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버는 골칫덩이 됐다… AI 선구자 ‘왓슨’과 '알파고'의 몰락
AI 시대 연 지 10년 만에 IBM 골칫덩이로
2011년 2월, 미국 ABC방송 퀴즈쇼 제퍼디에 사상 처음으로 사람이 아닌 우승자가 등장했다. 두 명의 인간 챔피언을 압도적으로 누른 주인공은 IBM의 인공지능(AI) 수퍼컴퓨터 ‘왓슨(Watson)’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문제를 잘 이해하고 빠르게 답을 제시하는 왓슨에 전세계는 ‘AI 시대’가 도래했다며 흥분했다. 다음날 IBM은 “우리는 왓슨을 의료, 금융, 법률, 학술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왓슨은 IBM의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왓슨 사업은 대부분 중단됐고 IBM은 왓슨 의료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7일(현지 시각) “왓슨의 원대한 비전은 사라졌고 AI에 대한 과장과 오만함을 일깨우는 사례가 됐다”고 보도했다. 한 때 AI 혁명의 선두 주자이자 컴퓨터 사업을 대체할 IBM의 강력한 무기로 주목 받았던 왓슨은 왜 실패했을까.
◇기술보다 마케팅 앞세운 왓슨의 실패
NYT는 왓슨의 가장 큰 실패 이유로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을 꼽았다. 왓슨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나머지 완성되지도 않은 기술을 출시하는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NYT는 “당시 IBM의 최고 경영진은 대부분 기술 전문가가 아니라 마케팅 전문가들이었다”면서 “이들은 왓슨이 퀴즈쇼라는 제한된 환경에 맞춰 제작됐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로 IBM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왓슨’이라는 모호한 마케팅과 홍보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뒤에야 왓슨의 활용처를 찾기 시작했다. “말보다 마차가 앞서가는 꼴”이라는 내부 비판은 묵살됐다.
헬스케어(의료)에 집중하기로 한 것도 패착이었다. IBM은 초당 80조번의 연산이 가능하고, 초당 책 100만권 분량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왓슨이 인간 의사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NYT는 “암 데이터는 IBM 연구진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고, 잘못된 진단처럼 오염된 데이터도 왓슨의 정확도를 높이는데 장애가 됐다”면서 “왓슨은 의사가 쓴 메모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암정복이라는 원대한 구상이 현실화되지 않자 왓슨 프로젝트는 속속 중단됐다.
노스캐롤라이나대와 뉴욕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병원 암센터는 암진단용 왓슨 개발을 중단했고, 휴스턴 MD앤더슨 병원은 왓슨에 4년간 6200만달러(약 771억원)를 쏟아부은 뒤 실패를 선언했다.
왓슨에 실망한 IBM은 야심차게 출범했던 왓슨 의료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지만 뚜렷한 구매자가 없는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시장에서 왓슨은 수익성이 아주 낮거나 아예 없는 사업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왓슨의 처참한 실패로 IBM 주가는 왓슨을 처음 선보인 10년 전보다 10% 이상 떨어진 상태이다. 반면 아마존·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경쟁자들은 승승장구하면서 주가가 몇배씩 급등했다. 조대곤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아마존이나 페이스북은 AI를 활용해 음성인식 비서나 이미지 인식 같은 실질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보인 반면 선구자였던 IBM은 ‘암 정복’처럼 당장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거대한 목표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딥마인드도 핵심 프로젝트 접어
기대에 미치지 못한 AI는 왓슨뿐만이 아니다.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을 꺾은 ‘알파고(AlphaGo)’를 개발한 AI의 또 다른 선구자 구글 딥마인드 역시 갈팡질팡하고 있다. 딥마인드는 바둑을 정복한 뒤 다음 목표로 ‘전력 효율화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을 꼽았다. 실제로 2016년 구글 데이터센터에 알파고를 투입해 전력을 40% 절감하는 성과도 거뒀다.
이후 딥마인드는 ‘딥마인드 에너지’라는 별도 팀을 구성해 영국 국영 내셔널그리드와 함께 영국 국가 전력 사용량을 10% 이상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무산됐고 팀은 해체됐다.
CNBC는 “딥마인드의 기술이 바둑이나 체스처럼 통제된 환경에서만 제대로 작동할 뿐, 현실 세계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에는 맞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높았다”라고 보도했다. 여기에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진단 기기들도 상업성 부족과 개인 정보 논란 등에 휩싸이면서 대부분 시장에 출시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딥마인드는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가 기후변화 대응과 함께 주요 과제로 발표했던 ‘생명 현상 예측’ 분야에서는 성과를 내고 있다. ‘알파 폴드'라는 AI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복잡하기로 유명한 단백질 구조 분석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알파 폴드를 당장 질병치료나 신약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구글은 혁신 기술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가차없이 사업을 정리하기도 한다. 구글은 로봇개 ‘스폿’과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를 개발한 로봇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2013년 인수했다가 2017년 소프트뱅크에 매각했다.
대형 열기구를 이용한 인터넷 보급 프로젝트 ‘룬’도 5년여의 실험끝에 접었다. 2014년 딥마인드를 인수한 뒤 2조원 이상을 투자한 구글이 언제까지 인내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2021.07.19 20:15
박건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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