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 추구하는 ‘0.5식’ 트렌드에
주식 대용 가공식품 강화
일본 유통업계가 고객니즈 변화를 파고들어 차별화를 모색한다.
물가 상승과 라이프스타일 변화 속에서 타깃 고객층을 읽고 니즈를 충족시키는 전략적 카테고리 운영이 매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성장 정체에 빠진 세븐일레븐은 홍차와 도넛 카드를 빼 들었으며, 차별화에 고심하는 슈퍼마켓 이온은 냉동식품을 앞세워 도약을 꾀하고 있다.
최근 일본 소매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즉석커피 매대다. 라이프스타일숍이나 슈퍼마켓에서도 100엔정도의 가격으로 퀄리티 높은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한때커피가 차별화 포인트였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편의점커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던 세븐일레븐이 또 다른 전략을 세웠다. 이번에는 홍차다.
세븐일레븐 | 커피에 이어 ‘홍차’, 카레빵 다음은 ‘도넛’
세븐일레븐은 신상품으로 홍차 ‘세븐카페티’를 개발했다. 2023년부터 일부 매장에서 테스트 판매를 시작했으며, 2024년 12월 기준 수도권 근교와 홋카이도 등 70여 개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세븐카페티는 티백 없이 홍차 전용 머신을 사용해 잎에서 차를 추출한다. 커피와 동일하게 셀프서비스 방식이며, 구매한 컵을 머신에 세팅해 이용하면 된다.
라인업은 스트레이트티와 밀크티 2종류로 구성되며, 각각 레귤러와 라지, 핫과 아이스 옵션이 제공된다. 스트레이트티는 다즐링과 얼그레이, 아삼 3종에서, 밀크티는아삼과 얼그레이 2종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가격은 스트레이트티가 120엔부터, 밀크티가 190엔으로 부담 없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세븐카페티가 특히 호평을 받는 것은 ‘향’이다. 업계 관계자는 “듬뿍 담긴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부어 충분히 우려내기 때문에 향기가 좋다.”고 설명했다.
추출 시간은 커피보다 약간 길다. 컵에 차가 채워지기 시작하면 은은한 홍차 향이 퍼진다. 분말 찻잎을 사용하면 추출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맛과 향을 우선시해 일반 찻잎을 채택했다.
세븐일레븐이 홍차를 상품화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커피보다 홍차의 소비량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홍차보다 커피 시장이 큰 이유는 커피 전문점이나 편의점 등 커피를 쉽게 마실 수 있는 장소가 많은 덕분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본에서도 본격적인 홍차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스타벅스재팬은 도쿄나카메구로에 있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도쿄’에 티 전문 층을 마련했으며, 티에 특화된 ‘스타벅스 티 앤 카페’를 전개하고 있다. 대만발 티 전문점 ‘공차’도 버블티 유행이 지난 후에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커피와 홍차의 니즈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주요 차이점으로는 마시는 시간대와 추구하는 기분, 효과로 세 가지를 꼽는다(표1 참고). 세븐일레븐의 커피는 회사원들이 아침 출근 전이나 점심식사 직후에 주로 구매한다. 사무실에서 집중하기 위해 커피의 각성 효과를 찾는 것이다.
반면 홍차의 주요 구매층은 여성이며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폭넓게 분포돼 있다. 테스트 매장에서는 오후 시간대가 제일 바빴고, 주 소비자는 디저트와 함께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홍차에 디저트를 곁들여 편안한 환경에서 마시는 것을 즐긴다.
세븐일레븐은 홍차를 통해 여성 소비자를 소구하는 데주력한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Z세대의 잠재수요도 개척할 계획이다. 홍차와의 동반 수요를 기대할수 있는 디저트에도 힘을 싣고 있다. 주요 식품으로 도넛을 내세웠다.
세븐일레븐은 계산대 앞 진열대에서 판매하는 패스트푸드 카테고리의 베스트셀러 ‘매장에서 튀긴 카레빵’에이은 히트상품을 만들기 위해 라인업 확충에 나섰다. 지난해 9월에는 ‘매장에서 튀긴 도넛’ 3종을 출시했다. 도쿄도, 지바현, 사이타마현의 약 5천 개 점포에서 시범 판매를 시작했다.
사실 세븐일레븐 재팬은 2014년에도 신규 사업으로 도넛을 취급했지만 2017년에 철수했다. 당시에는 전국 24곳의 전용 공장에서 하루 2회 제조하고 3시간 이내에 매장에 배송해 판매했다. 매장 조리가 필요 없는 완성품 형태로 판매했지만 매출이 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당시 구축했던 인프라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한 후 공장에서 완성하지 않고 매장에서 갓 튀긴 상태로 완성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매장에서 튀긴 카레빵이 ‘가장 많이 판매되는 카레빵 브랜드’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는 등 갓 튀긴 제품이 많은 소비자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최근 일본에서 도넛의 인기가 뜨겁다. 이 같은 상황을 일본 내에서는 ‘제5차 도넛 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쫄깃하고 입안에서 녹는 듯한 ‘생(生) 도넛’을 내세우거나, 크림 등 부재료를 듬뿍 올린 한국식 ‘K-도넛’ 전문점이 인기를 끌면서 도넛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도넛의 인기는 장기적인 트렌드가 될 것으로전망한다. 과거와 달리 단순한 보상 소비나 일시적인 체험 목적이 아닌 간식용이나 주식 대용으로 소비자들이 도넛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 기획사 덴츠의 ‘식생활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하루 3끼를 제대로 먹는 사람은 전체 일본인의 7%에 불과하다. 식사 대신 프로틴바나 도넛처럼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을 찾는 소비자가 급증하고 있다. 덴츠는 이러한 식사 스타일을 ‘0.5식’이라고 부른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카레빵이 히트한 것도 하루 식사횟수가 줄었기 때문이며, 바로 먹을 수 있는 ‘즉식’ 니즈에 딱 맞았기 때문이다.”며 “200엔 이하의 도넛도 같은맥락에서 인기를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 변화를 파악해,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하려는 세븐일레븐의 도전으로 편의점 식품 시장은 진화를 거듭하고있다.
이온 | 유행 디저트도 냉동상품화
이온리테일의 중점 카테고리는 최근 급속도로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냉동식품이다. 그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것이 냉동식품 전문점 앳프로즌(@FROZEN)의 출점이다. 이온리테일은 2022년 8월에 앳프로즌 1호점을 출점한 후 냉동식품 전문점 확대를 가속하면서 식품 매장의차별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 매장에는 이온그룹의 PB ‘톱밸류’를 비롯해 기존 냉동식품 매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상품을 구비하고있다. 약 330㎡의 매장에 1,500여 품목을 구비하는 포맷을 기본으로 하며, 디저트를 해동해서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이트(EAT)’, 전문점의 맛을 전자레인지로 재현하는 ‘히트(HEAT)’, 손질이 끝난 신선식품을 냉동해 판매하는 ‘쿡(COOK)’ 등 세 가지 종류의 상품을 구비했다.
팬데믹 이후 내식 수요가 급증하면서 냉동식품 매출도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실제로 이온리테일 매장에 앳프로즌이 들어선 뒤, 기존 냉동식품과 앳프로즌 매출을 합한 금액이 출점 전보다 2배로 뛴 점포도 있을 정도로 고객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앳프로즌이 최근 특히 힘을 싣고 있는 것이 ‘이트’로 분류된 냉동 디저트의 라인업 강화다. 기존 냉동식품 매장에서는 아이스크림이 디저트류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앳프로즌에서는 마카롱, 와플, 케이크 등 다양한 디저트 계열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또한 ‘여행하는 앳프로즌’ 특화존에서는 간토, 도호쿠 등 지방별 디저트 상품도 진열하고 있다.
전문점으로서 독자성을 내세우기 위해 유행에도 민감하다. 앳프로즌 관계자는 “다른 소매점에서는 볼 수 없는상품을 구비하기 위해, 트렌드를 빠르게 상품화하는 데집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매장에는 한국의 ‘10원빵’이나 2024년에 붐을 일으킨 ‘아사이볼’ 등 트렌드를 의식한 냉동상품을 엿볼 수 있다.
최근에는 VMD 강화도 꾀하고 있다. 냉동식품 전문점은 상품이 냉동 케이스에 진열되기 때문에 매장 구성이단조로워질 수 있다. 이온은 ‘이트’, ‘히트’, ‘쿡’ 상품 분류에 맞춰 케이스 상단 컬러를 구분했다. 가격표 옆에는 상품 해동 및 조리 방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POP를 부착했다.
로피아 | 델리보다 가공, 식비 아끼는 영패밀리 공략
최근 로피아가 공격적인 출점 전략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연간 신규 매장 10곳을 여는 전략을 고수했는데, 지난해 경우 이를 깨고 20개점을 새롭게 선보였다.
로피아의 강점은 신선식품을 중심으로 ‘가치 있는 저렴함’을 소구하는 것이다. 또한 내점객이 질리지 않도록 상품과 점포에 ‘즐거움’을 연출하고, SPA(제조·소매 일원화) 전략을 통해 ‘독자성’을 추구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시너지를 이루고 있다. 로피아는 멤버십 제도나 온라인몰을 운영하지 않고 결제 역시 현금만 가능하다. 대신 인기 상품만 압축해 구색하는 등 ‘낭비는 일절 하지 않는’ 전략이 로피아의 강점을 지지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로피아 매장을 보면 카테고리별로 상품 구성에 강약이확실하게 구분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잘 알려진 정육부문의 압도적인 구색 외에도 엔드 매대나 조미료 부문에 육류를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소스, 스파이스 등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다. 또한 밥 반찬으로 인기인 조림류를 비롯해 밀가루나 면류 같은 탄수화물 상품도 충실히 갖추고 있다.
로피아는 ‘2명의 아이를 양육하는 40대 맞벌이 가족’이라는 명확한 타깃층을 두고 있다. 이러한 영패밀리층은 식비 지출이 큰 만큼 생활비를 절약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가족원의 식사를 저렴한 가격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고기와 탄수화물 상품을 충실히 구비하고 있다.
반면 즉석식품에는 힘을 빼고 있다. 바쁜 영패밀리층은 즉석식품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불어나는 식비로 곤란을 겪고 있는 이들은 즉석식품보다 재료를 구입해 가정에서 조리하는 쪽이 더 저렴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석식품은 오퍼레이션이 어렵고 제대로 운영하지 않으면 수익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카테고리다. 따라서 로피아는 즉석식품 경우, 이익 확보가 쉬운 상품만 압축해 운영하고 있다. 트레이 크기를 몇 가지로 제한하고, 즉석식품 중량을 트레이에 맞추는 전략을 통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있다.
수산물 역시 얼핏 보면 구색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중 갓 잡은 생선은 일부다. 주로 판매 기간이 긴 냉동상품이나 가공품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한편, 경쟁사들이 손을 대지 못하는 영역에 집중해 PB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가공식품 중 밀가루 PB가 대표적이다. 일본 슈퍼마켓의 대부분이 ‘오코노미야키 가루’나 ‘다코야키 가루’ 같은 믹스류를 PB 상품화하는 경우는 많아도 밀가루를 PB로 전개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렇게 경쟁점과 겹치지 않는 PB 개발이 로피아의 주 특징이다.
수익성을 위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며 업계 내 우위를 점해가고 있는 로피아의 전략은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 가족층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리테일매거진 202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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