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밸류업〕 닮은 듯 다른 ‘K-밸류업’과 ‘J-밸류업’
“시장 다르고 강제성도 없어”
日, 아베發 ‘기업 거버넌스 개혁’ 시작해 기업가치 제고 유도
니케이지수, 연일 최고치…‘10년 장기 프로젝트’ 성과물
“밸류업 프로그램, 중장기적 접근…거시적 환경도 개선해야”
윤석열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내놓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베일을 벗었다. 기업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대신 과감한 인센티브 정책으로 자율적인 주주 환원 확대를 유도하는 게 골자다.
26일 정부가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은 과거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내놓은 증시 부양책과 프로그램의 이름도, 세부적인 지원 방안도 모두 닮아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한국과 일본의 시장 환경이 달라, 비슷한 밸류업 프로그램일지라도 같은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란 분석이 나온다.
26일 한국 금융당국이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증시 부양을 유도하기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최근 일본 증시는 1980년대 이후 30여 년 만에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사진은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 주식 시황 전광판 ⓒ로이터=연합뉴스
◇베일 벗은 ‘밸류업’…“日보다 인센티브 더 많이 줘”
26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의 방점은 ‘인센티브’에 찍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밸류업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스스로’, ‘자율’, ‘유도’ 등의 단어를 총 5번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 밸류업은 어떤 한두 가지 조치로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업·투자자·정부가 함께 중장기적인 시계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당국은 상장기업이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우수기업에 세제 지원 및 법인세 공제 등의 다양한 우대 정책을 제공한다. 또 기업가치 우수 기업을 중심으로 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도 개발하며,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를 상장해 일반 투자자들도 쉽게 투자할 수 있게 한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의 주가 부양책을 참고했다. 일본의 도쿄거래소(JPX)는 지난 2022년 4월 시장 체계를 전면 개편하고, 지난해 4월부터는 PBR 1 미만 상장사에 주가 상승 개선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강제 사항은 아니다. 다만 올해부터는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기재한 기업명단을 매월 공표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또 PBR 1 이상 기업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JPX 프라임 150’ 지수를 출시하고 관련 ETF도 내놓았다.
이 같은 시장체계 개편안과 동시에 일본 증시는 고공행진 하고 있다.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니케이225 지수는 지난 22일 사상 처음으로 3만9000선을 넘겼고, 이날엔 장중 한 때 3만9388까지 올랐다. 거품 경제 때인 1989년 12월29일 기록한 장중 사상 최고치(3만8957)를 약 34년 만에 갈아치웠다.
정부도 일본 증시와 같은 주가 부양 효과를 노리고 있지만, 이번 발표엔 강력한 인센티브나 페널티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 사례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국내 밸류업 프로그램이 일본 사례보다 인센티브를 더 많이 준 편“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 현황에 맞게 가이드라인을 보완했다. 다양한 인센티브와 지원체계를 통해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적극 지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중장기적 과제를 통해 지표가 십수 년 꾸준히 오르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日 증시부양 아베노믹스부터 시작…중장기적 접근해야”
이번 발표를 놓고 금융투자업계에선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긴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국과 일본의 증시 환경은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엔화 약세를 계기로 내수와 수출 모두 회복되고 있지만, 한국의 경기는 아직 반등의 신호탄을 내비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이재선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일본 증시가 외국인의 관심을 유도한 근본 원인은 자체적인 체질 개선 기대감 덕분”이라며 “일본은 엔저 효과에 외국인 방문객이 5년래 최고치를 기록하며 내수 진작을 유도하고 있지만 한국은 반도체를 제외하면 수출이 정체됐다.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증시 부양을 도모하려면 거시적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또 한국의 밸류업 정책에도 중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의 밸류업 정책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증시 부양 움직임은 약 10년 전부터 시작됐다. 업계에선 2013년 아베 신조 총리 산하에서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으며, 최근의 일본 증시 활황은 10년간 장기 프로젝트의 성과물이라고 평가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도쿄거래소는 최근 기업들이 단기 PBR 개선에만 관심을 두기보다 중장기에 걸쳐 기업 상황에 맞는 다양한 수익 지표 개선을 권고하고 있다”면서 “한국 역시 단순히 PBR 등의 지표만 고집하기보다 기업에 적합한 다양한 투자 지표, 수익 지표를 고려해 중장기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강제성이 없다는 점도 한계로 거론된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은 정책에 대한 낙관론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만약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실망 심리가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며 “일본처럼 PBR 1배 달성을 위한 방안을 강하게 추진하는 게 아니라면 차익 매물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다.
이를 의식한 듯 금융당국도 밸류업 지원방안 관련해 아직 많은 부분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김소영 부위원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게 원칙”이라면서도 밸류업 지수나 ETF, 세제 제원안 등에 대해선 “구체적 계획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을 아꼈다. 정부는 오는 5월 보다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2024.02.26 15:13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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