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최장학과 삼성금광(三成金鑛) •평안북도 귀성군 관서면 조악동(造岳洞) 잿빛 식민지에 ‘황금광 시대’ 연 삼성금광 신화 (joongang.co.kr) 조선의 광산왕, 황금귀(黃金鬼) 등으로 불린 최창학은 식민지 한국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여러 면에서 기존 부호들과는 달랐다. 언론인 류광렬이 삼천리 1931년 2월호에서 ‘민영휘는 세도바람에 치부한 권세가, 김성수는 호농(豪農)의 후예로 누(累)백만의 재산을 세습한 행운아’로 사뭇 박하게 평가하면서도 최창학에 대해서는 “자타가 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적빈여세(赤貧如洗: 물로 씻은 듯이 가난함)한 가정에서 태어나 갖은 고초와 신산(辛酸)을 고루고루 맛보다가 뜻밖의 호박이 궁글러서 하루아침에 졸부가 된 말하자면 제3계급에 속하는 극히 미천한 불운..