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조선소 / 조선소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소재지 : 강원도 속초시 중앙로46번길
쇠퇴한 조선소를 레저 문화 공간으로, 칠성조선소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08/2018050800229.html
실향민 할아버지가 세운 조선소, 레저용 보트로 역사와 정신 이어
집은 카페로, 조선소는 전시장으로…
뱃놀이 문화 전파하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
속초 어디를 가도 바다를 볼 수 있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옛 정취를 간직한 곳은 없다. 바로 청초호를 바라보고 서 있는 칠성조선소다.
오래된 건물과 기름때가 남은 기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까지.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이곳은 3대 최윤성(38) 씨와 아내 백은정 씨가 꿈을 키우는 공간이다.
이들은 아버지가 만들던 어선 대신, 수상 레저용 보트를 만든다. 아내가 대표를 맡았고, 남편은 선박 전문 디자이너 겸 노동자로 일한다. 이날도 최 씨는 흰색 작업복을 입은 채 기자를 반겼다.
◇ 3대가 꿈을 키운 칠성조선소
칠성조선소는 최 씨의 할아버지 고(故) 최칠봉 씨로부터 시작됐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조선소를 다녔던 할아버지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피난 내려와 부산에서 배 목수로 일했다.
1953년 휴전협정이 이뤄진 후엔 형제들과 함께 속초로 와 청초호 일부를 개간해 칠성조선소를 세웠다. 당시 많은 함경도 실향민이 속초 바닷가에 터전을 만들었다. 이들이 잡은 도루묵, 멸치, 꽁치, 명태 등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1960년 무렵엔 전국 어획량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어업의 성공은 곧 조선업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칠성조선소는 아들인 최승호(66) 씨에게 이어졌다. 최 씨의 아버지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자동차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가 힘겹게 운영하던 조선소를 내버려 둘 수 없어 속초로 돌아왔다.
하지만 양식업의 확산과 어업 규제 강화, 대형 어선의 득세로 속초의 수산업과 조선업은 쇠퇴해갔다. 목선이 FRP(섬유 강화 플라스틱)선으로 대체되면서 더 이상 목선을 건조할 필요도 없어졌다. 칠성조선소는 수리 조선소로 명맥을 이어갔다.
최 씨는 자신이 배를 만들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손재주가 있어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지만, 배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배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들게 되면서 흥미를 느꼈고, 그 길로 미국 랜딩 스쿨에 입학해 배 만드는 법을 배웠다. 2013년 아내와 함께 속초로 돌아온 그는 조선소 한쪽에 와이크래프트보츠라는 이름으로 레저 선박 브랜드를 세웠다.
◇ 어선에서 카누·카약으로, 시대에 맞춘 조선소의 변신
“엄연히 말하면 가업을 이은 건 아니에요. 저는 배를 만들지만, 아버지는 조선소를 운영할 뿐 배를 만들지 않으셨거든요. 조선소 한쪽을 빌려 쓰고 있으니, 정확히는 더부살이라 볼 수 있죠.” 최 씨가 말했다. 그는 조선소의 명맥을 잇는 방법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배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부는 레저용 선박인 카누와 카약을 만든다. 미국에서 공부하며 처음 배를 탔던 순간에 느낀 짜릿함을 잊을 수 없어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조선업에 종사했지만, 제가 본 건 어선이었고 배를 타고 놀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곳에선 어른이고 아이고 휴대전화를 사듯 낡은 배를 사서 직접 수리하고 노를 저었죠.” 최 씨는 자신의 배를 통해 뱃놀이 문화를 나누고 싶다.
△와이크래프트보츠를 설립하고 처음 개발한 카약 ‘Larus 16’
작업 공간을 찾았다. 연장이 어수선하게 놓여 있고, 한쪽엔 카누와 카약이 진열되어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두 배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카누는 북미 원주민들이 수렵한 사냥감을 운반하기 위해 만든 배로 안정감이 있고, 카약은 극지방 에스키모들의 사냥용 배로 제작됐던 것이라 빠르고 날렵하다. 합성수지와 유리섬유 등 복합소재로 만든 배는 튼튼하면서도 가벼웠다. 여자인 기자가 한 손으로 들어도 충분히 들릴 정도. 배 한 대를 만드는 데는 일주일이 걸린다. 가격은 소재에 따라 200~500만원이 든다.
◇ 배를 만들기 위해, ‘뱃놀이’ 문화 전파
조선소 한쪽엔 문을 연 지 석 달 된 작은 카페가 있다. 어린 시절 최 씨가 살았던 집을 부인 배 씨가 직접 개조해 카페로 만들었다. 배 씨도 미술을 전공했다. “저쪽에 제 방 창문을 열면 청초호가 한눈에 보였죠.” 어린 최 씨가 매일 봤을 그림 같은 풍경을 마주하니, 그가 조선소로 돌아온 건 숙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칠성조선소 카페는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옛 정취를 간직한 조선소와 청초호의 조화가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다. 기자가 찾은 날은 카페 휴무일이었지만, 손님이 끝없이 찾아 왔다. “짧은 시간에 조선소가 유명해졌다”라고 축하를 건네는 기자에게 부부는 겸연쩍은 웃음을 보였다. “지난 일 년간 수입이 거의 없었어요. 배 제작을 의뢰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하는 데까지 해보기로 했어요. 배 만드는 건 잠시 미루고, 배를 즐기는 문화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국내에선 수상 레저라 하면 부유한 문화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배를 소유하는 사람도 드물다. 하지만 부부는 수상 레저 문화가 확산되면 좋은 자전거를 찾듯, 좋은 선박을 찾는 사람이 늘 거라 기대한다. 이를 위해 카페를 짓고, 전시 공간을 만들고, 배를 타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뱃놀이를 전파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고육지책으로 벌인 일이지만, 가만 보면 흥미를 돋는 내용이 많다. 오는 19일엔 뮤직 페스티벌도 연다. 홍대에서 밴드를 한 경험이 있는 최 씨가 낸 아이디어다. 실향민의 정착지였던 칠성조선소는 곧 멋쟁이들이 모여드는 성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과거 조선소의 유산을 남기는 작업도 하고 있다. 한때 수많은 목선이 제작됐지만, 현재는 번듯하게 남아 있는 목선이 없다. 최 씨는 아버지와 조선소에서 목수 일을 보던 할아버지를 설득해 목선을 제작하고 있다. 작업 중인 아버지 일행이 보였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버지는 끝내 기자의 시선을 피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라고 묻자 최 씨는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회사를 가라는 말씀을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그저 튀지 말고 적당히 살라고 하셨다. 지금도 저희 일을 묵묵히 지지해 주신다”고 답했다.
최 씨의 꿈은 단순하다. 튼튼하고 아름다운 배를 계속 만드는 것. “내게 조선소가 놀이터였듯, 내 아이들에게 또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뱃놀이의 즐거움을 알리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은영 기자
입력 2018.05.0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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