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응모와 교동금광(橋洞金鑛) 식민지 조선의 황금은 우리 시대 복권이나 다름없었다.(naver.com) 아니, 복권보다는 기적에 가까웠다. 1924년 금광왕 최창학의 삼성금광에는 제2의 기적을 꿈꾸는 자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에는 동아일보 지국장 출신의 방응모도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 지국장이라고 하면 그 지역의 기자역할을 겸하는 지식인이었기때문에 자기 전재산을 쏟아붓고 마을 사람들에게 빚을 내고 금광을 찾지 못하면 자기 뿐만 아니라 전 마을이 파산할 상태일 정도로 노력을 한 끝에 3년만에 당시 한국에 손꼽히는 금광인 교동금광을 찾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하는 금맥찾기. 여기 성공한 방응모는 단숨에 유명인사로 떠오른다. 그리고 벼슬과는 거리가 멀었던 신문지국장에서 최고 상류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