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 Service/@Chinese Rst.

★취치엔(聚泉樓) / 1940, 한국 최초의 중국식 수제만두 전문점

Paul Ahn 2021. 10. 21. 12:28

★취치엔(聚泉樓) / 1940, 한국 최초의 중국식 수제만두 전문점

https://chuychun.com/

 

• 위치 : 서울 종로구 체부동 26

초기위치 : 명동 (2017년 이전)

• 개점 : 1940년 

 

- 한국 최초의 중국식 수제만두 전문점

 

◦취천루는 화교 왕씨 가문이 서울 중구 명동에서 한국 최초의 수제만두 전문점으로 1940년부터 영업을 시작하였으며 70여년간 명동을 찾는 사람들에게 중국식 만두를 판매해왔습니다.

 

만두만 300년 가업, 명동에서 70여년

 

 

사진 속의 여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맛은 자식, 그리고 그들의 자식으로 이어져 우리는 2018년이 된 지금까지 70년 전의 전통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취천루는 73년 간 영업 후 2013년 폐업하였습니다. 그러나 취천루의 만두를 찾는 매니아의 지속적인 요청으로 ‘취치엔’ 이라는 이름으로 취천루의 맛을 이어갔습니다.

 

동네 일반 만두집과 다름없는 허름한 외관이었으나 취천루의 맛을 그리워하는 고객, 그리고 블로거들의 방문과 입소문으로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서기 시작합니다.

 

◦취치엔은 2017년 10월 서촌으로 옮겨 2층 건물에서 취천루의 이름으로 1940년 설립의 역사를 이어갑니다.

 

 

제갈공명이 사람머리를 제물로 바치는 대신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소를 만들고 밀가루로 싸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던 것을 후세에 ‘기만하기 위해 만든 머리’라는 뜻으로 만두(饅頭)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후에도 세대를 초월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먹고 있는 만두. 중국 산동지역 맛을 그대로 재현하며 일제시대부터 한자리만을 지킨 채 70년을 이어오고 있는 만두집이 있다. 명동에 자리하고 있는 「취천루」가 바로 그곳이다.

 

명동입구 CGV 맞은편, 주변의 화려한 분위기에 묻혀 이 집이 있었나 할 정도로 소박한 만두전문 식당 「취천루」가 있다. 70년 맛집이지만 그 흔한 ‘~년 전통’이라는 홍보 문구 하나 없는 이곳은 이렇다할 외식업소가 별로 없었던 1930년대에 1대인 왕진시 할아버지가 국내에 잠시 머물며 고향의 만두와 호떡, 계란빵, 공갈빵, 코빙 등을 선보이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누구나 어려웠던 시절 먼 곳까지 가 일일이 물을 길어가며 손수 빚어낸 음식들은 고객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왕진시 할아버지는 5년 후 아내인 양회이롄 할머니를 한국으로 불러들여 아들도 낳았다. 장사가 더욱 번창해 곧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마음을 먹을 즈음,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돼 돌아갈 수 없었고 그 이듬해 한국전쟁마저 터졌다.

 

피난을 가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그 시기, 어렵게 일군 터를 내줄 수 없었던 왕진시 할아버지는 피난도 가지 않은 채 할머니와 아들 왕칭청(2대 사장) 씨와 함께 그 자리를 지켰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변함없는 맛을 이어오던 취천루에 1970년대 말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든다. 화재의 위험이 있다며 4대문 내에서 연탄 화덕을 이용해 장사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키는 바람에 취천루는 연탄 화덕에 직접 구워 만드는 호떡과 공갈빵 등의 메뉴를 없애야했던 것. 이후 1979년부터 만두 전문점으로 자리매김해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70년간 명동지켜, 대를 잇는 마니아들도 무지기수

 

취천루의 메뉴는 고기만두, 교자만두, 물만두 3가지. 돼지고기로 만든 고기만두, 교자만두는 5000원, 물만두는 5500원이며 소고기 만두는 각각 500원씩 비싸다.

 

3가지 만두는 모두 같은 소를 사용하는데 반죽에 따라 각기 다른 3가지 만두 맛을 낸다. 복주머니 모양으로 싼 고기만두는 만두피가 찐빵같이 조금은 두껍지만 씹을수록 구수한 맛과 향이 있으며 주름진 반달 모양의 교자만두는 쫄깃한 만두피가 담백한 고기소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또 얇고 부드러운 물만두는 입에 들어가자마자 스르르 녹아 특히 어린아이나 노인들이 좋아한다. 만두피는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이 아니라 주문 들어오는 것을 봐가며 그때그때 만들고 만두를 빚어내 바로 쪄낸다.

 

또 만두 맛을 한결같이 유지하기 위해 이틀에 한번씩은 집으로 만두를 가져가 94세의 양회이롄 할머니의 평가를 받는다. 할머니는 ‘이 만두는 물을 조금 부어 뻑뻑하다’, ‘이것은 고기가 조금 많이 들어갔다’는 식으로 문제점을 지적해주신다. 1대 할아버지의 비법은 2대 아버지에게로 그리고 3대인 자식들에게 전수 되었고, 만두 만드는 비법뿐 아니라 식당의 직원들까지 그대로 이어져 한 가족처럼 함께 일하고 있다.

 

오랜 역사만큼 만두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취천루는 손님들 중에 한분이라도 ‘맛이 평소와 좀 다르다’ 한마디 하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신경을 쓸 정도로 예민하게 관리하고 있다.

 

 

◇대한민국서 가장 맛있는 만두

 

취재 중 30년 째 단골이라고 밝힌 한 손님은 “이곳은 정말 30년 내내 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며 30년 전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나 지금이나 명동은 은행 등이 밀집한 최고급 상권으로 취천루의 만두는 특히 맛있어 멀리서도 찾아와 10인분씩 포장해 가곤 했다고. 당시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1인분에 10개씩 주던 것을 8개로 줄이고 가격이 오른 것 뿐 이란다. 이 또한 물가가 올라 당연한 거 아니냐는 그는 “취천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만두를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추켜세운다.

 

대한민국서 가장 맛있는 만두를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수식어와 화려한 명동에 어울리지 않게 소박한 취천루. 이는 2대 왕칭청 대표의 “음식은 기교가 아닌 맛으로만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지에 따라 옛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왕진시 할아버지의 손주인 3대들은 현재의 메뉴에 새로운 메뉴도 추가하고 점포를 따로 더 내 취천루의 맛을 널리 알리고도 싶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2대 왕칭청 대표에게 쓴소리를 듣는단다.

 

한결 같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장을 새로 내거나 메뉴를 추가하는 것은 물론 손님이 너무 많은 것도 안된다는 것이 왕칭청 대표의 지론이다. 손님이 너무 많아 직원들이나 내가 피곤하면 돈은 많이 벌지만 피곤한 마음에 분명 게을러지고 일을 쉽게 하려다보면 맛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설명이다.

 

때문에 취천루는 여느 사람이라면 앞 다퉈 자랑하는 전통과 역사조차도 홍보하지 않은 채 소박한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3대를 잇고 있는 왕췌이메이씨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우직한 아버지를 믿고 한결같은 맛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고객이 모두 내 부모님 같아”

 

점장 왕췌이메이

 

학교를 졸업하고 대만에서 회사를 잠깐 다니기도 했지만 힘든 부모님을 돕고자 지난 3년 여 전부터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3대 왕췌이메이 씨. 서른여섯이라는 나이가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동안으로 아름다운 그녀는 이전에도 고등학교 때까지 이곳에서 부모님을 도와 일했다.

 

단골손님들은 모두 그녀가 꼬마였을 적부터 지켜봐왔기에 세월이 흐른 지금도 “코 찔찔 했는데 다컸다”고 인사를 전하기도 한단다. 그녀도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단골손님들은 꼭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같다고 말한다.

 

왕췌이메이 씨는 “내가 이렇게 자란 만큼 손님들 중 예전에는 정정하셨는데 가끔씩 나오는 것도 힘들어하시거나, 거동조차 힘들어 자식들이 대신 사러올 때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외에 나갔다가도 공항에서부터 취천루를 찾아오는 고객들이나 손님들 중 아주 오랜만에 들러 “이곳이 아직도 하는 줄 몰랐다”며 기뻐하는 모습들을 보면 그 이상 뿌듯할 수가 없다고.

 

앞으로도 가업을 이어 한결같은 만두 맛을 선보이겠다는 취천루가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업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