고 와요. 와서 쓸어담아 가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상품을 구비해 두느냐가 더 중요했어요. 그런데 서울은 땅값이 너무 비싸잖아요. 그래서 땅값이 싼 도심 외곽에서 사업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점이 오히려 먹혀들었습니다.

 

-어떻게요?

 

▷원래 저희는 전국 재활용센터나 중고시장에 납품하는 도매 사업을 했어요. 그러다 여러 위기를 겪으면서 차라리 도매가로 납품하던 가격대를 우리가 매장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게 더 낫겠다 해서 올랜드아울렛 사업을 시작한 겁니다.

 

도심에 임대료 같은 고정비를 주느니, 또 전국 재활용센터에 납품하느니 그 돈을 가격 낮추는 데 반영하니 고객들이 알아서 찾아와요. 젊은 고객은 다 온라인 구매만 할 것 같죠? 다이슨 같은 명품 가전도 저희 매장에서는 반값 이하로 팔 때도 있으니 젊은 고객도 떼 지어 오고 있어요. 물론 오면서 다들 한마디씩 하죠.

 

찾기 힘든 곳에 있다고(웃음). 그런데 막상 와서는 별 불만을 얘기 안 해요. 워낙 싸게 살 수 있으니 교통비, 기름값 빼고도 남는 장사니까요. 물론 그래도 고객 편의가 중요하니까 가맹점 형태로 도심에 하나둘 내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다 보니 20곳 량 됐어요.

 

-원래는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작게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키울 수 있었습니까.

 

▷사업이란 게 생각해보면 일단 원가가 낮아야 합니다. 그리고 파는 제품이 고객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메리트가 있어야 해요. 고객은 브랜드 제품을 선호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했으면 하지요. 이건 '대한민국은 늘 위기에 놓여 있다'란 인식만큼이나 잘 안 바뀌어요. 서론이 길었는데요. 저도 처음엔 재활용품 수거해서 고쳐서 판매하는 여느 재활용센터와 비슷한 사업을 했어요. 물론 이렇게만 해도 많이 남았어요. 거의 헐값 혹은 공짜로 물건을 회수해와서 고쳐서 돈을 받고 파는 거니까 안 남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빨리 돈이 모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일단 서울시내 시장을 두루 돌아다녀봤어요. 시장 상인들은 하루 종일 TV나 라디오를 켜놓고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화질, 음질이 좀 나빠지더라도 따로 고치러 갈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상태가 안 좋은 데도 계속 틀어 놓더군요.

 

그래서 저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찾아가는 서비스'를 했어요. 일단 오토바이에 8대 정도 멀쩡한 TV, 라디오를 실어 가요. 시장을 돌면서 상태가 안 좋은 TV나 라디오가 가게가 있으면 무작정 들어갑니다. 거기다 제 제품을 팔고 대신 종전 상태의 안 좋은 제품은 공짜 혹은 거의 푼돈에 가져와요. 오히려 수거비를 주는 곳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제품 중 상당수는 조금만 고쳐놓으면 새것 같은 것들이 많았어요. 그러니 이익이 많이 났죠. 이런 전략으로 서울시내 대형 시장을 하나둘 접수해나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방에서도 제 회사 소문이 났나봐요.

 

당시 광주 반도상가, 부산 부전시장 등이 중고시장으로 유명했거든요. 이곳 상인들이 안정적으로 중고 제품을 좀 가져다달라더군요. 그래서 전국 단위 중고제품 도매 사업을 시작했어요. 돈이 돈을 부르더군요.

 

-그럼 사실 지금보다 더 사업 규모가 컸을 듯한데.

 

▷그사이 우여곡절도 많았어요. 대형 도매사업을 하니 좋은 점은 매출이 금방 뛰는 것인데 안 좋은 점은 현금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지방 시장 상인들은 어음을 주로 썼는데 납품하면 100일 있다가 돈이 돌아오니 좋을 때도 있지만 갑자기 대외 환경이 나빠지면 바로 직격탄을 맞더군요.

 

-예를 들면?

 

IMF 외환위기 때요. 막 사업을 번창시켜서 그사이 집도 사고, 상가 건물도 살 정도로 빠르게 재산을 불릴 수 있었는데요. IMF가 오니까 하나둘 건실하던 협력업체 어음들이 부도처리가 되더군요. 처음 한두 군데는 막았는데 계속 돌아오는 어음 부도 때문에 결국 저도 흑자 도산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시 돈으로 13억원 이상 되는 현금도 다 날아갔죠. 지금으로 환산하면 에휴~.

 

-어떻게 재기했습니까.

 

▷저는 그래도 재기할 자신이 있었어요. 제가 물건을 잘 못 팔아서 당한 고난이 아니라 협력업체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요. 원래 잘 하던 대로 고객이 혹할 수 있는 물건을 확보해서 팔자고 이를 악물었지요.

 

비록 전 재산은 없어져 지하에 겨우 사무실 하나 두고 있었지만 2000년대 초반 당시 가장 손기술이 좋은 엔지니어를 구해 파격적으로 월급을 주고 주 5일 근무도 시켰어요. 그분이 워낙 '금손'이라 전자제품 수리는 거의 '달인' 수준이었거든요. 저는 열심히 이전 거래처를 다니면서 제품을 수거했고요. 그러면서 재기를 노렸는데 그사이 새로운 시장이 보였습니다.

 

-어떤 시장요?

 

▷리퍼브요. 중고제품은 단점이 오래 사용한 상품을 고쳐 팔기 때문에 다시 또 고장이 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당시 대우전자가 어려워져서 재고 혹은 미사용 상품으로 미세한 흠집이 있어 반품된 제품들이 꽤 있었는데 이걸 한번 팔아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가서 보니 리퍼브 상품은 새 상품과 비교해봐도 품질에 차이가 없으니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둘 아이템을 취급하다가 워낙 저희가 잘 처리해주니까 대우전자 관계자의 눈에 들어 대규모 물량을 저희가 확보하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다시 사업을 일으킨 겁니다. 예전처럼 주먹구구식 영세 사업자로 어음거래하는 대신 지금의 이름도 만들고 법인(올랜드테크)도 세우고 제대로 사업체 형태를 갖춰 나갔지요. 예전처럼 도매도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거래처들이 또 '어렵다'는 얘기를 하자 아예 생각을 바꿨어요. IMF 외환위기 때 악몽이 떠올라서요. 도매 물량을 줄이는 대신 도매 납품 가격으로 매장을 만들어 소매를 병행하면서 고객들에게 '파격적인 가격 혜택을 줘 보자'라고 했지요.

 

서동원 올랜드 아웃렛 창업자

 

-B2B(기업 간 거래) 사업만 하다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으로 전환했다는 말인데 사실 그렇게 변신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마케팅도 직접 해야 하니 어려움이 컸을 거 같고요.

 

▷처음엔 애를 먹었어요. 가격에만 신경 써서 매장을 열었는데 잘 안 알려져 있으니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어요. 기자님이 방문했을 때 딱 그 표정들이었어요. '왜 이리 후미진 곳에 매장을 둬서 찾아오기 어렵게 만들었느냐'는 반응이었죠.

 

-(내심 반가워)그렇죠?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왜 북적거릴까요?

 

▷매장 내고 초기에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알음알음 찾아오더라고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어쩜 그리 고마운지. 그래서 몸소 찾아온 분들을 대상으로 이벤트를 열었어요. '천원의 행복' '반의 반의 반값' 행사가 그것인데요. '천원의 행복'은 천원짜리 쿠폰을 사게 해서 당첨되면 그 제품을 가져가게 하고, 꽝이면 어려운 이웃에 기부금으로 쓰는 이벤트를 했어요.

 

-'반의 반의 반값' 이벤트는요?

 

▷저희 직원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고객이 이기면 진짜 '반의 반의 반값'에 해당 제품을 팔았어요. 아울렛 제품이라 싼데 더 싸게 파니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왔어요. 그러자 각종 공중파TV, 방송, 신문 등에서 취재가 왔어요.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후라 어려울 때였는데 이런 이벤트를 여니 언론들이 다들 관심있어 했지요. 자연스레 홍보가 되니까 더 많은 고객들이 몰렸어요.

 

제품 소진이 잘 되니 업체들도 덩달아 저희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 덕에 SK매직, 신일, 한일 등은 물론 다이슨 같은 유명 브랜드 제품 리퍼브 물량도 확보할 수 있게 됐지요.

 

-다른 곳과 달리 여긴 가구도 취급하던데요. 특히 한샘과 같은 유명 브랜드 제품도 있고요.

 

▷한샘 물량을 따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소량만 처리했는데요. 신학기가 되면 한샘은 대기업이다 보니 성수기이면서 한편으로는 반품도 꽤 발생하는 시기였어요. 이때 물량을 저희가 처리하면서 회사에서 인정받았어요. 이후 한샘 물량은 물론 유명 가구 브랜드 제품을 다량 확보하면서 가전은 물론 라이프스타일 아울렛으로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유명 브랜드 가전·가구, 생활용품 등 약 100개 업체의 상품을 취급하고 판매하는데요. 올랜드란 이름 지었던 배경이 '이 땅의 모든 것은 취급할 수 있다'여서 앞으로 취급 브랜드는 더 무궁무진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앞으로 계획이 궁금해지는군요.

 

▷저희는 온라인 업체들과도 공생 관계에 있다보니 이들과 겹치는 품목이나 물품을 취급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다양한 브랜드가 많으니 겹치지 않는 선에서 온라인 부문을 좀 더 강화하려 하고 있어요.

 

더불어 '하이 리퍼브샵, 올소('모두 다 있다' '올바른 소비' 등 중의적 의미의 상호명)'란 이름의 새로운 리퍼브 매장도 준비 중입니다. 종전에는 가전·가구만 다뤘다면 새 매장은 완구, 전자제품, 의류 등을 kg단위로 집어가게 하는 콘셉트로 꾸미고 있습니다.

 

더불어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려고 해요. 인터넷가보다 더 싸게 책정하고요. 더불어 파주 역세권에 5500평 용지를 확보하고 3년 내 3000평 규모의 매장, 7000평 규모의 물류창고를 가동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매출 규모는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이 될 겁니다. 궁극적으로 전 국민이 싸고 편하게 아울렛 제품을 쇼핑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아울렛 하면 '올랜드'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매일경제 & mk.co.kr,

2019.08.19 15:01:02

박수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